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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신문 광고가 인생 바꿨다"

  • 최은택
  • 2009-04-02 06:45:03
  • 황진선 과장(한국BMS제약)

그야말로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황진선(37, 익셈프라 Senior PSR) 과장은 그날도 하릴 없이 집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경기가 다시 되살아났다고는 하지만 IMF의 잔영이 아직 우리사회를 짓누르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양손을 주머니에 꽂고 ‘해바라기’나 할 요량으로 벤치에 앉았다가 엉겹결에 누군가 버려둔 신문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인생의 나침반은 또 다른 삶을 향해 숨가쁜 항해를 시작했다.

황 과장의 꿈은 연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1993년 부모님 몰래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편의상 영화과에 적을 둔 그는 적어도 3년 이상은 누구보다 연기와 연출에 메몰 돼 있었다. 교내에서 제작한 단편영화에도 수회 참가했다. 그 때 함께 했던 지인들 중에는 영화감독이 됐거나 연기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 ‘타짜’ ‘불량주부’를 쓴 방송작가, 영화 ‘강력3반’ ‘령/무희’ ‘미녀는 괴로워’ 등을 연출한 감독들이 ‘그 때 그 사람들’이다. 개그맨 강성범, 탤런트 박상아는 그의 동기들.

하지만 삶은 ‘단꿈’만으로 채워진 게 아니었다.

“당시까지도 영화판은 도제식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의 능력에 상관없이 밑바닥 보조생활부터 한걸음한걸음 올라서야 했죠. 연출보조료로 1년에 300만~500만원을 받으니 사는게 말이 아니었죠. 먼저 연예계에 진출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성공하거나 살아남는 예는 흔치 않았습니다.”

그의 더 큰 짐은 집안의 반대였다.

광대노름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연예판’에 장남이 ‘목숨줄’을 대고 사는 꼴을 부모님들은 볼 수 없었던 것. 황 과장의 고민의 벽은 그 만큼 더 두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느 양지 바른 오후 버려진 신문 한 귀퉁이에서 채용광고를 본 것인데, 바로 한미약품의 영업사원 모집공고였다. 황 과장의 마음을 동하게 한 것은 이 듣도 보도 못한 제약사의 신입사원 임금이 ‘짭짤’한데다, 서울 가락동 그의 집과 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의 영업맨으로서의 삶은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입사원서를 냈습니다. 운 좋게 합격했죠. 그때까지도 제약영업이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황 과장에게 제약영업은 ‘삶의 재발견’ 그 이상이었다.

업무내용이야 다르지만 실상 패턴은 영화판과 흡사했다. 제작진과 스텝, 조명 등 수십 명이 협업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듯이 의약품 또한 개발, 기획, 제조, 마케팅, 영업의 하모니를 통해 성과를 이뤄나가는 과정이었다.

“연기는 몰입과 자기 암시를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세일즈에서도 ‘나는 최고의 세일즈맨이다. 이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몸소 체험했던 경험들은 큰 자양분이 됐습니다.”

물론 운도 받쳐줬다. 신입사원 제품교육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덕에 처음부터 종합병원에 배정됐던 것이다.

BMS 애뉴얼미팅에서 숨겨놓은 '끼'를 발산하고 있는 황 과장. 그 때 이후로 BMS 직원들은 '그를 모르면 간첩'이 됐다.
2003년에는 현 직장인 비엠에스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 차분하고 사람 좋은 인상으로 평범함을 가장했던 그가 직원들에게 본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채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전 직원이 모인 ‘애뉴얼 미팅’에서 그동안 응축한 ‘끼’를 발산한 것이다. 당시 방송인 이혁재씨가 사회를 봤는데, 황 과장의 ‘개인기’에 좌중은 웃다 못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때부터 BMS 직원들은 ‘그를 모르면 간첩’이 됐다.

물론 만사가 다 형통하는 것만은 아니다.

연극영화과 출신의 웃음을 주는 남자라는 그의 표식이 때로는 발목을 잡기도 했다. 선입견의 덫이 드리워진 것이다. 황 과장은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참 많은 ‘코피’를 쏟았다고 회상했다.

오리지널 제품을 판매하는 다국적 제약사의 영업사원에게는 영업기질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용’이다. 영업현장에서 최고의 무기는 ‘에비던스’에 입각한 제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탁솔’팀에서 일했던 그는 이때부터 항암제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가 되자는 꿈을 키웠다. 그리고 이제는 “항암제 시장 전반, 다른 회사의 제품을 아우르는 국내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자부 할 만큼 지식을 쌓았다. 2006년에는 비엠에스 항암제 사업부 ‘베스트 퍼포머(Best Performer)’로 뽑히기도 했다.

“제약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회사가 판매하는 제품을 통해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이 큰 업종입니다. 그만큼 보람도 크고 삶의 가치면에서 만족도도 높죠.”

한 때 연기자의 꿈과 현실의 벽에 부딪쳐 방랑했던 청년 황진선은 이렇게 제약맨으로 재탄생했다. 영업인생 9년만의 일이다.

그는 “항암제 분야 최고 세일즈, 마케팅 매니저로 성장하는 것이 당면 목표”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탁솔’로 대표됐던 항암제 분야 최고회사의 영광을 비엠에스에 되돌리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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