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를 찾으시나요?
닫기
2025-12-24 08:29:46 기준
  • 임상
  • #GE
  • 부회장
  • 약국
  • 건강보험
  • #임상
  • 허가
  • 제약
  • #염
  • 데일리팜

잊혀진 한독의약박물관 문화명소로 '우뚝'

  • 정웅종
  • 2006-01-06 06:54:52
  • 한해 방문객 1만명이상...추사약방문 등 보물 6점 소장

첫 국내에 선보인 안티푸라민(위)과 1920년대 국내에 들어온 일본 약품도매상의 카달로그(아래).
|탐방-한독의약박물관을 가다|

기업이 만든 전문박물관이 설립 40년만에 지역사회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데 기여하고 있어 주목된다.

충북 음성에 독특한 의학과 약사박물관이 소재해 있다. 중부고속도로 음성IC에서 1.6km 떨어진 한독약품 음성공장에 국내 최초의 전문박물관이자 기업 박물관 효시인 '의약박물관'(Medico-Pharma).

의약박물관은 전시실 400여평에 한국관, 국제관, 기업사료실로 꾸며져 있고, 의약도서실, 100평 남짓한 약초원 온실을 갖추고 있다.

이경록(42) 박물관장은 "2005년만해도 1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다"면서 "일반 종합박물관과 달리 전문박물관으로서 자발적 방문객이 한해에 이 정도 방문하기는 이례적이다"고 말했다.

관람객의 70%는 일반 학생이나 시민들이고 나머지 30%는 의대생과 약대생 등 관련전공자가 차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업박물관이 지역사회에 문화갈증 해소

흥미로운 것은 이곳 박물관이 들어선 95년 이전에는 충북 음성군내에 단 한 점의 국가지정 보물이 없었다는 점. 박물관이 생기면서 6점의 보물을 갖춘 고장으로 거듭났다.

굳이 보물이 아니더라도 유물 1만점을 갖춘 기업박물관이 지역사회의 문화적 갈등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과연 어떤 매력이 있을까. 궁금증이 더해 빨리 전시실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총 2층중 1층은 국제관, 한독역사관으로 꾸며져 있고, 2층에는 한국관으로 만들어져 있다.

'백자은구약주자' 조선말엽 왕실에서 독살방지를 위해 쓰던 주전자.
관람에 앞서 이 관장은 "의약사도 하나의 역사적 '창' 역할을 한다"며 "인간과 질병이라는 뗄 수 없는 관계를 역사적 유물을 통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해 경건한 마음을 갖게 했다.

2층 한국관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이제마와 허준의 인물상을 사이로 빛나는 백자주전자가 전시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게 보물이냐"고 묻자 이 관장은 "보물이 아니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관람객이 처음 접할 수 있는 이곳에 전시했다"고 말했다. '백자은구약주자'. 주전자 주둥이를 막은 철로 보이는 마개가 있고, 이를 열지 못하도록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의학과 약학의 역사, 과거를 보는 '창' 역할

이 관장은 설명은 이어졌다. "철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은이다. 은은 과거나 지금이나 독약을 미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추정된다. 왕이 쓰는 주전자에 혹시 모를 독극물 주입을 막기 위해 독특하게 고안된 주전자이다".

왕실에서 쓰였던 최고급 백자 주전자인데 독살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선말기 시대 주전자라는 설명이다.

고려시대 거북모양의 '약맷돌'. 김정희가 쓴 약방문. 휴대용 접이식 의서. 동의보감 초간본. 언해태산집요. 청자상감상약국명합(위부터).
전시관 앞쪽부터 맷돌과 주전자 등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약초를 찧거나 갈아내는 도구에서 탕약을 끊이고 이를 담는 주전자 등 과거 약제를 다릴 때 쓰던 일련의 도구들 모음이다.

오늘날 처방전, 김정희 '약방문'...1권 남은 동의보감 초간본도 주목

이 때 흥미로운 서체가 눈에 띄었다. '추사 약방문'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이 관장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약방문으로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처방전이다"고 설명했다. "처방을 내고 하는 것은 한의가 하던 일이 아닌가"라는 질문은 곧바로 무색해졌다.

"과거 선비들은 의학적 소양을 갖추는 게 일반적이었다.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부모에게 봉양하는 일부터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동네지역 백성들 건강까지 챙겨야 하는 게 일종의 선비 미덕이었다. 따라서 의학에 해박하고 이를 공부하는 것은 선비들의 도리로 여겼다". 이 관장의 설명이다.

조그만 청자약병 앞에 섰다. 보물 제646호 '청자상감상약국명합'. 위 아래로 겹쳐져 있다고 해서 '명합'.

12세기 고려시대 고위관료 등을 치료하며 왕실의 의약을 관장하던 '상약국(尙藥局)'이라는 관청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뚜껑 윗부분에는 구름속 용과 여의주가 음각되어 있어 아름다움을 뽐냈다.

서양의술이 들어오면서 생겨난 과거 약물들(위). 1930~40년대 약방의 간판들(아래)
이어서 본 유물은 광해군 5년에 첫 출판된 동의보감 초간본. 400년전 의서로 국내에서는 이곳 박물관에 있는 1점이 유일하다. 보물이 아니지만 보물과 다름없는 유물이다.

그 옆에 보물 2점이 줄지어 전시돼 있다. 보물 제1111호 '찬도방론맥결집성'과 보물 제1088호인 '언해태산집요'. 두 유물은 지난 91년 같은 날 동시에 보물로 지정됐다.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의학교과서인 셈. '언해태산집요'는 한문 옆에 한글이 곁들여진 번역본으로 지금의 산부인과 의학서다. 이 밖에 눈길을 끄는 사료는 동양최대의 의학백과사전격인 조선 성종 8년에 발간된 보물 제1234호 의방유취.

1890년대 독일약국의 실제모습. 존슨앤존슨의 약을 담던 상자. 페니실린을 만들어낸 플레밍의 연구소 모습(위부터).
일반적인 고서 말고도 최근 100년 이내에 우리의 건강을 지켰던 약물들도 전시돼 있다.

말라리아 특효약으로 알려진 '금계납'(영어식 표현은 키리네). 1940년에 생산된 안티푸라민, 영신환 등도 우리 조부들이 쓰던 일상적인 상비약이었다.

1900년대 초 약방간판, 안디푸라민, 금계납 재미 솔솔

'신정약발특약전'이라는 전시물은 1920년대 국내에 들어온 일본의 대표적인 약품도매업체가 당시 취급하던 약품목록을 정리한 카달로그.

약의 유통 중추역을 맡았던 도매업체도 한국 의약사에 한 장을 장식했음을 이 한권의 카달로그는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먹던 정신을 맑게한다는 약. 한 세기전 약물들은 지금 시각으로는 조잡했지만 당시에는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던 필수약이었다니, 흥미롭다.

일산 김두종선생(좌)과 대하 홍문화 선생이 기증한 서고.
한국관에서 마지막 관람순서에 놓여 있던 두 서재. 한곳은 한국 의사의 대표적 선구자인 一山 김두종 선생의 기념문고. 그가 수집한 한국, 일본, 중국 한의학 관련서적 2,641책을 기증했다.

옆에는 약학박사인 大河 홍문화 선생의 서재가 자리잡고 있었다. 현재 병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선생은 5,000권의 기중한 서적을 이곳에 맡겼다.

醫와 藥. 국민의 건강을 걱정하던 양대 학자들의 손때가 묻은 책들은 이렇게 후학들에게 의술이 왜 인술이 되어야 하는지와 약학이 국민들에게 사랑의 약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묻고 있었다.

1층 국제관은 한국의 의학발전사와는 좀 색달랐다. 일본, 중국, 동남아의 도구의 모양은 비슷했지만 약간씩 나라마다의 색채가 묻어났다. 의학발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독일과 유럽의 유물들도 전시해 눈을 끌어당겼다.

110년전 독일약국, 과거와 현재의 약국 변화 한눈

특히 흥미로운 것은 1890년대 독일약국. 비행기로 남아있던 독일약국을 분리해 그대로 가져다 옮겨놓은 것이다. 이른바 '마이신'으로 우리 입에 익숙한 페니실린을 만든 플레밍의 연구소 재현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이 관장은 "박물관의 미덕은 실물의 유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라며 "비록 이가 빠진 것처럼 듬성듬성의 유물이지만 그 역사적 의미를 알기에는 충분하다"고 의미를 뒀다. 1시간이 훌쩍 점은 관람시간은 의약사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됐다.

이경록 박물관장 미니인터뷰

"작년에 1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의미를 두는 것은 자발적 방문객이라는 점이죠". 의약사박물관 이경록(42) 관장은 몇년전까지 7~8천명에 머물던 관람객이 1만명을 넘어선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단 한점의 보물도 없던 문화적으로 척박한 음성군에 이 박물관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국내 전문박물관 1호, 기업박물관 1호라는 명예보다도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해소에 기여한다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1만명의 관람객 중 70%는 지역내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지역주민들. 30%는 의약대생 등 관련 전공자들이다.

박물관이 생겨난 이유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점에서 의미 심장하다. 이 관장은 "한독약품 설립자인 당시 김신권 사장이 57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약학박물관을 보고 감명을 받고 7년간의 수집기간을 거쳐 64년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종합박물관보다는 규모나 역사가 짧지만, 특화되고 집중된 전시방식과 나름의 '해설식' 운영방식은 독특하다.

"우리 박물관은 유물을 직접 설명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유물의 가치와 특징을 설명하고 유물소재로 의약역사를 해석해주는 게 특징입니다".

얼마전에는 지역약사회 등 약사들의 단체관람도 이어지는 등 지역사회에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고 작정해 찾아오는 관람객을 맞는 박물관의 태도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박물관의 미덕은 실물을 볼 수 있다는 거죠. 옛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되짚어 가다보면 비록 이가 빠진 것처럼 듬성듬성하지만 그래도 일정한 역사적 흐름을 짚을 수 있습니다". 이 관장이 밝힌 박물관의 역할, 바로 미덕이다.

의약사라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창'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질병은 인간이 존재하면서부터 싫던좋던 우리의 삶을 때론 지배하고 때론 지배받으면 살았기에.

그 질병이 만들어낸 약학사, 의학사의 역사는 그래서 흥미롭다. 한국사, 그 중에서도 의약사를 전문적으로 전공한 이 관장은 "누구든 비록 약제, 해부학 등 세부적 전문영역을 몰라도 의약사라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한독의약사박물관 찾아가는 길

-자가용 : 중부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음성IC에서 빠지자마자 바로 삼거리서 좌회전. 300미터쯤 가다 굴다리 직전에 산업단지쪽으로 우회전하면 된다.

-대중교통 : 진천행버스를 타고 광혜원에서 하차, 택시로 7분거리. 음성행 버스를 타고 대소에서 하차, 택시로 5분거리.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로 입장료는 무료다. 관람전에 미리 연락을 취하고 가는 것이 좋다. 연락처 : 043

-530

-1004~5.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 댓글 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운영규칙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