[오늘약사] 친절하지 않지만 친절한 약사
- 데일리팜
- 2023-04-02 10: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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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훈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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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어머니는 한 줌의 약을 드신다. 처음엔 단순히 혈압만 140이었던 어머니는, 처음 고혈압 진단을 받으셨음에도 약을 드시지 않아 현재는 협심증까지 얻으셨다. 그 결과 혈압이 기준치보다 많이 낮아짐을 감수하고서라도 여러 가지 조절 약들을 드셔야 한다.
"이거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지요? 그러면 지금 안 먹고 최대한 늦게 먹을래요."
오늘도 고혈압을 처음 진단 받은 환자가 나에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과거의 어머니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땐 내가 약학대학에 입학하기 전이라 우리 가족 누구도 혈압약을 꼭 먹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5년 정도가 지나 어머니는 간헐적으로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시기 시작했고, 뒤늦게 다시 간 병원에서는 협심증이 의심된다며 소견서를 써줬다.
이제는 약사가 돼 그 때 왜 혈압약을 드시지 않았냐는 나의 질문에, 당신의 기억에는 소위 지역에서 1타라고 하는 의사 선생님은 치료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를 불쾌해 했고, 약국에서 또한 충분한 교감이 되지 않아 하루 한 번 복용법만 안내 받고 왔을 뿐이었다고 했다.
이 일은 내가 약사가 되어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줬다.
첫 진단을 받고 나이가 들면서 잘 살아오지 못해 아픈 거라 자책하며 약국 문을 들어오는 사람, 병원에서 긴 대기 시간에 지쳐서 설명을 허투루 듣는 사람, 의료진과 라포(Rapport)가 형성 되지 않아 본인이 겪고 있는 일들이 미심쩍고 당황스러운 사람. 그 어떤 경우에라도 왜 복용해야 하는지 왜 관리해야 하는지, 그러지 않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설명하고 이해시켜야만 하는 약사 본연의 직업 활동이 나에게는 모친에게 그러지 못했던 죄책감에 면죄부를 준다.
항상 친절하면 좋지만 무조건 친절할 수는 없었다. 주차된 차를 빼러 가야 해서, 화장실을 가야 해서, 약속 시간에 촉박해서 제대로 된 복약지도를 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붙잡고, 그냥 그렇게 약만 드릴 수 없다고 설득하고 타이르고 다그치며 충분히 이해를 시킨다. “그래, 니가 이겼다”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고 나서야 “한 달 뒤에 꼭 봬요”라는 말을 끝으로 나는 그들에게 ‘친절하지 않지만 친절한’ 약사가 된다. 이렇게 형성된 나와의 라포는 그들이 대사성 질환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관리하는 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실 나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세상의 변화가 직능의 변화를 가져옴을 막을 수 없고, 그 변화가 또 다른 발전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 산업계에서 주장하는 형태의 비대면 진료, 비대면 투약은 과연 보건의료의 발전된 모습이 맞을지 환자들과 같이 웃고 화내고 호흡하며 관계를 형성하며 일하는 현장 약사로서 강한 의구심이 든다. 오히려 지금보다 사회적 비용만 더 들고 질 낮은 보건의료 서비스를 하게 되지 않을까
단지 내 부모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만성질환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거나, 일찍 발견했더라도 관리의 중요성을 교육받지 못해 병을 키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 사회적 비용은 또 얼마나 클까.
약사에게 라이선스를 부여한 사회, 약국에서 보건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들, 심지어 같은 일을 하는 동료 약사들도 직업에 부여하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약사만이 할 수 있는 복약지도라는 것의 의미가 단순히 어떻게 먹어야 하는 것만 알려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먹어야 하며 이 약을 먹음으로써 당신에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자세하게 알려주는 것이면 어떨까?
환자가 받은 약을 ‘정확하게 먹고 싶게’ 만드는 것 더 나아가 이를 통해 앞으로 개인이 살아가며 질병을 올바르게 치료할 수 있게 도와주고 ‘소 잃고 외양간 고쳐서’ 발생할 사회적 비용까지 줄일 수 있다면 우리를 약국 사장님, 소매업자가 아닌 선생님, 보건의료인으로 불리게 할 것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세상이 변화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약사의 존재 의미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게 될 약사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약국에서 올바른 복약지도를 요구할 것을 부탁 드린다. 그것은 당신의 권리이며, 약사의 의무이다. 그 결과 만들어지는 상호관계는 약사에게도, 우리 사회의 보건의료 수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경성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현 울산광역시약사회 총무이사 아름약국 운영
강지훈 약사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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