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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는 슬림화, 외주는 전문화…재편되는 제약 서비스 시장

  • 손형민 기자
  • 2026-08-27 06:00:58
  • 요약
  • 정부 측 핵심인력 로펌행…산업 전반 자문 역할
  • 경평·정책 컨설팅부터 PR까지…외주 활용 증가

[데일리팜=손형민 기자] 에이전트의 시대가 돼 버렸다. 다국적제약사들이 사업 우선순위에 따라 조직을 재편하는 사이 제약사 외부에서는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서비스 산업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과거에도 법률 자문과 홍보, 경제성평가 등 주요 업무를 외부 전문기업에 맡기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최근 나타나는 변화는 외부에서 담당하는 업무의 범위와 깊이다. 신약의 급여와 약가, 경제성평가, 정책 대응, 시장 진입 전략부터 제품 커뮤니케이션까지 전문 서비스가 세분화되고 있다.

대형 로펌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를 비롯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신약등재부, 국민건강보험공단 보험급여실 등에서 약가·급여 업무를 담당했던 인력들이 주요 로펌에 포진하고 있다. 과거 실무자급 중심에서 최근에는 보험약제과장과 심평원 약제관리실장, 복지부 장·차관 출신까지 영입 범위가 넓어졌다.

컨설팅업계의 역할도 확대되는 추세다. 경제성평가 자료 작성뿐 아니라 신약이 어떤 급여 트랙을 선택할지, 약가제도 변화가 보유 제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영역까지 외부 자문이 활용되고 있다.

PR업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새로운 신약과 적응증이 지속적으로 추가되면서 제품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필요성은 늘고 있지만 제약사가 이에 맞춰 내부 홍보조직을 확대하기보다 외부 에이전시와 역할을 적극적으로 분담하는 방식도 활용되고 있다.

약가 핵심인력 로펌으로…실무자 넘어 장·차관까지

대형 로펌의 제약·헬스케어 분야 확대를 보여주는 변화 중 하나는 공공부문에서 보건의료 정책과 약가·급여 업무를 담당했던 인력의 이동이다.

눈에 띄는 것은 보험약제과장 출신들의 연이은 로펌행이다. 보험약제과는 신약 등재와 약가 산정체계, 약제 사후관리, 급여 적정성 재평가 등 건강보험 약제정책 전반을 담당하는 복지부 핵심 부서다. 제약사의 신약 시장 진입과 기존 품목의 약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다룬다는 점에서 업계와의 접점도 크다.

보험약제과장을 지낸 류양지 전 과장은 율촌, 곽명섭 전 과장은 김앤장, 오창현 전 과장은 태평양으로 각각 이동했다. 앞서 보험약제과에서 약제 급여등재와 사후관리 실무를 맡았던 김성태 전 사무관 역시 김앤장을 거쳐 현재 세종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공직 이력도 단순한 부서 근무에 그치지 않는다. 류양지 전 과장은 보험약제과장 재임 당시 대규모 약가제도 개편과 약품비 절감정책을 담당했고, 곽명섭 전 과장도 의약품 건강보험·약가 관련 주요 정책을 맡았다. 오창현 전 과장은 보험약제과장에 이어 보건산업진흥과장을 지내며 보험약제와 제약바이오 정책을 두루 경험했다.

신약의 가격과 급여를 결정하는 제도를 직접 다뤘던 핵심 인력이 연이어 로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최근 제약·헬스케어 자문 시장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심평원 출신 인력도 다수다. 약제관리실장을 지낸 이병일·강희정·강경수 전 실장이 각각 주요 로펌에 합류했다.

이들의 공직 업무는 현재 제약업계의 주요 약가·급여 현안과도 맞닿아 있다. 이병일 전 실장은 실거래가 상환과 기등재목록 정비, 특허만료약·제네릭 약가정책 등을 담당했다. 강경수 전 실장은 위험분담제 도입과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 생략 제도, 비용효과성 판단기준 개선 등 신약 등재제도 변화에 관여했다.

신약의 급여등재를 직접 다뤘던 인력도 로펌으로 향했다. 장세락 전 신약등재부 팀장과 김태경·최윤희 전 과장 등이다. 이들은 신약 급여등재와 경제성평가, 약가 산정 등 관련 업무를 경험했다.

건보공단에서 제약사와 직접 가격을 협상했던 인력도 있다. 정윤균 전 약가협상부장은 신약 약가협상과 고가 신약 위험분담계약 등의 업무를 맡았으며 이후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 권덕철 전 복지부 장관과 류근혁·이영찬 전 차관 등 보건의료 정책 전반을 경험한 고위 관료 출신들도 주요 로펌 헬스케어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경력을 한데 놓으면 신약이 건강보험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의 주요 단계가 드러난다. 복지부가 약가·급여제도의 틀을 마련하면 심평원이 신약의 급여 적정성과 경제성 등을 평가하고, 건보공단은 제약사와 가격 및 위험분담계약 등을 협상한다.

정책 수립부터 급여평가와 약가협상까지 각 단계에서 경험을 쌓은 인력의 합류로 로펌의 제약·헬스케어 자문 역량도 전문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이들은 제네릭 약가 개편 등이나 주요 현안에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같은 인력 이동을 둘러싼 비판도 있다. 약가와 급여정책을 직접 담당했던 공직자가 퇴직 후 제약사를 자문하는 로펌으로 이동하는 데 대해서는 이해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최근 오창현 전 보험약제과장의 로펌행이 알려진 이후에도 유사한 지적이 제기됐다.

다만 이러한 논란과 별개로 관련 인력을 대형 로펌이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제약·바이오업계에서 약가·급여와 정책 자문 활용이 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법률 넘어 정책 자문으로…로펌 역할 확대

제약사를 대상으로 한 로펌의 업무 범위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제약업계에서 로펌의 대표적인 업무는 특허분쟁이었다. 이후 리베이트와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 약가인하와 급여 축소 처분 등을 둘러싼 행정소송으로 영역이 넓어졌다.

최근에는 분쟁이 발생한 이후 법률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도 변화를 분석하고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는 영역으로 역할이 확대되는 추세다.

약가·급여는 관련 법령과 고시뿐 아니라 심평원의 평가기준과 위원회의 판단, 건보공단과의 협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분야다. 신약 하나를 건강보험에 등재할 때도 일반적인 경제성평가를 거칠지,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 생략이 가능한지, 위험분담제를 활용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대형 로펌들이 변호사뿐 아니라 복지부와 심평원, 공단 출신 전문가를 영입해 별도의 헬스케어 조직을 강화하는 것도 이 같은 업무 확대와 무관하지 않다. 

보험약제과장 출신은 약가·급여제도의 세부 작동 방식과 제품별 영향을 분석하는 데 강점이 있고, 장·차관 출신은 건강보험 재정과 산업정책 등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정책 방향과 대응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특히 정부의 약가정책이 크게 바뀌는 시기에는 관련 문의와 자문이 집중된다. 최근 약가제도 개편을 전후해서도 주요 로펌들은 제약·바이오기업을 대상으로 설명회와 세미나 등을 열고 제도 변화와 대응 방향을 소개하고 있다.

경평 넘어 대응전략까지…급여 컨설팅 시장 활기

제약사의 외부 활용이 활발한 또 다른 분야는 약가·급여 컨설팅이다.

경제성평가는 이미 외부 전문기업 활용이 일반화된 업무 중 하나다. 신약의 비용효과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임상자료를 토대로 경제성평가 모델을 구축하고 비교대안과 비용, 효용값 등을 설정해야 한다. 별도의 보건경제학적 분석 역량이 필요한 만큼 전문 컨설팅업체에 관련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외부 컨설팅의 범위가 경제성평가 자료 작성에서 한층 넓어지고 있다. 신약을 어떤 방식으로 건강보험에 진입시킬 것인지부터 약가정책 변화가 기존 제품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영역까지 외부 자문 수요가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제도 개편은 컨설팅업계의 업무 영역을 넓히고 있다.

약가 산정기준이나 사후관리 방식이 달라지면 제약사에 미치는 영향은 보유 제품에 따라 다르다. 특허가 유지되는 신약과 특허만료 의약품, 제네릭 등 제품별 특성이 다른 만큼 동일한 제도 변화에도 약가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개편 내용을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유 품목 가운데 어떤 제품이 영향을 받는지, 약가에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향후 출시할 신약에는 어떤 등재·약가 전략을 적용할 것인지까지 검토해야 한다.

이에 따라 컨설팅업체의 역할도 제도 설명을 넘어 회사별 포트폴리오와 제품 특성을 반영한 영향 분석과 대응전략 수립으로 넓어지고 있다. 약가제도 개편을 전후해 제약사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와 교육이 늘어나는 동시에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자문도 활발해지는 모습이다.

과거 제약사가 급여전략을 결정한 이후 필요한 경제성평가 자료 작성이나 분석을 외부에 맡겼다면 최근에는 시장 진입 초기부터 어떤 급여 경로와 약가전략을 선택할지 외부 전문가와 함께 검토하는 방식도 활용되고 있다.

급여등재 이후에도 적응증 확대에 따른 급여범위 조정과 재정영향 분석, 사용량 증가에 따른 약가 사후관리 등 제품의 적응증 추가에 따라 새로운 약가·급여 이슈가 발생한다.

이는 제약사 내부 Market Access(MA) 조직의 역할을 외부가 대체한다는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제품 전략과 최종 의사결정, 보건당국과의 소통은 내부 조직이 맡으면서 경제성평가 모델이나 제도 영향 분석 등 전문성과 프로젝트 성격이 강한 업무에 외부 역량을 활용하는 형태에 가깝다.

최근에는 로펌과 전문 컨설팅업체가 담당하는 영역의 경계도 일부 겹치고 있다. 대형 로펌이 약가·급여 전문가를 확보해 정책 분석과 시장 접근 자문까지 영역을 넓히는 반면 컨설팅업체도 경제성평가를 넘어 급여·약가전략과 정책 대응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장하고 있어서다.

신약·적응증 늘자 PR도 외부 활용 활발

PR 분야에서도 외부 전문기업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국내 제약시장에서는 새로운 신약 출시와 기존 제품의 적응증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특히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등은 제품의 개발과 출시 이후 주요 단계마다 질환 및 치료제 관련 정보를 알리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허가 전에는 질환 인지도를 높이고 허가 이후에는 새로운 치료옵션의 임상적 가치를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급여가 결정되면 접근성 변화가 새로운 이슈가 되고 출시 이후에도 적응증 확대와 새로운 임상시험 결과, 장기 추적 데이터와 실사용근거(RWE) 등이 계속 추가된다.

하나의 신약이 출시됐다고 커뮤니케이션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허가와 급여, 적응증 확대, 새로운 임상결과 발표 등 주요 이슈가 이어질 때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는 구조다.

반면 다국적제약사가 신약과 적응증이 늘어나는 만큼 내부 PR 인력을 계속 확충하는 것은 아니다. 내부 커뮤니케이션 조직은 기업 차원의 전략과 본사 대응,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고 제품별 프로젝트의 실행은 외부 에이전시와 나누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에이전시가 담당하는 영역도 보도자료 작성이나 기자간담회 운영에 머물지 않는다. 질환 인식 캠페인, 제품 커뮤니케이션 전략 수립, 미디어 콘텐츠 제작 등으로 업무 영역이 세분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헬스케어 PR업계에서는 관련 경험을 갖춘 인력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임상시험 결과와 의학용어뿐 아니라 허가와 급여제도까지 이해해야 하는 산업 특성상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국적제약사의 조직 재편과 제약 서비스 산업의 성장은 별개의 흐름이 아니다.

제약사가 조직을 효율화한다고 해서 신약의 시장 진입과 판매에 필요한 업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가 신약이 늘고 약가·급여제도가 복잡해지면서 경제성평가와 정책 분석, 컨설팅, 제품 커뮤니케이션 등 제품과 관련된 업무는 세분화되고 있다.

달라진 것은 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제약사가 모든 기능과 인력을 자체 조직에 두기보다 핵심 전략과 의사결정은 내부에서 담당하고, 특정 프로젝트와 전문 업무에는 외부 인력과 경험을 활용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제약사 내부 조직의 효율화가 이어지는 것과 달리 신약을 둘러싼 업무는 더욱 전문화되고 있다. 내부에서 모두 수행하기 어려워진 기능을 외부 전문기업이 나눠 맡으면서 로펌과 컨설팅, PR 등 제약 서비스 산업의 역할도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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