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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연화의 관점] 미뤄 짐작하는 고맥락 문화사회의 대면소통(12)

  • 데일리팜
  • 2022-12-14 09:42:42

이심전심, 척하면 착, 행간 등의 바탕을 이루는 관계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이다. 우리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걸 계면쩍어하고, 상대가 알아서 내 마음을 읽어주길 바란다. 이러한 기술은 '눈치'로 불리며 어릴 적부터 "눈치 좀 봐라, 눈치 챙겨라, 눈치 없이 굴지 마라"의 핀잔, 잔소리 혹은 조언으로부터 습득되고, 수많은 인간관계를 통해 향상된다.

개인의 문화적 속성을 분석하는 토착 문화(indigenous culture) 연구자들은 눈치(Nunchi)를 체면(Chemyon), 정(Jeong), 우리성(we-ness) 등과 함께 한국적 문화를 나타내는 주요 개념으로 설명한다. 아울러 눈치는 화자의 언어, 표정, 눈빛, 처한 상황 등을 관찰해 화자의 욕구를 명확히 파악해 내는 개인의 능력이다. 그래서 눈치가 부족하면 한국 내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문화간 다양성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눈치를 강조하는 문화를 고맥락 문화(high context culture)로 범주화하였다. 나아가 홀은 한국, 일본, 중국과 같은 동양은 고맥락, 서양은 저맥락 문화로 구분하였는데, 두 문화권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를 보였다.

먼저, 고맥락 문화권의 사람들은 상황적 맥락에 따라 암시적으로 의미를 나타내거나 비언어적 혹은 모호한 표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고맥락 문화권에서는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알아서 눈치껏 반응하는 커뮤니케이션보다 낮게 평가하곤 한다. 반면, 저맥락 문화권의 사람들은 직접적이고 세부적인 묘사와 명백한 표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울러, 그들은 모호한 언어 사용은 빈약한 정신세계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홀은 국가 간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고/저 맥락 구조를 사용했는데, 이 틀은 세대 간, 조직 간, 지역 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어떤 그룹과 다른 그룹 간의 차이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맥락 경험이 적은 세대는 그렇지 않은 세대보다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특히 2000년 이후 세대, 텍스트 소통이 익숙한 세대는 언어적, 명시적, 직접적인 표현을 편하게 생각한다. 또한 익명성이 강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아파트 거주자들은 서로의 맥락을 잘 알 수 없기에, 명확하게 언어화된 표현으로 (비대면 게시판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게 된다.

이러한 문화적 커뮤니케이션 특징을 이해하고, 약국을 들여다보자. 약국에 고객이 들어온다. 약사들은 온몸의 촉수를 세워 고객의 맥락을 읽고 싶지만, 마스크 상황에서 상대의 얼굴을 간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눈빛을 읽어 보고 싶지만, 많은 이들이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하듯이, 안녕하세요. 처방전 받았습니다. OOO 님 오늘 받으신 약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혹은 찾으시는 것 있으신가요? 등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간다. 그런데 고객 대부분은 단답형 메시지 이외 별다른 피드백이 없다. 약사들은 고객들의 무반응을 근거로, 침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객의 입장을 보자. 고객은 이미 그 약국을 서너 번 이상 방문했다. 약사가 오늘은 알아봐 줄까 싶었는데, 오늘도 처음 보는 것처럼 나를 대한다. 약사 얼굴을 보기 전에는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왜냐면 물어보는 것을 따지고 든다고 생각할까 봐서이다. 그냥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면서 고객들 역시 자신의 맥락을 경험 삼아 약사를 평가한다. '나를 기억 못하네. 나에게 관심이 없나?' 그래서 "그냥 그래"라는 말로 결론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약사는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 직종이다. 그래서 관계의 오해를 적게 만들 수 있는 저맥락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저맥락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기초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어머니로 불리는 클로드 섀넌과 워렌 위버(Claude E. Shannon and Warren Weaver)의 모델로 학습할 수 있다. 1948년 섀넌은 미국의 수학자였고, 위버는 과학자였는데,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론" 논문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선보였다.

이 모델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은 선형적인 과정을 가지고 있으며 말하는 사람이 1차 역할, 듣는 사람이 2차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말하는 사람이 원천 정보에서 필요한 메시지를 골라 정확하게 전송(transmitter)하지 않으면 듣는 사람은 정확한 수신(reception)을 할 수 없다. 또한 그 과정에서 노이즈로 방해받을 수 있는데, 이 노이즈의 개념은 소음의 뜻이기도 하지만 집중을 떨어뜨리는 다양한 방해요인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예컨대, 고맥락 사회에서는 [눈치 강요]와 같은 사회적 압박과 [미루어 짐작]하려는 나의 의지가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는 노이즈 요인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듣는 사람이 수신과 관련한(잘 이해했는지) 피드백을 주어야 커뮤니케이션이 완성된다.

약사의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의 약물 치료 효과 극대화를 위한, 직능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약사는 듣는 사람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기보다는 맥락을 낮추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고객이 특정 제품을 지목하고,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일지라도, 그거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소? 식의 TMI(Too Much Information; TMI)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이해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피드백 요청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약국 현장의 현실적 특성상 모든 사람에게 구구절절 친절한 TMI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하루 5~10명 정도를 목표로 구체적인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라는 제안을 한다. 약국은 많은 경우 한 지역에서 오랜 기간 고정되어 있어서, 하루 10명 정도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지역 구성원들의 맥락이 조금씩 읽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조금은 읽어주는 고맥락 커뮤니케이션의 장점도 시너지처럼 발휘될 수 있다.

맥락을 파악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사람에 따라 맥락을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는 맞춤형(tailoring) 커뮤니케이션의 기초가 되어준다. 궁극적으로, 맞춤형 커뮤니케이션은 나라는 브랜드, 내 약국 브랜드의 충성도를 높여준다. 그러니 미루어 짐작하지 말고, 맥락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고 말을 건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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