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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승계·지배력 강화…제약사의 영리한 재단 활용법

  • 차지현
  • 2025-06-27 06:20:46
  • 공익재단 제약사 지분 활용도는?
  • 대부분 제약 산하 공익법인 지주사 지분 보유, 오너 후계자 이사회 포진
  • 제약, 공익법인 의결권 규제 사각지대…오너일가 경영권 방어 수단되기도

[데일리팜=차지현 기자] "해산한 공익법인의 남은 재산은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된다. 이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된 재산은 공익 사업에 사용하거나 이를 유사한 목적을 가진 공익법인에 증여하거나 무상대부(無償貸付)한다."

공익법인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명시된 내용이다. 공익법인이 문을 닫고 해산하면 그때까지 남아 있는 돈이나 부동산 등 자산은 사유화할 수 없다는 게 골자다. 여기에는 공익법인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소유할 수 없으며, '주인이 없는 조직'으로서 공익을 위해 운영돼야 한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이 같은 원칙이 현실에서 그대로 지켜지는 건 아니다. 실제로는 공익법인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물처럼 운영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익법인이 오너일가의 승계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대표적이다. 제약 업계에서도 기부도 하지 않은 오너 자녀가 이사진에 올라, 재단이 보유한 제약사 지분을 통해 실질적 경영권을 이어받는 사례를 흔히 찾을 수 있다.

'오너 없는' 유한양행, 업계 유일 최대주주 공익법인 유한재단의 모범 사례

27일 제약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상장 제약사 16개 산하 공익법인 21곳 중 제약사 지분을 보유한 공익법인은 20곳으로 집계됐다. ▲JW그룹 ▲경동제약 ▲광동제약 ▲국제약품 ▲녹십자그룹 ▲대웅그룹 ▲동아쏘시오그룹 ▲동화약품 ▲보령 ▲유나이티드제약 ▲유한양행 ▲일동제약 ▲일성아이에스 ▲종근당그룹 ▲한독 ▲한미약품그룹 등 제약사 산하 공익법인을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다.

이들 공익법인 중 제약사 지분을 3% 이상 보유한 곳은 15곳이다. 또 보령을 제외하고 현재 지주사 체제를 운영 중인 제약사 산하 공익법인은 모두 지주사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익법인 가운데 오너일가가 이사진으로 활동 중인 곳은 15곳으로 파악된다.

공익법인은 교육, 장학, 복지, 문화 등 공공 이익을 위한 사업을 수행하도록 설립된 비영리 조직이다. 기본 재산으로 보유한 현금·주식·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배당·임대료 등의 수익을 바탕으로, 공익 목적의 사업을 전개한다.

공익법인에 대한 기부자는 상속세·증여세 면제 등의 세제 혜택을 받는다.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공익법인에 주식을 기부하면 통상 10%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국가의 복지 역할 일부를 민간인 공익법인이 자발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기부에 대한 제도적 혜택을 부여하는 게 그 취지다.

공익법인은 국가로부터 막대한 세제 혜택을 받는 만큼 이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공공 책임과 독립성이 요구된다. 특히 이 같은 혜택은 공익법인이 사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조직이라는 전제 위에서 정당화된다. 공익법인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물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비록 공익법인이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재산 출연으로 설립됐더라도 설립과 동시에 그 법인은 출연자의 소유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공익법인 면세 제도를 활용해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우회적으로 승계하거나 지배력을 유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창업주 1·2세대가 기부한 재산으로 설립한 공익법인 재단 이사회에 오너일가 후계자가 포진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선대가 넘긴 주요 제약사 지분이 후손의 지배력 강화에 실질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약사 공익법인 21곳 중 제약사 지분 가장 많이 보유한 공익법인은 유한양행 유한재단이다. 3월 말 기준 유한재단은 유한양행 보통주 15.82%, 우선주 0.04%를 보유했다. 오너일가 사재가 모두 공익법인에 귀속되면서 유한양행은 국내 제약 업계에서 유일하게 공익법인 최대주주인 제약사가 됐다.

대부분 국내 제약사가 공익법인을 경영권 승계나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과 달리, 유한재단은 그 구조와 운영 면에서 뚜렷한 차별성을 보인다. 유한양행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는 데 따라 유한재단 이사진 명단에도 창업주 일가가 포함돼 있지 않다.

작년 말 기준 유한재단 이사회에는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 이정희 유한양행 기타비상무이사 등 12명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유한재단은 최근 원희목 서울대 특임교수를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원 신임 이사장은 대한약사회 회장, 제18대 국회의원,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원장,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등을 거쳐 현재 제약바이오협회 고문, 한국글로벌보건연맹 이사장, 희망나눔협의회 상임대표 등을 맡고 있는 인물로, 유한양행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 인사다.

유한재단이 유한양행 최대주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경영에도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공익법인이 단지 최대주주로 존재할 뿐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전적으로 위임되는 체제를 정착했다는 얘기다. 이런 구조 덕분에 유한양행은 제약 업계는 물론, 전체 산업계를 통틀어 보기 드문 지배구조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공익 탈 쓴 승계 수단…기부 없는 오너 후계자, 재단 이사회 포진

유한양행을 제외한 다수 제약사에서는 공익법인이 오너일가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대웅그룹 산하 대웅재단도 오너일가 경영권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로서 공익 법인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대웅그룹 산하 공익법인은 대웅재단과 석천나눔재단 2곳이다.

3월 말 기준 대웅재단은 대웅 지분 9.98%를 갖고 있다. 대웅제약 창업주 고(故) 윤영환 명예회장이 2014년 보유 중이던 대웅 지분 2.49%를 대웅재단에 출연하면서 지분율이 대폭 높아졌다. 3월 말 기준 대웅재단은 대웅제약 지분 8.62%도 보유하고 있다.

이후 대웅재단은 오너 2세 윤재승 대웅그룹 최고비전책임자(CVO)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발판으로 작용하고 있다. 3월 말 기준 윤 CVO가 보유한 대웅 지분은 11.61%다. 윤 CVO는 현재 대웅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윤 CVO는 폭언 파문으로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을 당시에도 지배력 핵심 축인 대웅재단 이사직만큼은 유지했다.

석천나눔재단은 2014년 6월 석천대웅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윤영환 회장으로부터 대웅 보통주 4.95%를 넘겨 받으면서 지배구조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석천나눔재단은 이듬해 3월 보유 중인 대웅 주식 31만5000주를 팔아 현금화했고 이어 같은 해 9월에 나머지 26만1000주를 전량 처분했다. 이에 따라 석천나눔재단은 예외적으로 제약사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공익법인으로 남아 있다. 다만 윤 CVO는 석천나눔재단 이사장직에 재직, 재단 운영 전반에 대한 영향력은 계속 행사하고 있다.

녹십자그룹 역시 지배구조 측면에서 공익법인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3월 말 기준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녹십자홀딩스 지분 8.72%를 보유했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창업주 2세 허일섭 GC그룹 회장(12.20%)에 이은 녹십자홀딩스 2대주주다. 또 다른 미래나눔재단과 목암과학장학재단도 각각 4.38%와 2.10% 지분을 갖고 있다. 3개 공익법인이 보유한 녹십자홀딩스 지분은 총 15.20%에 달한다. 이외 목암과학장학재단은 녹십자 지분 0.44%도 보유했다.

녹십자그룹의 공익법인들은 모두 창업주 차남 고(故) 허영섭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만들었다. 공익법인 이름 앞에 붙은 '목암'이 그의 호다. 그 상징성만큼이나 현재 그룹 경영 구조 속에서 공익법인이 갖는 전략적 위치도 분명하다. 이들 공익법인은 모두 허영섭 회장 자녀의 지배력을 보완한다. 허영섭 회장 차남인 허은철 녹십자 대표가 목암생명과학연구소와 목암과학장학재단에, 삼남인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대표가 미래나눔재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녹십자는 숙부-조카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녹십자그룹 진두지휘 중인 허일섭 녹십자그룹 회장은 허은철 대표의 숙부다. 허일섭 회장은 고(故)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 5남이자 허영섭 회장의 동생이다. 허영섭 회장 작고 이후 허은철·허용준 형제와 허일섭 회장은 공동 경영을 15년간 이어오고 있다.

외형상 균형 잡힌 경영 체계를 갖춘 듯 보이지만, 지분율로 보면 허일섭 회장 쪽으로 무게추가 쏠려 있다. 3월 말 기준 녹십자홀딩스에 대한 허일섭 회장 지분은 12.20%인 반면 허은철 대표와 허용준 대표의 지분은 각각 2.63%와 2.91%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공익법인이 지분 구조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JW그룹 JW이종호재단과 일동그룹 송파재단도 각각 7%대 지주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3월 말 기준 JW이종호재단은 JW홀딩스 지분 7.48%를, 송파재단은 일동홀딩스 지분 7.12%를 갖고 있다. 송파재단은 오너일가 회사 씨엠제이씨(17.02%)와 창업주 2세 윤원영 회장(14.83%)에 이은 일동홀딩스 3대주주다.

같은 기간 오너 3세 이경하 JW그룹 회장은 JW홀딩스 지분 28.43% 보유, 안정적인 그룹 지배권을 확보했지만 공익법인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송파재단의 경우 오너 3세 윤웅섭 일동제약그룹 부회장의 경영권 뒤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윤웅섭 부회장의 일동홀딩스 지분이 1.12%로 취약한 상황에서 배우자 윤경화 씨가 송파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동화약품 가송재단의 3월 말 기준 동화약품 지분은 6.39%다. 가송재단은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지탱하고 있다. 현재 가송재단 이사장은 오너 3세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이다. 다만 최근 경영권을 넘겨받은 오너 4세 윤인호 동화약품 사장은 가송재단 이사진으로 활동하진 않고 있다. 1984년생 윤인호 사장은 올 초 동화약품 개인 최대주주로 등극한 데 이어 부사장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했다.

제약, 공익법인 의결권 규제 사각지대…오너 경영권 방패막이로도 활용

지난해에는 제약 업계에서 비영리 목적 조직인 공익법인이 경영권 분쟁에서 '우호 지분' 역할을 하며 오너 측 조력자가 된 사례도 등장했다. 오너일가가 공익법인을 사실상 개인 지분처럼 활용해 경영권 방패막이로 활용한 것이다. 1년여간 오너일가 경영권 분쟁을 벌인 한미약품그룹이 그 주인공이다.

공정거래법상 공익법인은 제약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총수일가가 공익법인을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2020년 공정거래법 의결권 제한 규정이 신설됐다. 지난해 MBK파트너스·영풍과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의 사례만 봐도 공익재단 보유 지분은 의결권이 없는 주식으로 분류된다.

다만 예외 조항이 있다. 대기업 기준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총액 10조원 이상)에 해당하지 않는 기업은 공정거래법 의결권 제한 규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일종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국내 전통제약사 가운데 자산 10조원이 넘는 곳은 한 군데도 없기에 해당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발발 이후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 재단은 줄곧 한미약품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 부인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의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왔다.

가현문화재단·임성기재단 이사진 현황
작년 초 송영숙·임주현 모녀 측이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 통합을 추진할 당시 가현문화재단은 주식양수도 계약 당사자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 재단은 모녀 측 우호지분으로 활용됐다. 작년 말 모녀가 킬링턴과 맺은 주식 매매 계약에도 가현문화재단 지분이 포함됐다.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 재단은 작년 말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에서도 3인 연합 측을 지지했다.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 재단 이사진 대부분이 송영숙 회장 측근으로 채워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현문화재단 이사회는 이사장인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포함해 김재영 전 숙명여대 교수·정재숙 전 문화재청 청장·김영신 사진작가·최봉림 뮤지엄한미 부관장 등 총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임성기 재단은 이사장인 김창수 전 중앙대 총장을 포함해 원희목 전 제약바이오협회 회장·조영민 서울대병원 교수·최인영 한미약품 연구개발(R&D) 센터장·현민수 순천향대병원 교수 등이 이사회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송 회장과 오랜 기간 두터운 신뢰를 쌓아온 인물들로 전해진다.

이 같이 공익법인이 편법 승계 또는 오너일가 경영권 보호를 위해 사용된 사례가 나오면서 일각에서는 공익법인이 본연의 설립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할 공익법인이 사익 추구를 위한 지배구조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다. 공익법인에 대한 견제 장치가 미비한 상황에서 공익재단 의결권 제한 강화 등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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