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치매약 효능 검증의 딜레마
- 손형민 기자
- 2026-08-20 06: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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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팜=손형민 기자]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 환자가 병원을 찾는다. 검사 결과 치매는 아니지만 경도인지장애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환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나온다. "그럼 지금부터 먹을 약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기대가 함께 섞여 있다.
혹시 치매로 진행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고, 지금부터 무엇이라도 하면 조금은 늦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처방받은 약이 실제로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지 확신하기 어려워도 '그래도 복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문제는 인지기능 개선이라는 영역이 그 믿음과 실제 약효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날은 약을 먹고 머리가 맑아진 것 같고, 또 어떤 날은 먹지 않아도 상태가 괜찮다. 수면이나 스트레스, 당일 컨디션에 따라 기억력과 집중력도 달라진다. 환자와 보호자가 체감하는 작은 변화가 실제 약의 효과인지 자연스러운 변동인지 가려내기도 어렵다.
그동안 국내에서 뇌기능 개선제로 사용돼온 약들이 잇따라 효능 검증대에서 탈락한 것도 이 같은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아세틸엘카르니틴은 임상재평가에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해 관련 효능·효과가 삭제됐고, 옥시라세탐도 임상재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며 시장에서 이탈했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역시 급여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과 소송이 수년간 이어졌다.
하나가 사라지면 또 다른 약이 빈자리를 채웠다. 은행잎 추출물과 돼지뇌펩티드 제제가 대체 치료제로 거론됐고, 한동안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니세르골린도 다시 처방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그런데 이들마저 다시 검증대에 오르고 있다. 은행잎 제제와 돼지뇌펩티드 제제 역시 재평가 절차를 앞두고 있다.
아세틸엘카르니틴에서 옥시라세탐, 콜린알포세레이트로, 다시 은행잎과 니세르골린 등으로 처방이 옮겨가는 상황은 흥미롭다. 약 하나가 사라지면 또 다른 약이 그 자리를 채우고, 사용량이 늘어난 약은 다시 검증대에 오른다.
이를 단순히 재평가 제도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의약품을 오래 사용해왔다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이 계속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환자가 효과를 느꼈다는 경험만으로 임상적 유용성을 인정하는 것도 어렵다. 임상재평가와 급여 적정성 재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다만 치매와 인지저하 영역에서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치료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어려운 것은 약 때문만은 아니다. 치매의 발생과 진행 기전에는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에서는 아밀로이드 베타 축적과 타우 병리가 핵심적인 특징으로 확인돼 있다. 하지만 질환의 발생과 진행을 하나의 경로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신경염증과 혈관 이상, 대사 변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알츠하이머병을 바라보는 시각도 복잡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아밀로이드 가설 역시 오랫동안 논쟁을 거쳤다.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면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 아래 수많은 후보물질이 개발됐지만 실패도 반복됐다. ‘아두헬름(아두카누맙)’은 아밀로이드 감소라는 분명한 생물학적 효과에도 임상적 유용성을 둘러싼 논란에서 끝내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등장한 '레켐비(레카네맙)'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할 뿐 아니라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 인지기능과 일상생활능력 저하 속도를 유의하게 늦추며 질병 조절 치료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다.
레켐비는 기억력을 다시 좋아지게 만드는 약이 아니다. 이미 시작된 질환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치료를 받은 환자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인지기능이 떨어지지만 위약을 투여한 환자보다 그 속도가 완만했다.
아밀로이드를 제거해도 질환 진행을 완전히 멈추지는 못한다는 점은 알츠하이머병의 발생과 진행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안전성 문제도 있다. 레켐비 등 아밀로이드 표적 항체는 뇌부종이나 미세출혈 등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RIA)을 동반할 수 있어 환자 선별과 반복적인 MRI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결국 최신 치매치료제에서도 다시 '효과'라는 단어와 마주하게 된다.
치매 치료에서는 인지기능을 직접 개선하는 것뿐 아니라 악화 속도를 늦추고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기간을 연장하는 것 역시 중요한 효과로 볼 수 있다. 다만 임상에서 확인된 점수 차이가 실제 환자의 삶에서 어느 정도 의미를 갖는지는 여전히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뇌기능 개선제의 딜레마도 결국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치매는 변화가 느리고 환자별 편차가 크다. 인지기능 검사는 수면과 심리상태, 교육 수준이나 검사 당일의 컨디션 등 여러 변수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효과가 없는 약을 걸러내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치매처럼 발생과 진행에 여러 병리가 복합적으로 관여하고, 치료 목표 역시 '회복'에서 '진행 지연'까지 폭넓게 논의되는 질환에서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하나의 잣대만으로 가르는 것이 충분한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인지기능 점수뿐 아니라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얼마나 오래 유지했는지, 질환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을 얼마나 늦췄는지, 환자와 보호자의 부담을 얼마나 줄였는지 등 치료 효과를 바라보는 기준도 보다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치매의 발생과 진행 기전에 아직 풀어야 할 부분이 남은 상황에서 의학은 어디까지를 치료 효과라고 부를 것인지, 환자가 가진 불안과 믿음에는 어떤 근거 있는 답을 내놓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사와 이를 평가하는 정부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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