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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모연화의 관점] 그럼에도 설득이 필요합니다(36)

  • 데일리팜
  • 2023-05-30 18:56:00

4년 전,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스마트폰을 사주었다. 핸드폰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핸드폰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 두뇌에 미치는 영향, 팝콘 같은 지식은 인간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며, 원래의 취미인 독서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주야장천 했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스마트폰을 자제력 있게 사용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중간고사를 망친 후 아이는 앉아있는 시간 동안 실제 집중하는 시간이 짧은 이유가 스마트폰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스마트폰과 헤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사주기 전 왜 사주지 않는지부터, 사준 후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은지를 약 7~8년간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 전략 안에서 설명했지만, 내 아이가 실제로 변한 건 스스로 인과관계를 발견하고 자신이 자신을 설득하고, 스마트폰에 죄를 묻겠다 결심한 후이다.

나는 나의 메시지가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결정했다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설득이다. 다시 말해, 설득이란 내가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사람의 자기 설득을 돕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설득을 자신이 말하는 대로 상대가 행동하는 마법 같은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설득이 아니다. 그것은 내 의견에 따르라는 위계적 세계관에 의한 강요일 뿐이다.

설득은 자유의지를 가진 대상자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할 뿐, 선택은 대상자의 몫이라는 걸 이해하며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한쪽만 이익을 보는 주장, 일명 선전, 선동, 가스라이팅 같은 비윤리적인 심리전도 설득 커뮤니케이션 범주에 들어올 수 없다.

노스웨스턴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 교수인 다니엘 오키프(Daniel J. O'Keefe)가 설득을 “일정한 자유를 가진 피설득자를 대상으로 그의 관념이나 생각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적 노력”으로 설명한 이유도 바로 설득의 주체는 사실 대상자이기 때문이리라.

종합하자면, 설득은 인내와 지구력을 가지고, 대상자에게 끊임없이 다가가고, 주장에 다양한 근거를 추가해 시시때때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게다가 대상자의 기억 속에 그 메시지가 존재해야 하므로 장기 기억에 들어갈 수 있는 메시지 전략 역시 중요하다. 특정 상황에서, 대상자는 관련 기억을 꺼내어, 다시 생각하고 자신에게 ‘엄마가 그러는데/ 약사가 그러는데/ 미디어가 그러는데, 이게 맞을까?’라며 묻고, 다양한 수단으로 검증하고 나중에서야, ‘그럴싸하군. 혹은 믿을 만하군’으로 결론 내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마케팅 용어로는 회상(recall)과 재인(recognition)으로 설명한다. 마케팅 맥락에서, 회상은 보조 도구 없이도 브랜드 관련 지식을 떠올리는 걸 의미하고, 재인은 어떤 보조 도구를 통해 로고나 광고 메시지를 떠올리는 걸 의미한다.

인간의 인지구조에서, 정보는 나의 기존 지식을 토대로 의미를 구조화한 스키마에 의해 해석된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회상과 재인 과정을 토대로 나의 스키마를 발동시킨다.

그래서 좋은 메시지에 꾸준히 노출되는 경우, 그 메시지에 의해 서서히 설득되고 급기야 좋은 행동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꾸준히 좋지 않은 메시지에 의해 삶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게 설득되는 경우 건강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권고할 만한 행동에 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메시지 전략을 사용해서 상대에게 왜 이 행동이 필요한지, 이로운지 설명하고 꾸준한 진정성을 느끼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진정 대상자가 원해서 그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즉, 설득은 순간이 아니다. 그래서 설득에 능한 사람들은 대상자가 지금 당장 행동의 변화를 보이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기에, 하염없이 기다릴 줄 안다. 그리고 대상자의 변화 결과에 진심으로 응원을 보낼 수 있다.

사실, 설득자도 사람인지라 설득 성공 이후, “내가 말했잖아.”라고 말해주고 싶을 거다. 하지만 메신저는 사라지고 메시지만 남는 수면자 효과(sleeper effect)를 기억해야 한다. 설득한 나는 사라지고, 상대가 취득한 메시지가 상대의 걸로 남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다. 누군가 감사를 표한다면, 그가 난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약사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으로 들어가 보자. 약사는 매 순간 대상자의 약물 요법, 건강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강 행동을 권고한다. 하지만 뭐 팔려고 그러나? 라는 눈빛을 마주하거나,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상대의 반응을 보며 지쳐가기도 한다.

단언컨대, 진정성이 담긴 메시지는 반드시 쌓인다. 진심으로 상대를 위해 전달한 메시지는 상대의 장기 기억 속에 들어가 기존 지식과 합쳐서 스키마로 형태로 존재하다가, 언젠가 반짝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역할- 고객의 건강 결과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득을 오늘도 시도해보자. 어떻게 하면 약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먹을 수 있는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양성분은 무엇인지, 어떤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게 좋은지 끊임없이 이야기해 보자.

결국엔, 상대의 스키마에 메시지를 넣어준 사람만이 남지 않을까. 의식적으로 메시지의 주인은 기억하지 못해도, 무의식적으로 신뢰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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