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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제약계로 번진 '미투' 운동…터질게 터졌다

  • 안경진
  • 2018-03-12 06:30:20
  • 용기낸 피해자에게 격려·제보 이어져…'2차피해' 우려 목소리도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고발하는 '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법조계와 대학가, 연예계를 넘어 보건의료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주 한 여직원이 한국얀센을 퇴사하며 남긴 전사메일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성추행 및 언어폭력을 폭로한 데 이어,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마저 구설수에 오르자 업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터질 게 터졌다", "의료계나 제약업계 전반에 만연했던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 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인 가운데 2차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용기낸 퇴사자에 공감…응원 메세지 이어져= 얀센 직원의 폭로메일은 내부적으로 쉬쉬해 왔던 성추행 사례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메일을 보낸 당사자가 특정 가해자를 지목하지 않은 데다 퇴사 이후 연락이 닿질 않아 회사 차원의 진상조사가 쉽지만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당 소식이 업계 내부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8일 데일리팜 기사를 접한 한 독자는 댓글을 통해 "얀센만이 겪는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여성 MR을 인형 취급하고 회식 자리에서 술을 따라주길 기대하는 상사들이 다른 회사에도 존재한다"며, "적극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거부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는 여성 MR들도 있어 안타깝다"는 의견을 밝혔다.

국내사 한 여성MR은 데일리팜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털털한 성격의 여자 선배들에겐 남자 직원들이 "왜 전날과 같은 옷을 입고 왔냐. (남자랑) 밤새다 온 건 아니냐"는 식의 성희롱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던진다. 회사 내 유부남들이 "너 오늘 예쁘다. 술 한잔 하자"는 문자 메세지를 보내거나 술자리에서 손을 잡으려는 등의 추행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얀센의 내부관계자는 "과거에도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는 지위나 수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처벌이 가해졌다. 성추행이 만연하다거나 묵인하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같은 일이 벌어져 충격을 받았다"며, "백번의 성교육보다 이번 사건이 주는 경각심이 크다고 본다. 업계 내 뿌리막힌 잘못된 문화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화이자·MSD 등 과거 성추행 사례 재조명= 이번 일을 계기로 오랜 기간 참아왔던 성추행에 대한 폭로가 이어질 소지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제약업계에선 화이자와 노바티스, 오츠카, MSD 등 다국적사 한국법인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이 지난해부터 하나둘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인 블라인드에는 한국화이자제약 직원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으로부터 "십수년간 술만 마시면 포옹하는 척하며 여직원들의 몸을 더듬던 모 지점장이 아무런 징계 없이 도매 담당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당시 화이자제약에 근무 중인 또다른 네티즌들은 "피해자는 강제휴가를 보내놓고, 가해자는 회사에 잘 나와서 사진을 찍고 희희덕 거리는 게 이해가 안된다", "회사가 더러운 매니저 싸고 드는 걸 보니 정말 역겹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비슷한 시기 MSD에서는 같은 부서의 여직원에게 밀폐된 공간에서 신체접촉 및 성희롱적 발언을 일삼던 A전무가 징계위원회 회부 직전 퇴사한 사례가 있었다. 문제는 A씨가 사직서를 제출한지 한달 여 만에 국내 상위제약사 임원으로 이직한 뒤 아무런 제약없이 업계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

MSD에 근무 중인 한 직원은 "해당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 말고도 꽤 많은 여직원들이 A씨로부터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가해자는 본인의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스카웃된 것처럼 행동하고 다니니 씁쓸할 따름"이라며, "기사화 된 이후에도 윗선에선 쉬쉬하면서 조용히 덮으려고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피해를 입는 건 여직원들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권력형 성범죄…보수적 제약계 취약 이 같은 성추행 사례가 조직 내 권력구조와 긴밀하게 연계돼 있어, 해결책을 찾아내기 쉽지 않다는 근본적인 문제도 남아있다.

작년 9월 사내 워크숍의 회식자리 중 부하직원에게 강도높은 신체접촉을 강행한 사유로 퇴사처리된 노바티스의 항암제사업부 대표 B씨가 여성이었다는 건 이를 방증하는 대표사례다. 비단 남성이 여성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흔하지만, 성별문제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A씨는 피해를 당한 남성직원이 회사에 정식 항의하는 등 사태가 확산되자, 징계위 회부 직전에 사직서를 제출한 뒤 회사를 떠난 것으로 확인된다.

다국적사에 근무 중인 한 남직원은 "비단 남녀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엔 여자상사가 남자 직원들에게 성추행하는 사례도 적잖이 듣는다"며, "여성들이 피해를 입는 비율이 월등히 높겠지만 결국엔 권력문제다.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성추행 사례를 문제삼기 힘든 구조인 것도 맞다"고 꼬집었다.

노바티스 뿐 아니라 화이자, MSD, 오츠카 등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던 사례를 뜯어보면, 상사가 상대적으로 권력이 약한 부하직원에게 신체접촉 및 언어폭력을 가했다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자주 거론되는 '권력형 성범죄'의 일종인 셈이다.

◆폐쇄적인 조직문화…'2차피해' 우려도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제약사나 대형병원의 문화도 미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최근 성추행 사례가 불거졌던 회사들이 전부 다국적사에 한정돼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국내사의 경우 더욱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2차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지적이다.

과거 일본계 제약사에 근무했던 한 여직원은 데일리팜 기자와 만나 "회사에 다니는 기간동안 고위임원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친 신체접촉을 당하거나 당한 사례를 목격한 적이 있다. 허벅지를 만진다거나 뒤에서 갑작스레 안는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며, "처벌받아 마땅한 일이고 성폭력상담소 등 관련 기간에 수소문해 봤지만 피해자 본인이 나설 경우 역으로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사귀자"거나 "둘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내자"는 등 성적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업무상 불이익을 가하는 식의 괴롭힘도 있었다는 제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업계가 워낙 좁지 않나. 인맥이나 이전 회사에서의 평판이 커리어에 중요하게 작용하다보니 2차피해를 우려해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 업계에서 도는 소문이 파다한 국내사에서 정작 성추행을 폭로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라며, "최근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제약계도 왜곡된 성문화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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