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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노인환자 6개월치 1440포 가루조제...6시간의 분투"

  • 강혜경
  • 2023-04-21 17:51:32
  • 분진 마시며 조제해 받는 수가 2만원..."약사니까"
  • 요양원 입원, 6개월에 한번 병원 투어하는 88세 환자 약 조제
  • "2030년 고령사회 진입…약국 수가제도, 이대로 괜찮을까?"

[데일리팜=강혜경 기자] "약사님 혹시 이 처방, 조제 가능할까요?"

요양원 입원 환자 가루약 처방이었다. 한창 조제·투약으로 분주했던 터라 당장은 어렵지만 내일까지는 조제해 드릴 수 있다고 했다. 이후로도 잊을 만 하면 이따금씩 요양원 간호사가 약국에 들러 처방전을 맡겼다.

이번에는 80대 환자 처방전이었다. 로컬에서 나온 처방이었는데, 치매약과 피부질환치료제, 경장영양제가 각각 처방돼 있었다. 업무가 몰리는 시간에는 가루약 조제 업무가 불가능하다 보니 한 시간 먼저 출근해 조제를 마쳤다.

하지만 환자가 복용하는 약은 이 처방에 명시된 약만이 아니었다. 대학병원 심장내과와 내분비내과, 신경과에서 각각 발행된 처방전을 가지고 간호사가 왔다.

88세 환자가 3개과와 로컬에서 처방받은 약들.
▲딜라트렌정 ▲아서틸정 ▲알닥톤필름코팅정 ▲페브릭정 ▲뮤코펙트정 ▲쎄레브렉스캡슐 ▲에소메졸캡슐 ▲신일플산정 ▲디카맥스정 ▲씬지록신 ▲도페린정 ▲트로나인크림 ▲하모닐란액 등 무려 14가지나 됐다. 치매 외에도 혈압, 갑상선, 가래, 진통소염제, 위장약, 엽산제, 철분제 많기도 많았다.

재고를 확인해 약을 주문하고 미리 잡힌 저녁 약속도 취소했다. 성인용 산제기를 이용한다고 해도 근무시간 중 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침 식전, 아침 식후 3개과(科), 점심 식후, 저녁 식후까지 하루에 8포씩, 도합 1440포다. 약국 문을 닫고 먼저 아서틸정과 알닥톤필름코팅정, 페브릭정, 씬지록신정을 처방대로 반티내고 쎄레브렉스캡슐과 에소메졸캡슐은 하나 하나 분리했다.

장장 네 시간 동안 조제를 하고 나니 녹초가 돼버렸다. 얼굴과 가운에서도 가루가 만져졌다. 검수를 마치고 산제기를 닦고, 조제실까지 정리하고 나니 또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하모닐란은 구하는 데만 3박 4일이 걸렸고 18리터의 무게도 상당했다.

한 환자의 약을 조제하는 데만 다섯 시간이 소요됐다. 이렇게 해서 책정되는 조제료는 2만70원이다. 91일 이상 조제료 1만9420원에 가루약 조제료 650원이 합산돼 2만70원이 된다.

하루 8번 복용, 6개월치 약은 무려 1440포로 사과상자를 넘는 양이다.
조제를 하면서 이런 저런 고찰을 해봤다. 요양원에 입원해 계신 88세 어르신이 6개월에 한 번 심장내과, 내분비내과, 신경과를 돌며 진료를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테지만 100세 시대에 이 어르신이 얼마나 더 약을 드시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2030년 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면 가루약을 복용하는 환자 비율은 지금 보다 높아질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약국에서 조제한 가루약이 각기 다른 보관 환경에서 6개월 동안 얼마나 안정적으로 약효를 유지할 수 있는가, 시럽제나 패취류가 대신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가루약 조제에 품이 많이 들다 보니 일부 약국의 조제 거부는 심심찮게 시민·사회단체나 언론을 통해 지적돼 왔다. 하지만 이 환자들을 위해 다른 환자들을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에는 약국 문을 닫고 출근 전·후 시간을 반납하거나, 추가적으로 약사 인력을 써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약국관리료, 조제기본료, 복약지도료, 조제료, 의약품관리료만으로 구성된 약국 조제수가가 과연 지속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준법정신에 투철하며 국민보건 향상을 위해 헌신해야 하고, 약사는 약업의 공익성을 지켜야 하며 약업의 정상적인 발전을 위해 상호 협조 질서 확립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윤리강령을 준수하고자 오늘도 수고로움을 감내하고 조제를 마쳤다.

'약사니까'. 약사로서의 내 책무이자 소명의식이다. 하지만 약사의 책무와 소명의식만으로 감내하기에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부디, 이런 부분이 반드시 수가를 통해 반영되길, 약사회에서 힘써주길 개국 약사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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