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베테랑 약사도 속수무책…"품절약 어찌할까요?"
- 이정환
- 2018-10-24 18: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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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고없는 품절 수 십년째 반복...제약사 나몰라라 약사·환자만 피해 떠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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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울제가 품절됐다. 자주 처방되진 않지만 간헐적으로 약국을 찾는 단골 환자 탓에 주기적으로 입고를 잊지 않는 약이다. 여럿 약품도매상에 누차 입고를 요청했지만, 해외 본사 사정으로 수급이 어렵다는 대답만 반복됐다. 품절 사실을 알리 없는 의사는 기어코 품절약이 적힌 처방전을 냈고, 약국을 찾은 단골환자는 활짝 웃는 얼굴로 안부인사와 함께 품절 항우울제가 적힌 처방전을 건넨다. 품절약을 제외한 나머지는 약국 창고에 모두 구비된 약들이다.

해외 본사 사정으로 입고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도 환자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자는 자신이 꾸준히 복용하는 항우울제를 지금 당장 손에 쥘 수 없다는 사실과 재고를 갖춘 다른 약국을 찾거나 다시 의사를 만나 품절약을 뺀 나머지 약만 재처방 받아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는 데 집중한다. 나는 결국 별다른 솔루션을 제공하지 못한 채 환자를 빈 손으로 돌려보냈다.
노트북 앞에 앉아 국내외 제약산업 뉴스를 빈틈없이 모니터하는 것. 경기도 수원에서 약국을 운영한지 19년차 베테랑 약국장인 내가 매일 아침 약국문을 연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제약사 간 사업부 인수나 판권 양도양수 뉴스는 내가 스크랩하는 0순위 뉴스다. 간혹 의약품을 놓고 발생하는 제약사 간 분쟁도 놓치지 않고 링크해 근무약사들과 공유한다.
처방환자가 덜해 여유가 생기는 요일엔 대한약사회, 제약바이오협회 홈페이지도 들락인다. 이 모든 게 품절약 동향파악을 위해서다. 제약사 간 사업부 M&A나 판권 분쟁, 생산라인 교체, 유통사 변경 뉴스는 한참을 들여다 봐야한다. 해당 뉴스를 토대로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발생할 품절약 사태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홀로 약국으로 시작해 근무약사를 여럿 둔 약국으로 키워오기 까지 19년이 걸렸지만 품절약 이슈는 19년째 나를 괴롭히는 골칫덩이다. 우연히 2007년 쓰여진 약국 다빈도 처방·조제 고혈압제 품절 기사를 클릭했다. 오늘 아침 발행된 고혈압·고지혈 복합제 장기 품절 기사와 제품명만 다를 뿐 판박이다. 십 년 넘게 품절약 이슈는 개선 없이 반복되며 같은 뉴스를 양산하고 있었다.
처방전 환자에 제 때 의약품을 조제하고 올바른 복약지도를 하는 일. 약사로서 내 의무다. 개국 초 시행착오를 거쳐 베테랑이 된 현재, 기계만큼이나 정확한 조제와 복약지도는 약사로서 내 자부심이다. 하지만 오늘도 예기치 않은 품절약 사태로 내 스텝은 꼬인다. 적게는 10품목, 많게는 30품목. 평균적으로 내 약국에서 한 달새 별다른 설명없이 멋대로 공급이 끊기는 약 갯수다. 나는 어떤 약이 왜 품절됐는지를 기본으로 언제 정상 수급되는지, 품절기간 응급 물량은 어떻게 조달할지, 환자에 품절 상황을 불편없이 어떻게 설명해 할지 나만의 약국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난 엑셀 파일로 만든 약국 품절약 리스트를 별도 관리하는 전담 약사도 따로 채용했다. 품절약이 내게 주는 스트레스는 약사 추가 채용에 투입되는 비용을 상회했다. 인건비 걱정보다 내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건 갑작스런 의약품 품절이다. 나는 약국에 약이 없어 환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가장 취약했다.
품절약 사태는 발생 때마다 약국 혼란을 유발한다. 이젠 굳은살이 박여 재고 관리, 품절 제약사 민원, 도매상 네트워크를 활용한 품절약 수급, 환자 응대까지 비교적 능숙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분노한다. 왜 의약품 품절로 발생하는 불편을 제약사가 아닌 약국 약사와 환자가 오롯이 떠안아야만 하나. 환자 질환 치료와 생명유지에 직결돼 공산품 단순 품절과 구분돼야 하는 의약품 품절 사태에 왜 제약사는 일말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죄책감 없이 당당한가.
나는 오늘도 휴대전화를 꺼내 몇 달째 품절이 풀릴 기미가 없는 의약품의 제조수입 제약사 고객센터 번호를 누른다. "네 말씀하세요." 수화기 너머 제약사 담당자 목소리는 무관심하고 무미건조하다. 때론 고압적이고 차갑기까지 하다. 마치 왜 그런일로 전화를 거느냐는 말투다. "해당 품목은 해외 본사 생산라인 변경으로 당분간 국내 수급이 안돼요. 여유분이 소량 국내 수입돼도 대형 병원이나 일부 도매상에만 유통할 계획입니다. 시시때때로 도매상에 입고 상황을 체크해 구해보도록 하세요."

내 분노는 점점 자란다. 재고가 떨어질 조짐이 보이면 각 약품도매상에 전화를 걸어 있는약 없는약을 끌어모아 수 개월치 재고를 약국에 쟁인다. 갑작스레 결제해야 할 약품비용과 창고관리 부담이 크게 늘지만, 품절사태를 방지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의약품 품절 사실은 약사만 안다. 처방하는 의사는 모른다. 약사 조차도 입고 중단 전 미리 품절 사실을 알기 어렵다. 매분 매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품절약 정보를 어렵사리 얻을 수 있다. 영문을 모르는 의사는 품절약을 계속 처방하고, 품절약 처방전을 받아는 환자는 약국문을 두드린다. 약이 없어 환자는 다시 의사에게 되돌려 보내지거나 다른 약국을 전전할 수 밖에 없다. 수 십년째 반복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제약사는 의약품 판매로 가장 많은 수익을 얻는 당사자다. 제약사에 의약품 품절 사유, 기간, 입고시점 등 정보 고지 의무 부여와 위반 시 징벌적 규제를 가해야하는 이유다. 건강보험공단에서 품절약 급여지급을 중지시켜 자연스럽게 의료기관에서 품절약이 처방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DUR시스템에 품절약 현황 공지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도 약국과 환자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오늘도 품절약 리스트를 써내려가며 분노한다. 늘어선 품절약이 언제쯤 입고될지 예측하는 일에 지겨움을 느낄 틈도 없이 환자들은 약국문을 두드린다. 예기치 않은 의약품 품절에 대한 제약사 규제책을 강제하기 어렵다면, 약사들이 품절약 정보를 접할 채널이라도 늘었으면 좋겠다. 품절약 사태로 시달리며 날마다 가슴 졸이는 데 체력을 쏟기 보다 환자에 더 세심하고 질 좋은 약물 정보를 줄 방법을 고민하는 게 약사인 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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