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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약사법 제2조는 무엇을 전제로 쓰였는가

  • 데일리팜
  • 2026-09-10 06:00:38
  • 요약
  • 이종혁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 한약사 약국 일반의약품 판매 논란, 조문의 침묵은 허용 아냐

지난 8월, 약국을 둘러싼 세 개의 결정이 잇따랐다. 8월 초 보건복지부는 한약사가 의사·치과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전문·일반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다는 공문을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청 등에 보내면서 벌칙과 행정처분 기준까지 명시했다. 8월 13일 서울행정법원은 한약사가 완제 한약제제를 처방전 없이 판매한 뒤 이를 '조제'로 보아 급여를 청구한 사건에서 그 청구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8월 26일에는 '창고'나 '팩토리' 같은 약국 명칭을 금지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럼에도 갈등의 핵심인 한약사가 개설한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이 없다. 지난해 10월 15일 국정감사에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현행법상 이를 위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고, 대한약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논쟁은 대개 양쪽이 각자에게 유리한 문언을 골라 인용하는 데서 시작해 거기서 끝난다. 그런데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1994년 그 조문을 쓸 때, 입법자는 무엇을 전제로 하고 있었는가?

미리 밝혀 둔다. 필자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다. 이 글은 법리 해설이 아니라 그 전제를 다시 확인하자는 제안이다.

Ⅰ. 1994년의 사회적 합의는 무엇인가?

한약사제도는 1993년 한약분쟁의 산물이고, 그 봉합의 조건이 한방의약분업이었다. 한의사가 처방하고 한약사가 조제하는 구조를 만들되 그 조제와 판매를 담당할 직역으로 한약사를 신설한다는 것, 1994년 약사법 개정은 그 사회적 합의를 조문으로 옮긴 작업이었다.

조문은 간명하다. 제2조 제1호는 "약사(藥事)"를 의약품의 제조·조제·감정·보관·수입·판매와 그 밖의 약학 기술에 관련된 사항으로 정의하고, 제2호는 그 약사 업무를 한약 영역과 그 밖의 영역으로 나누어 각각 한약사와 약사에게 맡긴다. 두 호를 겹쳐 읽으면 결론은 하나다. 한약사의 업무는 한약과 한약제제의 조제와 판매이고, 약사의 업무는 한약제제를 포함한 그 밖의 의약품의 조제와 판매다.

사실 정의 규정만으로도 답은 나온다. 판매를 따로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조문을 찾아 헤맬 이유가 없다. 정의규정만 제대로 읽어도 지금의 논란은 애초에 논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Ⅱ. 조제와 판매를 분리할 수 있는가?

지금의 다른 주장은 그 다음 지점을 파고든다. 제23조 제1항은 "약사 및 한약사는 각각 면허 범위에서 의약품을 조제하여야 한다"고 적었는데 판매를 다루는 제44조와 제50조에는 그 문구가 없으니, 판매에는 면허 범위가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23조가 말하는 '면허 범위'의 내용 자체가 제2조에서만 나온다. 제23조는 정의규정을 조제에 관하여 한 번 더 확인한 규정이지 면허 범위를 창설한 규정이 아니다. 확인 문구가 붙었는지 여부가 권한의 유무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조제와 판매를 갈라놓고 읽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제2조 제1호는 조제와 판매를 나란히 하나의 "약사(藥事)" 안에 넣었다. 한 개념으로 묶인 것을 떼어내 조제에만 면허 범위를 적용하고 판매는 제외하겠다는 해석은 정의규정을 반으로 자르는 일이다. 제44조가 판매 주체를 약국개설자로 적은 것도 무자격자의 의약품 판매를 막기 위함이지, 면허별 취급 범위를 새로 배분하려는 규정이 아니다.

약국 개설 제도의 취지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일반인의 약국 개설을 막는 이유는 약국이 면허를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는 약사 행위를 수행하도록 허용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개설권은 면허에서 나온 것이지, 면허와 별개로 주어진 영업권이 아니다. 면허에서 비롯된 권한이 그 면허보다 넓어질 수는 없다. 약국에서 이루어지는 조제와 판매가 모두 면허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그래서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다.

Ⅲ. 조문이 굳이 적지 않은 것

여기까지는 1994년의 사정을 따지지 않고 조문만 읽어도 나오는 결론이다. 입법 당시의 전제를 함께 놓고 보면 그 결론은 한층 분명해진다.

조문의 침묵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의도적으로 열어둔 침묵과, 너무 당연해서 적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침묵이다. 1994년의 침묵은 후자다. 한방의약분업을 전제로 직역을 나누던 시점에 한약사가 개설한 약국에서 해열진통제와 감기약을 파는 장면을 상정한 입법자는 없었다.

이것이 추정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은 법제처 해석에서도 확인된다. 2013년 법제처는 한약사가 한약·한약제제 외의 의약품에 대하여 제조관리자나 안전관리책임자가 될 수 있는지를 다루면서 될 수 없다고 회답했다. 당시 관련 조문은 그 자격을 "약사 또는 한약사"로 나란히 적고 있었지만, 법제처는 제2조 제2호의 정의규정이 약사법령 전체의 해석지침이 된다고 보았다. 개별 조문이 두 직역을 병렬로 적었다는 사정만으로 정의규정의 업무범위 구분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제44조·제50조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해석이다.

Ⅳ. 전제가 무너진 뒤

그러나 전제였던 한방의약분업은 30년이 지나도록 이행되지 않았다. 그사이 3,500명 안팎의 한약사가 배출됐으나 그 면허가 설 자리는 끝내 마련되지 않았고, 한약을 거의 취급하지 않는 한약사 개설 약국과 초대형 약국 사례까지 등장했다. 전제가 사라진 자리에서 조문의 침묵이 다르게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태도도 갈렸다. 국정감사에서는 위법으로 보기 어렵다고 답한 반면, 8월 공문에서는 조제에 관한 한 면허 범위 준수를 분명히 했다. 조제는 정리하면서 판매는 남겨둔 셈이다.

한약사 측 논거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앞서 본 문언 논거이고, 둘째는 약학과와 한약학과 교육과정의 상당 부분이 유사하다는 것이며, 셋째는 국가가 한방의약분업을 약속해 놓고 30년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앞의 두 가지는 사실과 거리가 멀지만, 세 번째는 정당한 문제 제기다. 전제를 이행하지 않은 책임은 분명히 국가에 있다.

그러나 전제가 이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전제 위에서 쓰인 조문의 의미를 바꾸지는 못한다. 계약의 일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계약서의 문구가 저절로 다시 쓰이지는 않는다. 이행되지 않은 전제는 이행을 요구하거나 제도를 다시 설계할 사유이지, 조문을 거꾸로 읽을 근거가 아니다. 면허의 경계는 조문에 박힌 금지 문구의 개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면허가 애초에 무엇을 담당하도록 만들어졌는가로 정해진다.

짚어 둘 것이 하나 더 있다. 약사법 제2조는 어느 부처가 책상에서 만든 조문이 아니다. 1993년 한약분쟁이라는 격렬한 충돌을 거쳐 두 직역과 정부, 국회가 도달한 사회적 합의를 문장으로 옮긴 것이다. 1993년의 분쟁이 무엇을 대가로 봉합됐는지 기억한다면, 그 봉합을 임의로 뜯는 일이 무엇을 부를지도 짐작할 수 있다.

『전국책』에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가 있다.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도 세 사람이 거듭하면 사실이 된다는 뜻이다. 근거가 얕은 주장이라도 반복되고 확산되면 어느 순간 기정사실이 되고, 한번 굳어진 뒤에 되돌리는 데에는 처음 바로잡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비용이 든다. 법 해석에서 이 현상은 특히 위험하다. 의약품을 누가 다룰 수 있는가는 취향이나 여론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공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잘못 굳어진 관행이 뒷날 "현실이 이러하니 법을 고치자"는 요구의 근거로 되돌아온다.

Ⅴ. 결론

모두가 당연하게 여겼던 전제 위에서 쓰인 조문이, 그 전제가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정 직역의 목소리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있다. 처음의 뜻이 틀렸던 것이 아니라 처음의 뜻이 흐려진 것이다. 법령의 의미가 어느 직역의 목소리 크기에 따라 훼손되고, 그렇게 훼손된 해석이 진실로 굳어진다면, 그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처음의 뜻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권한을 새로 빼앗는 일이 아니라 1994년 제2조에 이미 규정한 사실을 정부가 명확히 하고,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더 큰 혼란을 막는 길이다. 잘못 읽힌 조문을 바로 세우는 일은 어느 직역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건강이라는 공익의 문제다. 미룰수록 치러야 할 비용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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