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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연화의 관점] 상황의 문제일까, 사람의 문제일까(14)

  • 데일리팜
  • 2022-12-29 10:54:49

커뮤니케이션은 어렵다. 특히 예측이 가능한 메시지를 던졌을 때 예측과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경우, 커뮤니케이션은 무서워진다. 가령, A약사의 경우를 보자. 그는 약국을 개국한 후, 친절을 다짐하며 약국에 들어오는 환자에게 건강과 안부의 말을 건네고자 했다(greeting). 그래서 가장 보편적인 안부 메시지인 "안녕하세요"와 친절함의 상징기호인 '미소'를 함께 보냈다.

그런데 "안녕하면 여길 오겠소"라는 답과 함께, 아파 죽겠는데, 왜 웃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A약사는 내가 만만한가? 저 사람 나를 싫어하나? 약국에서는 안녕하냐고 물으면 안 되는 건가? 약국에서는 웃으면 안 되는 건가? 라는 별의별 생각들을 하다가, 사람들이 약국에서는 안녕하냐는 안부 인사와 미소를 싫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사를 눈인사로 바꾸고, 미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수정했다.

이 같은 A약사의 원인 추론 과정은 귀인이론(attribution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귀인이론은 개인이 행동 또는 사건을 해석하여 원인을 내부적 혹은 외부적으로 귀속시키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발전시킨 하이더(Heider, 1958)는 사람들이 어떤 결과의 원인을 파악하는 방법을 "인간(성향) 대 환경(상황) 요인"으로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인간(성향, 기질)을 원인으로 보는 것은 내적 요인이고, 환경(상황)을 원인으로 보는 것은 외적 요인이다.

예를 들어, A약사가 환자의 반응을 "저 사람은 내가 싫은가? 만만한가?" 혹은 "내가 말을 잘못했나?"로 귀인 하는 것은 내적 요인 혹은 기질적 요인에 기반한 귀인이다. 반면 "약국에서는 인사가 안 맞나?" 혹은 "아파서 그런가 보다"로 귀인 하는 것은 외적 요인 혹은 상황적 요인에 기반한 귀인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타인의 행동 원인을 추론하는 데 있어, 상황보다는 기질 혹은 성향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직원이 지각했다고 가정해보자. 대부분 사람은 지각을 기질적 요인(게을러, 시간관념이 없어)으로 귀인 하는 경향을 보인다. 약국에서 누군가 화를 냈다고 가정해봐도 비슷한데, 진상 혹은 성격이 이상하다는 것으로 귀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인들은 역동적인 사회 변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릴 때부터 경쟁에 의한 성장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내부 통제력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이를테면,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고,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통제 가능성에 관한 기대는 질병 상황에서도 발생한다.

즉, 한국인들은 어떤 사람이 질병으로 진단받았을 때 환경보다는 개인의 통제력에서 원인을 찾고, 질병에 의해 예민해진 상태일 때도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을 원인으로 찾는 경향이 크다. 안타깝게도, 환경의 영향보다는 개인이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 통제 가능성 신념은 공부 성과가 좋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의 소유자일수록 크다. 다시 말해, 공부를 잘했던 그대는 상황의 힘이나 아픔의 힘에 굴복하는 상대에게 공감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상황의 힘은 생각보다 크고, 통제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고통의 힘, 아픔의 특성은 개인별로 한정된 자제력을 넘어선다. 배가 아픈 사람은 아무리 의지가 충만해도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머리가 아픈 사람은 욱신대는 통증으로 양미간에 주름을 잡는다. 손거스러미나 혓바늘이 날을 세우면 매 순간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호르몬은 어떠한가? 호르몬이 요동칠 때는 제3의 자아가 나타나기도 한다.

즉, 불편함과 괴로움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야기하고, 생리적인 신체 기능은 떨어뜨린다. 경험하는 증상으로 야기된 상황적 요인들은 인간과 인간이 상징화된 기호를 메시지로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는 과정인 커뮤니케이션까지 방해한다. 특히 한정된 이해력과 자제력을 떨어뜨려, 작은 일에도 예민한 반응을 초래한다. 그 결과, 안부 인사와 미소에 적절한 피드백을 줄 의지조차 부족해지는 것이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산문 [라면을 끓이며]에서 젊은 의사가 배운 학문의 보편성이 개별적인 고통의 이해와 관련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김훈의 시선대로라면, 증상 및 질병 그리고 약의 과학적 특징을 보편적 지식의 형태로 배운 약사도 다르지 않다. 나 역시, 고통의 특수성보다는 상대의 성품을 원인으로 귀인하곤 하니 말이다.

귀인이론은 타인을 판단하는 잣대의 공정함에 관한 통찰을 준다. 타인의 잘못을 평가할 때도 "그 사람 때문이야"보다는 나의 잘못을 평가할 때처럼 "상황이 좋지 않았어"로 외적 귀인, 상황적 귀인 하기를 제안하며 말이다. 이것은 약국에 방문한 사람이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장기가 짜증을 내는 거라는 관대한 관점 형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경험치가 많은 선배 약사의 '그럴 수 있지' 기술은 사실, 귀인이론과 맞닿아 있다.

정리하자면 어딘가 불편한 사람들이 방문하는 공간의 무게는 꽤 묵직하다. 그래서 약국 현장 커뮤니케이션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개인의 쌀쌀한 반응을 그저 나를 싫어하나보다 혹은 성격이 별로인가로 치부하기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 알 수 없는 환경의 힘이 크다.

타인을 평가할 때, 내적 귀인 보다는 외적으로 귀인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그것은 어찌 보면 삶의 여유일 수 있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 개인이 겪는 상황, 혹은 그를 둘러싼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유기적 존재인 인간을 다시금 이해하며 커뮤니케이션에 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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