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건강보험의 우선순위 원칙은 무엇인가?
- 데일리팜
- 2026-08-03 06:00:44
- 요약
-
가
- 가
- 가
- 가
- 가
- 가
- 이종혁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 탈모 급여화, 실현 가능한 대책을 설계할 때
- PR
- 8/7 물갈이, 배탈 등 여름철 장질환 온라인세미나
- 사전 신청하기

지난 7월 1일, 건강보험에서는 두 가지 일이 조용히 시작됐다. 성인 중증 원형탈모증 환자에 대한 바리시티닙의 급여가 개시됐고, 같은 날 그동안 과잉 이용 논란이 끊이지 않던 도수치료가 '관리급여'라는 이름으로 급여권에 편입됐다. 그런데 그 이틀 전인 6월 29일, 정부는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첫 의제로 내걸었던 국민참여 공론장 '모두의 토론회'를 개최 나흘 전에 전격 취소했다.
한쪽에서는 논의의 문이 닫히고, 다른 쪽에서는 급여의 문이 열렸다. 우리는 탈모를 급여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채 이미 탈모의 일부를 급여하기 시작했고, 문제가 많다고 지적된 비급여 항목을 급여권으로 끌어들이는 것까지 시행에 옮겼다. 정작 답하지 못한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건강보험의 우선순위 원칙은 무엇인가?
반대론의 논리는 '우선순위'?
토론회를 무산시킨 것은 재정 논리와 우선순위 논리, 두 가지였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의학적 필수성과 급여 우선순위를 정면으로 흔드는 포퓰리즘"이라며 중단을 요구했고,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재정 논리는 새로운 급여 항목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어 온 익숙한 주장이지만, 이번에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쪽은 우선순위 논란이다. 생명이 걸린 환자가 먼저라는 주장은 직관적으로 강력할 뿐 아니라, 숫자로도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말 공표한 2024년 보장률을 보면, 4대 중증질환 보장률은 81.0%로 전년보다 0.8%p 떨어졌고 암질환은 76.3%에서 75.0%로 하락했다. 중증·고액진료비 상위 30위 질환의 보장률도 80.2%로 0.7%p 낮아졌다. 정작 지켜야 할 영역의 보장이 뒷걸음질치는 국면에서 새로운 항목을 얹을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 제기는 정당하다. 여기에 탈모치료제 재정 추계가 더해진다. 2025년 공급액을 기준으로 본인부담률 30%를 적용하면 연간 약 1,797억 원, 대상 범위에 따라서는 최대 5,000억~7,000억 원까지 소요된다는 추계가 나와 있다. 평생 복용하는 약제의 급여화는 지출을 영구히 고착시킨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우선순위는 공정하게 지켜지고 있는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선순위를 근거로 무언가를 막으려면, 그 우선순위가 이미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현행 급여 목록을 열어보면 사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첩약 건강보험 적용 2단계 시범사업을 살펴보자. 2024년 4월 시작된 이 사업의 급여비 지급액은 당초 정부 추계치 1,188억 원을 크게 넘어선 1,913억 9,0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4년 계획 487억 원에 집행 866억 원, 2025년 계획 699억 원에 집행 예상 1,376억 원으로 집행률이 각각 177.8%, 196.9%에 달했다. 재원이 가장 많이 투입된 질환은 기능성 소화불량(2025년 603억 5,000만 원)과 알레르기 비염(346억 5,000만 원)이었다. 이 두 질환에만 한 해 950억 원이 쓰인 셈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금액이 아니라 임상적 유용성 근거의 수준이다. 첩약의 임상적 유용성에 대해서는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능성 소화불량과 알레르기 비염에는 임상 근거가 확립된 대체 치료제가 이미 여럿 있는데도 첩약을 건강보험에서 급여해야 하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연 경과로 호전되는 급성상기도감염이 해마다 다빈도 상병 목록의 최상위를 지키고, 2025년 OECD 보건통계 기준 우리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가 연 18.0회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과연 탈모치료제의 임상적 유용성과 질환 치료의 사회적 필요도를 견주어 보았을 때, 첩약이나 경증 외래 진료에 비해 우선순위가 뒤처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대학(大學)』은 다스림의 요체를 혈구지도(絜矩之道)라 했다. 구(矩)는 목수가 쓰는 곱자, 곧 잣대로 같은 자를 위아래에 똑같이 대라는 것이다. 지금 탈모치료제 급여 논쟁에서 없는 것은 재정이 아니라 이 곱자다. 기능성 소화불량과 알레르기 비염에는 첩약을 급여하고 감기 외래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이용량을 허용하면서 탈모에만 '삶의 질 영역이라 안 된다'는 잣대를 들이대면, 그 잣대 자체가 설득력을 잃는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첩약이나 경증 외래 진료의 급여를 철회하라는 주장이 아니다. 우선순위라는 잣대를 들었으면 그 잣대를 모든 항목에 똑같이 대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제약회사와 공공기관에서 건강보험업무를 담당하면서, 어떤 항목은 정교한 경제성평가와 재정영향분석을 수년간 수행해서 겨우 등재되고 어떤 항목은 정책적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훨씬 수월하게 진입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지켜봤다. 그 비대칭이 쌓이면 제도의 신뢰가 무너진다. 탈모 논쟁이 이토록 감정적으로 번진 데에는 그 축적된 불신의 몫이 있다.
실현 가능한 대책은 제도 안에 이미 있다
따라서 현재 필요한 것은 '전면 급여냐 비급여 존치냐'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 사이를 설계하는 일이다. 다행히 우리 제도에는 중간지대를 다루도록 만들어진 선별급여, 관리급여 등의 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부족한 것은 장치가 아니라 그 장치를 일관되게 적용하는 원칙이다.
첫째, 급여 우선순위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여 공개해야 한다.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재정영향, 대체가능성, 사회적 요구도를 명시적 항목으로 두고 가중치를 공개하는 프레임워크가 있어야 한다. 기준이 있어야 '탈모는 되는데 왜 저것은 안 되는가'에도, '저것은 되는데 왜 탈모는 안 되는가'에도 답할 수 있다. 신규 항목만이 아니라 기존 급여 항목도 같은 잣대로 정기 재평가해야 한다.
둘째, 급여기준을 연령이 아니라 중증도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20~34세라는 연령 컷오프는 재정 통제에는 유리하나, 동일 질환에서 나이로 급여가 갈리는 구조는 형평성 시비를 자초한다. 7월부터 시행된 바리시티닙 급여기준은 기존 치료 실패와 SALT 50점 이상이라는 중증도 요건을 함께 걸고, 36주 시점에 SALT 20점 이하로 개선되어야 급여를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남성형 탈모에도 이환 기간과 표준화된 중증도 지표, 전문의 진단을 결합한 객관적 기준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셋째, 선별급여로 시작하는 것이 한 가지 대안이다. 비급여로 방치하지도, 전면 급여를 허용하지도 않으면서 가격과 사용량 관리를 건강보험 제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높은 본인부담률의 선별급여로 출발해 실제 사용량·순응도·중단율 등의 데이터를 축적한 뒤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이다. 다만 진입 시점에 상한금액을 어느 수준으로 정할지 합리적 원칙을 먼저 세워야 한다. 제네릭 경쟁으로 월 1만 원 안팎까지 내려온 실거래가보다 높은 보험약가가 매겨지면, 환자 본인부담은 줄어도 사회 전체 지출은 늘고 그 차액은 보험료가 메우게 된다.
넷째, 재정 불확실성은 사후관리로 흡수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에는 사용량-약가 연동협상, 총액 상한제 등 재정을 통제할 수 있는 사후관리 장치가 있어 재정 불확실성에 따르는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 여기에 일정 기간 후 재정영향·건강결과·형평성을 재평가하는 조항을 붙인다면 일각에서 우려하는 재정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결론
취소된 토론회의 실패는 의제가 부당해서가 아니라 방식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찬성인가 반대인가'를 묻는 순간 그것은 숙의가 아니라 여론조사가 된다. 한정된 재정을 전제로 여러 대안을 함께 올려놓고 배분 순서를 정하게 했다면, 국민은 선택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체감했을 것이고 그 결론은 어느 쪽으로 나든 정당성을 얻었을 것이다. 정부는 여론에 밀려 논의를 접을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설계안을 들고 다시 공론장에 나와야 한다.
탈모를 앓는 청년의 고통은 실재한다. 항암제 급여를 기다리다 시간을 다 써버리는 환자의 절박함도 실재한다. 이 둘은 대립하는 진영이 아니라 같은 곳간을 바라보는 이웃이다. 그리고 곳간을 지키는 방법은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얼마만큼 어떤 조건으로 열어줄지를 미리 정해 두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은 수지 균형만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성실히 보험료를 내는 세대가 이 제도를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는 순간 재정 기반 자체가 흔들린다. 탈모 논쟁이 남긴 진짜 숙제는 머리카락이 아니라, 기준 없이 늘어난 급여 목록을 어떤 원칙으로 다시 세울 것인가이다. 우선순위를 말하려면, 먼저 그 우선순위를 글로 적어야 한다.
- 익명 댓글
- 실명 댓글
- 댓글 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오늘의 TOP 10
- 1대형제약, R&D 성과로 버틴 실적…약가개편에 수익성 우려
- 240도↑ 역대급 폭염에 약국 식염포도당·생맥산 수요 껑충
- 3"우리도 모르는데"…바이오 임상 성공확률 공시 기준 논란
- 4알파제약, 원료 시험성적서 조작…내용고형제 적합판정 취소
- 5삼오그룹, 차세대 공동경영 본궤도…총괄사장에 오주형·오승예
- 6유통업계도 약가인하 우려…제약사에 유통마진 유지 요청
- 7혁신형제약, 해외GMP 인증 '만료 전' 제출해야 R&D 우대
- 8다빈치 독주 속 휴고·오타바 추격…판 커지는 수술로봇 시장
- 9관리급여 도화선…'비급여 규제' 놓고 의-정 갈등 심화
- 10차세대 신약 잇단 등장…다발골수종 급여 경쟁 본격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