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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연화의 관점] 부작용 두려워…"복약없이 결과 없다"(15)며칠 전,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말씀하시길, 건강 검진 후 새롭게 처방받은 고지혈증약을 반 알씩 잘라서 복용하고 계신단다. 의사 몰래 그렇게 하려다 보니 진료는 제때 받으시고, 약은 남고,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까 걱정이시란다. 왜 그러시는지 여쭈어보니 '그냥 뭐.'이러시며 얼렁뚱땅 넘어가신다. 캐묻고 캐물으니 뉴스에 고지혈증약 부작용이 나왔는데 너무 무서워서 못 드시겠단다.사람들은 삶의 맥락에 따라 위험에 가중치를 두기도 하고 이익에 가중치를 두기도 하며 치료 여부를 결정한다. 치료의 핵심은 환자의 동의와 실행이다. 그래서 복약 이행(Medication adherence)은 환자가 약물치료에 동의하고 복용을 실행하는 과정, 반대로 치료에 동의하지 않거나 복용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복약 비이행(Medication non-adherence)으로 정의된다.그리고 복약 비이행은 약물 복용을 하는 사람의 '의식적 의도'에 따라 의도적(intentional), 비의도적(unintentional) 복약 비이행으로 구분된다. 구체적으로 의도적 복약 비이행은 의약품 소비자가 스스로 판단하여 약을 중단하거나 줄여서 복용하는 것을 의미하고, 비의도적 복약 비이행은 주의가 부족하거나, 약 복용을 잊어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비이행을 의미한다.정의에 따르면, 내 엄마는 의도적 복약 비이행 중이시다. 참고로, 약을 의도적으로 줄이거나 건너뛰는 의도적 비이행은 65세 이상 어르신들 사이에서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전통적인 의료 관점에서 복약 비이행은 의료 공급자를 중심으로 평가되었다. 의사와의 관계, 혹은 약사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또는 관련 지식 부족에 의해 의도적 비 복용이 발생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의약품 설명서를 제공하거나, 친절한 복약 알람 등을 해주면 복약 이행의 비율이 높아질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비이행의 비율은 크게 경감되지 않았다.이것은 복약 비이행 연구 방향을 전통적인 의료 관점에서 환자의 관점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요인에 대한 탐구, 즉 의도적으로 약을 중단하는 이유에 대한 환자 중심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에, 개인이 약물치료에 관해 가진 신념을 측정하기 위해 BMQ(Belief Medication Questionnaire)가 개발됐다.BMQ는 크게 약물 치료에 대한 우려와 필요 차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우려 신념은 장기간 복용에 대한 우려, 의존에 대한 우려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요 신념은 자기 삶을 위한 약물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지각하고 있느냐에 관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요-우려’모델은 약물 치료에 대한 환자의 심리적 신념이 치료 참여에 영향을 미쳐 권고대로 복용하지 않는 행동을 설명한다.BMQ와 복약 이행의 인과를 파악한 연구들에 따르면, 우려 신념은 의도적 복약 비이행과 더불어, 비의도적인 복약 비이행으로 알려진 건망증과 부주의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환자들에게 왜 약을 먹지 않냐고 물어보면 그저 “잊었다”라고 대답하지만, 약물 치료에 대한 우려 신념과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났다. 즉 약물 치료에 대한 우려는 무의식을 침투해 약을 피하게 만들고, 잊음을 합리화하는지도 모른다.아울러, 의도적 복약 비이행은 의약품에 대한 부작용 인식과 높은 관련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작용 메시지에 노출된 사람은 부작용 발생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이것이 [걱정, 우려된다]는 신념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약의 부작용에 대한 위험 인식은 치료의 시작 그리고 치료 시작 후 6개월까지 가장 높게 유지된다. 이미, 1년 이상 복용을 진행한 환자군은 1년간 부작용의 경험이 없었기에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점차 낮아진다. 즉, 의도적으로 약을 끊는 사례는 약을 처방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어쨌든, 엄마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해드렸다. 먼저 좋은 의사라면 엄마의 고민을 무시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고, 의사에게 약의 부작용이 무서워 약을 반 알씩 드신다고, 그렇게 드시고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면 고지혈증 수치 관리가 가능한지 솔직하게 여쭤보라고 말씀드렸다. 엄마의 고지혈증 수치가 아주 높으면 의사가 절대 안 된다고 할 것이고, 수치가 관리할만하다면, 의사 역시 시도해 보자고 할 거라고.그리고 약사로서 동맥경화를 예방하기 위한 고지혈증약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방하는 약이니, 엄마가 꾸준히 잘 복용하셨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엄마가 걱정하는 치매나 근육 부작용은 오천 보 이상 걷고 빵과 떡을 적게 드시는 것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결론적으로, 엄마는 의사에게 말할 용기는 아직 없는 듯, 그녀의 의도적 비이행을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려 신념은 좀 낮아져, 다행히 현재는 용량대로 드시고, 운동을 꾸준히 하신다. 안타깝지만, 빵과 떡은 아주 조금 줄이셨다.의료 데이터 연구자인 의사 로버트 멘츠(Robert J. Mentz MD)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심혈관질환과 관련 지역사회 기반 역학 조사인 JHS(Jackson Heart Study) 자료에 따르면, 만성질환자의 72.9%에서 간헐적 복약 비이행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나아가, 미국 처방전 데이터를 살펴보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에서 발행된 외래 처방전은 한 해 평균 약 40억 장 정도인데, 절반 이상의 환자들이 처방대로 복용하지 않았고, 이러한 복약 비이행에 의해 발생하는 의료비용은 약 5,284억 달러에 달하며 관련 사망자는 매년 약 275,689명 이상이란다.이러한 현실에서 약물 부작용에 관한 정확한 정보, 예방, 관리에 대해 환자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논의할 수 있는 전문가는 지역 약국 약사다. 아울러, 의약품에 관한 과도한 심리적 우려를 낮춰 복약 이행을 높일 수 있는 전문가 또한 지역 약국에서 헬스-커뮤니케이션하는 약사라는 것을 정책 입안자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 심리적인 우려를 낮추는 커뮤니케이션, 혹은 동기를 부여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큼의 티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건강 결과에는 꽤 많은 영향을 미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복용이 없는 곳엔 결과도 없다.2023-01-04 12:01:44데일리팜 -
[사설] 의약계 패러다임 변화와 멈출 수 없는 마라톤계묘년 (癸卯年) 태양이 떠올랐다. 2023년 긍정의 시그널보다는 위기의 신호가 감지된다. 경기불황과 강력한 규제의 연속은 의약산업계를 수렁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R&D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며 글로벌기업으로 우뚝 서기 위한 최종 목표를 향해 묵묵히 달려왔던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열매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의약산업계에 걸쳐있는 그림자는 암울하다.수 년 간 불순물 파장으로 멍들었던 제약업계는 지금도 계속되는 후폭풍으로 가슴을 졸이고 있고, 강력한 허가 약가 규제정책은 산업계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급여재평가 사업과 해외 약가참조국 확대 정책은 이미 급여 등재된 제네릭과 신규 도입될 약제들의 급여 생존 여부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제약바이오산업계는 신약 개발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위반 시 인증을 취소하는 'GMP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는 지난해 12월 시행 이후 품질경영과 정도경영을 산업계에 주문하고 있다.조제용 감기약의 대대적인 품절로 야기된 제약기업, 유통기업, 일선 약국들의 어려움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이런 상황에서 제약바이오기업들은 미래 먹거리를 위한 과감한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LG화학이 8000억원을 투자해 이뤄낸 미국 바이오기업 인수와 에스디바이오센서의 미국 체외진단기업 2조원대 인수는 긍정적인 시그널이다.롯데그룹 지주회사인 롯데지주가 미국 BMS 공장을 약 2000억원에 인수한 것은 향후 산업계 생태계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해서 2023년 의약산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거대한 물결 속에 서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급변하고 있는 패러다임에 순응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은 계묘년 의약산업계에 던져진 숙제다.GMP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와 맞물려 의약품 품질관리 향상은 이젠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공정 경쟁과 준법경영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올해 최악의 경기침체와 각종 규제정책 속에서 다양한 시장환경 변화가 예고된 만큼 힘든 한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약바이오기업들은 그동안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내는 방법을 습득했고 이를 실현해왔다. 끊임없는 도전과 벤처정신으로 무장해 글로벌 시장이 인정하는 기업, 국민이 신뢰하는 기업이 되기 위한 경주를 게을리 하면 안된다.정부도 의약산업계가 뿌리를 튼튼히 다질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해 줘야 한다. 신약개발 R&D 투자를 촉진시킬 수 있도록 허가 및 약가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예측 가능성을 갖고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 줘야 한다.2023년 정부와 의약산업계가 함께 호흡하며 보건의약 산업 규모를 키워나갈 때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은 순풍에 항해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올해도 멈출 수 없는 마라톤은 계속되어야 한다.2023-01-02 10:34:41데일리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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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연화의 관점] 상황의 문제일까, 사람의 문제일까(14)커뮤니케이션은 어렵다. 특히 예측이 가능한 메시지를 던졌을 때 예측과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경우, 커뮤니케이션은 무서워진다. 가령, A약사의 경우를 보자. 그는 약국을 개국한 후, 친절을 다짐하며 약국에 들어오는 환자에게 건강과 안부의 말을 건네고자 했다(greeting). 그래서 가장 보편적인 안부 메시지인 "안녕하세요"와 친절함의 상징기호인 '미소'를 함께 보냈다.그런데 "안녕하면 여길 오겠소"라는 답과 함께, 아파 죽겠는데, 왜 웃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A약사는 내가 만만한가? 저 사람 나를 싫어하나? 약국에서는 안녕하냐고 물으면 안 되는 건가? 약국에서는 웃으면 안 되는 건가? 라는 별의별 생각들을 하다가, 사람들이 약국에서는 안녕하냐는 안부 인사와 미소를 싫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사를 눈인사로 바꾸고, 미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수정했다.이 같은 A약사의 원인 추론 과정은 귀인이론(attribution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귀인이론은 개인이 행동 또는 사건을 해석하여 원인을 내부적 혹은 외부적으로 귀속시키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발전시킨 하이더(Heider, 1958)는 사람들이 어떤 결과의 원인을 파악하는 방법을 "인간(성향) 대 환경(상황) 요인"으로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인간(성향, 기질)을 원인으로 보는 것은 내적 요인이고, 환경(상황)을 원인으로 보는 것은 외적 요인이다.예를 들어, A약사가 환자의 반응을 "저 사람은 내가 싫은가? 만만한가?" 혹은 "내가 말을 잘못했나?"로 귀인 하는 것은 내적 요인 혹은 기질적 요인에 기반한 귀인이다. 반면 "약국에서는 인사가 안 맞나?" 혹은 "아파서 그런가 보다"로 귀인 하는 것은 외적 요인 혹은 상황적 요인에 기반한 귀인이다.사회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타인의 행동 원인을 추론하는 데 있어, 상황보다는 기질 혹은 성향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직원이 지각했다고 가정해보자. 대부분 사람은 지각을 기질적 요인(게을러, 시간관념이 없어)으로 귀인 하는 경향을 보인다. 약국에서 누군가 화를 냈다고 가정해봐도 비슷한데, 진상 혹은 성격이 이상하다는 것으로 귀인하는 경우가 많다.특히 한국인들은 역동적인 사회 변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릴 때부터 경쟁에 의한 성장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내부 통제력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이를테면,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고,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통제 가능성에 관한 기대는 질병 상황에서도 발생한다.즉, 한국인들은 어떤 사람이 질병으로 진단받았을 때 환경보다는 개인의 통제력에서 원인을 찾고, 질병에 의해 예민해진 상태일 때도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을 원인으로 찾는 경향이 크다. 안타깝게도, 환경의 영향보다는 개인이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 통제 가능성 신념은 공부 성과가 좋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의 소유자일수록 크다. 다시 말해, 공부를 잘했던 그대는 상황의 힘이나 아픔의 힘에 굴복하는 상대에게 공감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그런데 상황의 힘은 생각보다 크고, 통제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고통의 힘, 아픔의 특성은 개인별로 한정된 자제력을 넘어선다. 배가 아픈 사람은 아무리 의지가 충만해도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머리가 아픈 사람은 욱신대는 통증으로 양미간에 주름을 잡는다. 손거스러미나 혓바늘이 날을 세우면 매 순간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호르몬은 어떠한가? 호르몬이 요동칠 때는 제3의 자아가 나타나기도 한다.즉, 불편함과 괴로움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야기하고, 생리적인 신체 기능은 떨어뜨린다. 경험하는 증상으로 야기된 상황적 요인들은 인간과 인간이 상징화된 기호를 메시지로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는 과정인 커뮤니케이션까지 방해한다. 특히 한정된 이해력과 자제력을 떨어뜨려, 작은 일에도 예민한 반응을 초래한다. 그 결과, 안부 인사와 미소에 적절한 피드백을 줄 의지조차 부족해지는 것이다.소설가 김훈은 그의 산문 [라면을 끓이며]에서 젊은 의사가 배운 학문의 보편성이 개별적인 고통의 이해와 관련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김훈의 시선대로라면, 증상 및 질병 그리고 약의 과학적 특징을 보편적 지식의 형태로 배운 약사도 다르지 않다. 나 역시, 고통의 특수성보다는 상대의 성품을 원인으로 귀인하곤 하니 말이다.귀인이론은 타인을 판단하는 잣대의 공정함에 관한 통찰을 준다. 타인의 잘못을 평가할 때도 "그 사람 때문이야"보다는 나의 잘못을 평가할 때처럼 "상황이 좋지 않았어"로 외적 귀인, 상황적 귀인 하기를 제안하며 말이다. 이것은 약국에 방문한 사람이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장기가 짜증을 내는 거라는 관대한 관점 형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경험치가 많은 선배 약사의 '그럴 수 있지' 기술은 사실, 귀인이론과 맞닿아 있다.정리하자면 어딘가 불편한 사람들이 방문하는 공간의 무게는 꽤 묵직하다. 그래서 약국 현장 커뮤니케이션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개인의 쌀쌀한 반응을 그저 나를 싫어하나보다 혹은 성격이 별로인가로 치부하기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 알 수 없는 환경의 힘이 크다.타인을 평가할 때, 내적 귀인 보다는 외적으로 귀인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그것은 어찌 보면 삶의 여유일 수 있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 개인이 겪는 상황, 혹은 그를 둘러싼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유기적 존재인 인간을 다시금 이해하며 커뮤니케이션에 임해보자.2022-12-29 10:54:49데일리팜 -
[모연화의 관점] 약효의 시간적 거리감과 메시지 전략(13)지금(now), 여기(here), 나 자신(self)은 어떤 대상에 관한 거리감을 식별(identification)하는 사람들의 기준이다. 예를 들어 시간상으로 내일은 가깝고, 10년 뒤는 멀다. 공간적으로 대한민국은 가깝고, 아프리카는 멀다. 사회적으로 내가 속해 있는 그룹은 가깝고, 나랑 관계없는 그룹은 멀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지금-여기-나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계산한다.이러한 심리적 거리감은 사건과 대상에 관한 판단 및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당장 내일 어딘가로 떠난다고 가정을 해보자.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할지, 준비물은 무엇을 챙길지, 구체적이고 방법론적인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반면 10년 후 여행을 상상해보자. 구체적인 방법보다는, 정말 원하는 여행은 무엇인지, 추구하고 싶은 의미는 무엇인지, 무엇을 경험하고 싶은지 등 목적 지향적인 생각들을 하게 된다.해석수준이론(construal level theory)은 거리감에 따른 심리적인 표상, 즉 가치를 두는 영역이 달라진다는 것을 검증하며, 구체적이고 방법론적으로 대상에 관해 생각하는 걸 하위-해석수준, 추상적이고 목적론적으로 대상에 관해 생각하는 걸 상위-해석수준이라 명명했다. 하위해석수준인 경우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지 등에 가치를 두고, 상위해석수준인 경우 본질적이고 바람직한지 등에 가치를 둔다.이러한 해석수준이론은 심리적 거리감과 해석수준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메시지 전략에 활용된다. 이를테면, 가까운 거리감일 때는 행동 방법을 강조하거나 실행 가능성을 제시하는 하위해석수준 메시지가 좀 더 설득적이고, 먼 거리감일 때는 행동 목적을 강조하거나 바람직성을 말해주는 상위해석수준 메시지가 좀 더 설득적일 수 있다고 이론은 설명한다.이러한 이론을 적용해 금연 메시지를 도출해 보자. 내일부터 당장 담배 끊기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체적인 방법론(약의 종류, 처방 방법 등) 위주의 메시지가 금연의 이유나 목적을 강조하는 메시지보다 더 설득적일 것이다. 반면, 아직 금연을 먼 미래처럼 느끼는 사람에게는 금연의 바람직성, 이유, 목적과 같은 추상적인 메시지가 더 설득적일 것이다.이번에는, 의약품 메시지에 해석수준이론을 적용해보자. 의약품은 효능에 따라, 다른 시간적 거리감을 만들어 낸다. 구체적으로 진통제는 복용 후 15분~30분 안에 통증이 억제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반면 고혈압약은 복용 후 자각 증상은 없지만, 장기간 복용 후에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약이다. 즉, 전자는 시간적 거리감이 짧고, 후자는 길다고 볼 수 있다.사실 진통제 복용을 설득해서 해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고혈압약과 같은 만성질환 약은 장기간의 꾸준한 복용을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러한 순간에 메시지 전략이 필요하다. 어떤 메시지가 적당할까? 해석수준이론을 적용해보면, 고혈압약은 시간적 거리감이 멀기 때문에 이유, 목적, 바람직성의 요인을 갖춘 메시지가 사람들의 심리적 거리와 궁합이 좋을 거라 가정해볼 수 있다.해석수준이론과 메시지 전략에 관한 강의를 하고, 약사들에게 고혈압약에 관한 복약 이행 설득 메시지를 도출해 보라고 하면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서 고혈압약을 꾸준히 드세요"라는 메시지가 가장 많이 나온다. 앞서 시간적 거리감이 멀 때는, 목적을 강조하라는 부분에 기대어 나온 메시지로 판단된다.약사들은 가능성이 좀 더 높은 정답을 취하는 이과적인 방식에 최적화되어 있어, 메시지 정답의 정답도 이론이 확실히 말해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론은 어떤 개념을 설명할 때, 정답 찾기처럼 설명하지 않는다. 예컨대, 해석수준이론은 상위-해석수준의 특징을 "단순성, 구조화, 핵심성, 상위가치, 바람직성" 등으로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론이 개념을 다양하게 제시하는 이유는 맥락에 맞게 이 모든 것을 잘 고려해야 수용자에게 닿을 수 있는 메시지가 나오기 때문이다.이런 맥락에서,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서 고혈압약을 꾸준히 드세요"라는 메시지를 평가해 보자. 약사는 고혈압의 합병증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합병증이라고 똑같이 읽지만, 예측할 수 있는 범위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고혈압약의 목적 중 최상위가치를 합병증보다는 고혈압약 논문들의 종속변인인 사망률 저하로 규정하고, 언어화해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고혈압약을 꾸준히 드세요."로 도출했다. 어떠한가? 메시지 수용자로서는 사망률이라고 하니, 좀 더 생생한 느낌일 것이다.그런데 뭔가 바람직한 핵심이라는 느낌은 덜 들지 않는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인 로빈 나비(Robin L. Nabi)는 건강행동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희망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 생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필자는 "사망률을 낮추기 위함"이라는 메시지에 긍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수명 연장 혹은 생명 연장”을 덧붙이는 시도를 했다.결론적으로 수십 번의 시도 끝에 해석수준이론을 적용한 고혈압약 설득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도출되었다. "고혈압약은 혈관 손상에 의한 사망률을 낮추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필자는 이 메시지를 상위해석수준 메시지라 명명하고 방법을 강조하는 하위해석수준 메시지와 비교해서, 어떤 메시지가 만족도와 복약이행의도를 높이는지 검증했다. 방법을 강조한 메시지는 "고혈압약은 하루에 한 번, 비교적 같은 시간에 의사가 지시한 용량을 자르거나 쪼개지 않고 복용하도록 합니다. 고혈압약은 식사와 크게 관계없이, 한 컵의 물과 함께 복용하는 것을 권장합니다."였다.1,200명을 대상으로 두 메시지를 보여주고, 어떤 메시지가 더 만족스러운지, 어떤 메시지를 보았을 때 복약 이행 의도가 높아지는지 비교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시간적 거리가 먼 경우(고혈압약의 복용 결과가 미래인 경우) 복용의 목적과 바람직성을 강조한 메시지가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정리하자면 이론은 메시지의 방향성은 알려준다. 그런데도, 그 방향에 맞춰 가장 적당한 메시지를 도출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조금 더 나은 메시지, 수용자에게 닿을 수 있는 메시지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론과 이론을 구성하는 적확한 개념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수용자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 역시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한 설득 즉, 질병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설득을 위한 메시지를 도출하는 연습은 약사들에게 필수 불가결해지고 있다. 현장에서 약사와 사람들을 잇는 건 커뮤니케이션이고, 그것이 건강 결과를 만들고, 결과는 내 업의 이유이니 말이다.2022-12-21 09:50:28데일리팜 -
[모연화의 관점] 미뤄 짐작하는 고맥락 문화사회의 대면소통(12)이심전심, 척하면 착, 행간 등의 바탕을 이루는 관계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이다. 우리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걸 계면쩍어하고, 상대가 알아서 내 마음을 읽어주길 바란다. 이러한 기술은 '눈치'로 불리며 어릴 적부터 "눈치 좀 봐라, 눈치 챙겨라, 눈치 없이 굴지 마라"의 핀잔, 잔소리 혹은 조언으로부터 습득되고, 수많은 인간관계를 통해 향상된다.개인의 문화적 속성을 분석하는 토착 문화(indigenous culture) 연구자들은 눈치(Nunchi)를 체면(Chemyon), 정(Jeong), 우리성(we-ness) 등과 함께 한국적 문화를 나타내는 주요 개념으로 설명한다. 아울러 눈치는 화자의 언어, 표정, 눈빛, 처한 상황 등을 관찰해 화자의 욕구를 명확히 파악해 내는 개인의 능력이다. 그래서 눈치가 부족하면 한국 내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문화간 다양성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눈치를 강조하는 문화를 고맥락 문화(high context culture)로 범주화하였다. 나아가 홀은 한국, 일본, 중국과 같은 동양은 고맥락, 서양은 저맥락 문화로 구분하였는데, 두 문화권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를 보였다.먼저, 고맥락 문화권의 사람들은 상황적 맥락에 따라 암시적으로 의미를 나타내거나 비언어적 혹은 모호한 표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고맥락 문화권에서는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알아서 눈치껏 반응하는 커뮤니케이션보다 낮게 평가하곤 한다. 반면, 저맥락 문화권의 사람들은 직접적이고 세부적인 묘사와 명백한 표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울러, 그들은 모호한 언어 사용은 빈약한 정신세계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홀은 국가 간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고/저 맥락 구조를 사용했는데, 이 틀은 세대 간, 조직 간, 지역 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어떤 그룹과 다른 그룹 간의 차이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맥락 경험이 적은 세대는 그렇지 않은 세대보다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특히 2000년 이후 세대, 텍스트 소통이 익숙한 세대는 언어적, 명시적, 직접적인 표현을 편하게 생각한다. 또한 익명성이 강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아파트 거주자들은 서로의 맥락을 잘 알 수 없기에, 명확하게 언어화된 표현으로 (비대면 게시판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게 된다.이러한 문화적 커뮤니케이션 특징을 이해하고, 약국을 들여다보자. 약국에 고객이 들어온다. 약사들은 온몸의 촉수를 세워 고객의 맥락을 읽고 싶지만, 마스크 상황에서 상대의 얼굴을 간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눈빛을 읽어 보고 싶지만, 많은 이들이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하듯이, 안녕하세요. 처방전 받았습니다. OOO 님 오늘 받으신 약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혹은 찾으시는 것 있으신가요? 등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간다. 그런데 고객 대부분은 단답형 메시지 이외 별다른 피드백이 없다. 약사들은 고객들의 무반응을 근거로, 침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객의 입장을 보자. 고객은 이미 그 약국을 서너 번 이상 방문했다. 약사가 오늘은 알아봐 줄까 싶었는데, 오늘도 처음 보는 것처럼 나를 대한다. 약사 얼굴을 보기 전에는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왜냐면 물어보는 것을 따지고 든다고 생각할까 봐서이다. 그냥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면서 고객들 역시 자신의 맥락을 경험 삼아 약사를 평가한다. '나를 기억 못하네. 나에게 관심이 없나?' 그래서 "그냥 그래"라는 말로 결론 내리기도 한다.그런데 약사는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 직종이다. 그래서 관계의 오해를 적게 만들 수 있는 저맥락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저맥락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기초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어머니로 불리는 클로드 섀넌과 워렌 위버(Claude E. Shannon and Warren Weaver)의 모델로 학습할 수 있다. 1948년 섀넌은 미국의 수학자였고, 위버는 과학자였는데,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론" 논문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선보였다. 이 모델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은 선형적인 과정을 가지고 있으며 말하는 사람이 1차 역할, 듣는 사람이 2차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말하는 사람이 원천 정보에서 필요한 메시지를 골라 정확하게 전송(transmitter)하지 않으면 듣는 사람은 정확한 수신(reception)을 할 수 없다. 또한 그 과정에서 노이즈로 방해받을 수 있는데, 이 노이즈의 개념은 소음의 뜻이기도 하지만 집중을 떨어뜨리는 다양한 방해요인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예컨대, 고맥락 사회에서는 [눈치 강요]와 같은 사회적 압박과 [미루어 짐작]하려는 나의 의지가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는 노이즈 요인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듣는 사람이 수신과 관련한(잘 이해했는지) 피드백을 주어야 커뮤니케이션이 완성된다.약사의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의 약물 치료 효과 극대화를 위한, 직능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약사는 듣는 사람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기보다는 맥락을 낮추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고객이 특정 제품을 지목하고,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일지라도, 그거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소? 식의 TMI(Too Much Information; TMI)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이해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피드백 요청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약국 현장의 현실적 특성상 모든 사람에게 구구절절 친절한 TMI를 하기는 쉽지 않다.그래서 하루 5~10명 정도를 목표로 구체적인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라는 제안을 한다. 약국은 많은 경우 한 지역에서 오랜 기간 고정되어 있어서, 하루 10명 정도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지역 구성원들의 맥락이 조금씩 읽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조금은 읽어주는 고맥락 커뮤니케이션의 장점도 시너지처럼 발휘될 수 있다.맥락을 파악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사람에 따라 맥락을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는 맞춤형(tailoring) 커뮤니케이션의 기초가 되어준다. 궁극적으로, 맞춤형 커뮤니케이션은 나라는 브랜드, 내 약국 브랜드의 충성도를 높여준다. 그러니 미루어 짐작하지 말고, 맥락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고 말을 건네보자.2022-12-14 09:42:42데일리팜 -
[모연화의 관점] 약? 병? 직전 행동? 무엇 때문인가(11)건강 심리학 교수 키스 펫리(Keith Petrie)는 뉴질랜드의 인구를 대표하는 표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주 동안 경험한 증상(symptom)을 조사했다.결과에 따르면 한 주간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고 답한 참가자는 10.6%에 불과했고 참가자들이 경험한 증상 수의 중간값은 5개에 달했다. 많이 호소한 증상은 요통(38%), 피로(36%), 두통(35%), 콧물이나 코막힘(34%), 관절통(34%), 불면증(29%), 기침(28%), 근육통(23%) 순이었다.이 연구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다양한 증상을 겪는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것을 배경 증상(background symptom)이라 명명했다. 배경 증상은 전년도 의료 기관 방문 혹은 현재의 약물 복용과 유의하게 연관되어 있긴 했지만, 질병을 앓고 있을 때만 발생하지는 않았다. 데이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배경 증상의 비율은 질병 유병률을 웃돌았다.한편, 의사 기린탄(Kirin Tan)과 동료 교수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배경 증상과 자주 처방되는 의약품의 부작용으로 나열된 증상 유형 간에 높은 중복률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흔하게 경험하는 20가지 증상 중 8가지가 90% 이상의 의약품 부작용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설명했다.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도출되었을까? 선행 연구들은 오귀인(misattribution) 이라는 심리적 특유성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했다. 오귀인의 정의 이전에, 먼저 귀인이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귀인(歸因, attribution)은 원인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적 경향성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원인을 추론하고 사건의 결과와 연결해, 인과를 정리하고자 한다.예를 들어 A씨에게 졸음이 몰려오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A씨는 왜 졸리는지 탐구하기 위해 자기 행동을 반추한다. '점심으로 피자를 먹음, 머리가 아파 약을 복용, 커피를 마심' 그러고는 그 원인을 찾아, 결과와 연결 짓는다. 일례로, A씨가 졸림의 원인을 약의 복용으로 추정했다고 치자. 이런 과정 자체가 귀인이다.그런데 기린탄(Kirin Tan)과 동료 교수들은 어떤 증상이 발생했을 때, 그 전에 약을 먹었다고 약 때문이라고 귀인하는 건 오귀인의 일종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인과 결과를 잘못 잇는 오귀인은 귀인 편견(attributional bias) 중 하나인데, 대표적인 예시는 흔들다리 효과이다. 흔들다리를 이성과 함께 건너는 경우, (무서워서) 심박수가 높아지는 걸 사랑의 두근거림으로 (잘못) 추정하는 것이다.사실 A씨는 감기 기운이 있었고, 복용한 약의 성분은 덱시부프로펜으로 졸음이라는 부작용과 큰 관계가 없기에, 졸음의 원인은 감기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혹은 소화되지 않은 피자가 졸음의 원인일 수도 있다. 즉, 약의 부작용인지, 병의 증상인지, 식품이 원인인지 판단하기 어렵다.의약품 부작용으로 꽤 많이 기록된, 설사나 변비 같은 증상도 다르지 않다. 특정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행동을 한다. 약을 먹기도 하고, 비타민을 먹기도 하고, 과일주를 마시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약은 독이고, 약의 부작용은 무조건 존재한다고 생각하므로, 증상과 약의 관계를 인과 관계로 추정해버린다.종합하자면, 약에 관한 [감정과 지각]은 귀인 과정에 영향을 미쳐 오귀인의 원인이 될 수 있다.예컨대 약, 피자, 과일주, 스트레스에 어떤 감정을 품느냐에 따라 결과와의 연결고리가 달라진다. 만약, 약을 먹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나 감정 '나는 약에 예민해, 나는 약이 싫어'를 가지고 있다면 안 좋은 증상의 원인으로 약을 지목하기 쉽다.지각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부작용 증상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고, 인지적으로 지각하고 있다면 내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기 때문에, 원인으로 단정할 가능성이 크다.문제는 이러한 감정과 지각이 장기적으로 치료 행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부정적 감정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부작용 증상을 보고하고, 이것이 모두 약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컸다. 설사, 치료에 의한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그 사실을 부정하고, 다른 요인과 치료 효과를 연결해버리기도 한다. 가령, 약을 먹었을 때는 부작용만 있었고, 치료는 마음이 했다(혹은 식품이 했다)는 식으로 인과를 만드는 것이다.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다면, 행동 여정을 질문하고, 다양한 관점의 귀인을 ‘함께’ 시도할 필요가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고, 가능성을 탐색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하다. 아울러, 22년 10월 19일 자 칼럼에서 논한 노세보 효과를 참고해, 귀인 과정에서 메시지 수용자의 부정적 기대의 영향력도 고려해봄 직하다.물론, 민감한 주제로 환자와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상황이 무섭고 두려울 수 있다. 특히, 학부 과정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실제 상황을 처음부터 잘 풀어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부작용 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약사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증상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걸 잊지 말자.2022-12-07 11:57:34데일리팜 -
[모연화의 관점] 무지를 무시한다? 모르면 확신한다(10)"Ignorance more frequently begets confidence than does knowledge" : Charles Darwin, The Descent of Man1874년 찰스 다윈은 지식보다 무지가 자기 확신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125년 후,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 교수와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는 모른다는 것이 인간 자신을 스스로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원인변수라는 점을 증명했다.구체적으로 두 연구자는 코넬대학교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4개의 실험 연구를 했다. 실험 1은 유머 영역, 실험 2와 4는 논리적 추론, 실험 3은 영어 문법 영역이었고, 각 영역에 배정된 학생들은 관련된 지식에 관한 시험을 본 후, 자기 능력을 (스스로) 평가하는 절차를 거쳤다.실제 지식과 평가한 자기 능력치의 차이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결과에 따르면, 실제 지식 하위 25%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그들의 예상 시험 성과와 능력을 가장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상위 25%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그들의 시험 성과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코넬대학교 학생 수준이면 높은 지식수준을 가지고 있을 거라 예상되는데 그러한 학생들도 쪼개어 보면, 실제 지식 점수가 낮을수록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결과가 말이다.무지와 자기 과신의 관계를 증명한 이 연구는 많은 사람의 가슴을 찔렀기에, "아 정말 이런 기발한! 의 대명사"인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을 받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지식을 높이고, 메타인지 능력을 증가시켜야 역설적으로, 능력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러한 더닝-크루거 효과는 비전문가 집단의 확신적 무지를 연구할 때 많이 활용된다. 정치학 교수인 메튜 모타(Matthew Motta)와 동료들은 백신에 관한 지식이 적은 사람일수록 자기 지식을 과대평가하고, 전문가와 정부 정책을 무시하며, 스스로 판단한 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증명했다. 심지어, 지식이 적은 사람들이 자폐증의 원인과 백신의 관계에 대해 의사나 과학자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백신 캠페인 전략을 도출할 때, 사람들이 전문가의 말을 무조건 수용할 거라는 가정을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구체적으로 무지에 의한 확신을 깨기 위해 전문가들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설명문의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구체적으로, 거듭된 질문을 통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더불어 다양한 근거를 제시해 신뢰를 높여야 한다. 예를 들어, MMR 백신에 우호적인 사람에게는 '홍역, 볼거리, 풍진을 예방해주는 MMR 백신을 맞추세요'라는 설명문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MMR 백신 접종이 비 접종보다 위험하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홍역 백신 이전, 홍역이 영아 사망률 1위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유행성이하선염은 뇌수막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등의 질문으로 관심을 유도하면서, 구체적인 숫자(사망률 및 예방한 생명의 수 등)를 준비해 메시지를 구성해야 한다.아울러 더닝-크루거 효과의 함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러트 러셀(Bertrand Russell)은 어리석은 사람은 쉽게 확신에 차고, 현명한 사람은 자신을 의심하고 주저하기 때문에 진일보가 어렵다고 말했다.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의 현상만 보고, 문제의 원인을 여러모로 살펴볼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비판도 쉽고, 해결 방안도 쉽게 제시한다. 반면, 문제의 원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예상되는 어려움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에 조심스럽고, 신중한 경향을 보인다. 결과론적으로, 앎이 부족한 사람은 더 자신만만하게 나부대지만, 앎이 넘치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덤비기 어려워한다.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의 영화적 대사는 '두렵지만 해보겠습니다'의 쭈뼛거림보다 걱정의 결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더닝-크루거 효과는, 내가 너무 자신만만하다면 앎이 부족한 건 아니냐는 성찰을, 너무 두렵기만 하다면 의외로 출발해도 괜찮다는 격려의 통찰을 준다.약사의 직능은 면허 취득 이후, 뫼비우스 띠 같은 배움의 길에서 완성된다. 매일 쏟아지는 약물 정보와 신약 정보 등, 약물 치료 효과 극대화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건강 결과를 살펴야 하는 약사들은 공부할 게 참으로 많다. 그리고 이러한 공부는 끝이 없는 데다, 서글픈 자기반성을 만들기도 한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오늘도 공부하고, 반성하며 수면 아래 있는 약사들에게 잘하고 있다는 응원을 준다. 매일 반성하는 그대는 최상위권일지도 모른다!2022-12-07 09:28:45데일리팜 -
[오늘약사] 임상시험 현장에서 본 경험과 연결의 가치경험의 차이가 지식을 이동시킨다지식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지만 경험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 특히 경험의 차이가 있을 때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임상시험은 2002년 12월 이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하여 현재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약국에서 진행 중인 연구 수는 1100여 개이고, 누적 연구 수는 4000여 개이다. 진행한 연구 수 뿐 아니라 이 중 60% 정도는 다국가 임상시험으로 글로벌 임상시험의 경험도 풍부하다.얼마 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이러한 앞선 경험을 배우고자 임상시험에 관련한 의사, 약사, 간호사들이 우리 병원 임상시험센터를 방문했다. 약국을 방문한 젊은 약사는 매우 활발하고 또 궁금한 것이 많았다. 2주간 매일 다른 색의 히잡을 머리에 쓰고 찾아오는 또래 약사에게 임상시험약국의 약사들이 돌아가며 관련 경험을 공유하고 20여년간 약국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SOP, 자료들을 전달했다.비록 임상시험약국에서 4년 정도의 경력이었지만 약국에서 관리해온 지식 덕에 사우디 아라비아 약사에게 우리의 경험과 축적된 지식들을 잘 전달할 수 있었다. 문화가 많이 다르지만 또래 약사가 느낀 점은 어디서나 비슷하여 공감 가는 대화를 많이 나눈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이렇듯 경험의 차이는 새로운 지식 습득의 좋은 계기가 된다. 이 때 지식의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바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요청하지 않아도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라전달은 주로 요구가 있을 때 한 방향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때로는 요청하지 않더라도 경험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을 전달하는 것 또한 전문가로서 해야 할 영역이다.임상시험 분야에서 예를 들자면, 임상시험이 처음부터 효율적인 절차와 완벽한 제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기관에서 임상시험용 의약품의 조제와 투약을 하면서 경험한 부분을 토대로 이후 제형 개발이나 효율적인 절차 개선이 이루어지게끔 할 수 있다. 이는 연구의 질과 환자 안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전달의 가치가 있다.1상 용량 증량 설계로 이루어진 연구에서는 정확한 용량 투여가 연구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소량의 용량을 조제할 경우 오차 발생 시 주는 영향은 더 클 것이다. 진행했던 연구의 예를 들면, 1mL 미만의 투여 용량을 주사기로 취하여 불출해야 하고 병동에서 연구자가 직접 필요한 용량을 맞추기 위해 추가적인 조작이 필요한 연구였다.하지만 한 차례 조제와 투약을 한 후 두 가지 오류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현탁액의 특성상 주사기의 입구와 바늘에 조금이지만 투여되지 않고 남아 있는 부피(dead volume)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병동에서 환자에게 투약 직전에 조작하는 추가적인 절차는 거품이 쉽게 생기는 특성으로 인해 약액 손실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정리하여 약액 손실이 발생하지 않고 일관된 조제와 투약이 가능하도록 실무에 맞는 절차를 제안할 수 있었다.이 외에도 포장 유사 의약품일 경우 조제 오류 위험이 증가하듯이 임상시험용 의약품 라벨의 기재사항이 실무에 맞지 않을 때 조제 및 투약 오류의 위험이 증가하고 비효율적인 관리를 가져온다. 임상시험용 의약품도 실무 상황을 고려하여 오류의 여지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들도 실무에 있는 약사가 제약회사와 관계부서에게 전달하여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어떻게 잇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약사가 실무에서의 경험을 전달하려는 시도가 있더라도 수용하는 입장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변화는 없을 것이다. 여러 연구를 수행하다 보면 임상시험 진행 경험이 많은 기관의 의견을 잘 반영하는 제약회사와 그렇지 않은 제약회사가 있는데 이로 인한 연구의 질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위에 언급한 라벨의 기재사항도 단순히 규정에만 맞추려는 제약회사의 태도와 관련 규정을 만드는 관계 부서의 의지도 함께 고려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그런 측면에서 최근 개발단계에서부터 임상시험기관의 의견을 구하는 등 움직임이 보이는 점은 긍정적이다. CTTI(Clinical Trials Transformation Initiative)가 2030 임상시험의 비전에서 제시한 내용 중 “Clinical trials are designed with a quality approach” 이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세부 내용으로 제약회사 내부와 외부의 관계자들이 프로토콜 개발과 연구의 질적 측면에 관련한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제약회사로부터 기존의 수직적인 프로세스를 줄이고 개발 단계에서부터 관계인들의 다양한 참여가 필요하다. 물론 약사도 환자, 제약회사, 외부 관계인들을 고려하여 사고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여러 재료가 만나 하나를 이루는 건축물에서 서로 다른 재료를 이어주는 이음매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를 완성하고 튼튼한 결합물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의료진, 환자, 다양한 외부 관계인들과 접점을 이루는 약사가 이음매의 가치에 관심을 가질 때 조금 더 발전된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약사의 역량이 반드시 필요한데, 올바르게 문제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지식의 관리와 지식을 열린 사고로 주고 받으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거창한 형식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자신의 경험을 알릴 기회는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경험들은 소중하다. 그리고 약의 전문가로서 굳이 요청하지 않더라도 이를 나누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약사 직능의 발전에 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다. 김새미 약사 프로필 충북대 약학대학 졸업 전 아주대병원 약제팀 병원약사회 의약정보 전문약사 현 서울대병원 종양임상시험센터 약국2022-12-04 20:36:05데일리팜 -
[모연화의 관점] 미디어와 인포데믹, 수면자 효과(9)발행인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 중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골라, 뉴스에 담는다. 구체적으로 뉴스는 '흥미로운가, 새로운가, 갈등 요소가 있는가, 유명한가, 가까이에서 벌어진 사건인가, 시의적절한가'를 기준으로 선택된다.미디어는 뉴스를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커뮤니케이션학의 조지 거브너(George Gerbner) 교수는 배양이론(cultivation theory)을 통해 미디어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길러낸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미디어 시청 수준과 현실 지각의 관계를 검증했는데, TV를 많이 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세상을 폭력적으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의 얀 반 덴 벌크(Jan Van den Bulck) 교수도 TV 시청 시간이 1시간 늘어날 때마다 H5N1 조류 독감을 걱정하는 비율이 15.6% 증가한 데이터를 통해 미디어의 위험 주입 능력을 주장했다.예전에는 라디오, 신문, TV로 불리는 대중 미디어만이 뉴스를 전달하는 미디어였다면, 지금은 기존의 전통적 미디어 이외에 디지털 혁신으로 가능하게 된 다양한 연결망 서비스까지 새로운 미디어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뉴-미디어가 담아내는 뉴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특히 디지털 미디어의 콘텐츠는 실시간으로 조회 숫자를 확인할 수 있고, 결과에 따라 다양한 미디어로 확산할 수 있으므로 더 갈등적으로, 더 흥미롭게, 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울러 소셜 미디어는 내 주위, 혹은 나와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유명인들을 관찰하는 공간이기에 전통적인 미디어보다 공감의 정도가 깊어, 큰 감정적 영향력을 가진다.이러한 맥락에서 WHO는 전 세계적으로 인포데믹(Infodemic)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포데믹이란 가짜 혹은 왜곡된 메시지를 포함한 너무 많은 정보가 바이러스처럼 전파되어 사람들의 건강에 위해를 미치는 상태를 의미한다. 미디어는 인포데믹을 확산시키는 통로이고,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은 미디어에 의한 왜곡, 편향된 정보처리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다.행동경제학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카너먼과 그의 동료 트버스키(Kahneman & Tversky)는 어떤 사건이 미디어에 자주 보도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게 되고, 그 결과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크게 평가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지 편향을 가용성 휴리스틱이라고 설명했다. 즉, 쉽게 떠오르면 과대평가하는 정보처리 과정이 가용성 휴리스틱이다.예컨대, 팬데믹 관련 뉴스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은 암, 당뇨, 고혈압, 천식 등의 위험보다 코로나의 위험을 훨씬 크게 생각하고, 백신 부작용 보도에 자주 노출된 사람들은 부작용 빈도 혹은 가능성을 더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다가, 흥미성, 영향성, 근접성 측면에서 의약품 부작용은 희귀할수록 흥미로운 콘텐츠가 되기 마련이며, 이러한 콘텐츠는 기억에서 잘 사라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가용성 휴리스틱에 의해 희귀한 부작용의 가능성은 머릿속에서 부풀려진다.정리하자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미디어는 의약품에 관한 수많은 메시지를 [흥미롭고, 신선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부작용 경험담이나 희귀한 반응 등에 대한 기록은 ‘주관적인 경험담을 중심으로’ 극적으로 표현되곤 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흥미롭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미디어에서 재사용된다. 자주 보여지기 때문에, 의약품 위험은 쉽게 떠오르고, 발생 가능성이 크게 느껴진다.반면, 출처는 어디인지, 누구의 주장인지는 금세 사라진다. 이러한 현상은 수면자 효과(sleeper effect)라고 불린다. 수면자 효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뉴스의 출처 및 객관적 지표는 사라지고, ‘카더라’의 형태로 이야기만 전달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사람들은 누가 말했고, 믿을 수 있고 등의 판단 지표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메시지 자체는 꽤 오랜 시간 기억한다(그래서 가짜 뉴스들이 계속 살아남아, 전달된다).미디어와 뉴스가 만들어 낸 가용성 편향, 극적인 위험 메시지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수면자 효과는 우리가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출처를 기억하지 못하는 가짜 뉴스를 판단에 이용하는지, 뉴스에 나온 위험을 왜 그렇게 과대평가하는지 말이다.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사람을 약료의 중심에 두려는 우리의 목표와 닿아 있다. 이해해야 오해하지 않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2022-11-23 11:48:00데일리팜 -
[모연화의 관점] 0.1%, 0.01%, 0.001% 구분할 수 있나(8)리터러시(Literacy)는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의미하며 기본적으로 문자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중심으로 개념화됐다. 뉴메러시(Numeracy)는 숫자 개념을 이해하는 '개인의 능력'으로서 수학을 적용하고, 숫자를 통해 추리하는 능력을 포함하며 리터러시의 확장개념으로 수리 리터러시(numerical literacy)로 불리기도 한다.두 개념 모두 개별적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이해, 사고, 추리 등의 고등 인지 능력으로서, 문자 혹은 숫자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이해하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읽었다고 아는 것은 아니다.과학 커뮤니케이션 연구자인 엘렌 피터스(Ellen Peters)는 수리 능력을 키우는 것은 삶이 요구하는 모든 수학적 순간을 관리할 수 있는 것과 관계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변화가 일상인 세상에서, 변화에 따른 모든 가능성은 수리적 모형화에 의해 도출되고 그것은 다양한 방식의 숫자로 표현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사람들은 숫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숫자는 문자보다 객관적으로 이해되지 않겠냐고 생각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특히 전문가들과 일반인의 수리 능력 차이는 생각보다 크고, 전문가들 역시 (상대적인) 비교를 절대적 비교로 오해하는 일이 적지 않다. 심리학자 게르트 기거렌저(Gerd Gigerenzer), 통계학자 발터 크래머(Walter Kramer), 경제학자 토마스 바우어(Thomas K. Bauer)가 공동 집필한 [통계의 함정]에서 소개한 수리 능력 테스트 결과를 보자.병에 걸릴 확률을 숫자로 나타낼 때, '10 대 1, 100 대 1, 1000 대 1' 중에서 가장 위험성이 큰 숫자는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미국인은 75%가 10 대 1을 골랐고, 독일인은 72%가 정답을 말했다. 한국에서는 필자가 749명을 대상으로, 수리 능력을 테스트해보았는데 정답률은 90%로 나타났다. 한국 수학교육 만세는 아니고, 필자가 행한 실험이 20~59세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실험이었고,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비율이 87.4%이었기 때문에 정답률이 높았으리라 생각된다.그런데 정답률에 관한 표현을 조금 바꿔보자. [병에 걸릴 확률을 고르는 문제에서, 미국인 4명 중 1명은 정답을 몰라!] 어떤가? 혹은 [병에 걸릴 확률을 고르는 문제에서, 한국인 10%는 정답을 몰라!] 어떤가? 다르게 느껴지는가? 75%가 정답이라는 의미는 25%는 정답이 아니라는 의미이다.하지만 우리는 75/100를 해석할 때 75와 100의 관계적 의미보다는 75라는 숫자에 매몰되기가 십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분모 무시(denominator neglect) 현상으로 불리며 다양한 상황에서 증명됐다. 예를 들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5/10과 49/100 중 큰 숫자를 묻는 말에 49/100를 고르고, 10,000명 중 1,286명에서 발병되었다는 메시지와 100명 중 24.14명에게 발병되었다는 메시지 중 10,000명 중 1,286명을 더 위험하게 받아들인다.분모 무시 현상은 이야기와 합쳐지면, 더 단단해진다. 일반인들이 위험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연구한 폴 슬로빅(Paul Slovic)에 따르면 일반인들은 분모에 해당하는 전체 사건은 고려하지 않은 채, 분자에 해당하는 뉴스화되는 비극적 사건을 비중 있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뇌졸중 사망률보다 미디어에서 보도가 많이 되는 다양한 사고의 사망률이 더 높을 거라고 평가했다(실제는 뇌졸중이나 천식과 같은 만성질환 사망률이 더 높다).종합하자면, 사람들은 현저한(도드라진) 숫자(salient number) 혹은 자신에게 익숙한 숫자, 살면서 경험해본 적이 있는 숫자를 토대로 전체를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1000 명중 1명, 10,000중 1명 혹은 0.1% 0.01%로 표현될 때 사람들은 1이라는 분자의 값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그런데 의약품의 드문 부작용들은 대부분 소수점 이하의 확률로 표현된다. 구두적으로 '드물게'가 0.1~0.01%, '매우 드물게'가 0.01% 이하 아니던가. 게다가, 0.1%, 0.01%, 0.001%라는 가능성은 각 10배의 차이가 있지만, 1%와 10%가 가진 10배의 차이처럼 인식되기 어렵다.필자는 20세에서 59세의 성인 749명을 대상으로 의약품 부작용 가능성 단계가 퍼센트로 표현되었을 때, 그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지 조사한 바가 있다.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각각 “[0.1%~1% vs. 0.01%~0.1% vs. 0.01% 미만]의 가능성으로 졸음이 발생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보여준 후, 졸음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추정하는지 탐색했다.결과에 따르면 각 단계는 10배의 정도 차이를 보이지만, 참가자들의 가능성 인식은 비슷하게 도출되었다. 즉, 0.1%의 졸음 가능성과 0.01%의 졸음 가능성을 다르지 않게 인식하는 것이다.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첫째, 숫자로 표현된다고 객관적이지 않다. 둘째, 의약품 맥락에서도 분모 무시 경향은 관찰된다. 그러므로 숫자를 정확하게 표기하는 행위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생각하지 말지어다.2022-11-16 10:22:12데일리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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