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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피임약 재분류, 의약사가 심판자? 전문성 짚어야"

  • 김정주
  • 2014-06-11 12:24:53
  • 유현미 책임연구원 제언…전문가조차 '팩트'· 근거 빈약

응급(사후) 또는 사전 피임약과 관련한 의약품 재분류 논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지만, 과거 우리나라에 보급된 역사와 여러 근거를 볼 때, 의약사 간 '전문성의 정치'로 인해 본질이 희석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피임약 정책 결정 시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의학적 판단 뿐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맥락에 대해 고려하면서 전문가들이 적절한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원 '울림 유현미 책임연구원은 최근 건강과대안 뉴스레터 '젠더와 건강'을 통해 이 같은 화두를 던지고 제언했다.

피임약 의약품 재분류는 의료계, 약계, 종교단체, 시민단체, 여성단체 등 다양한 집단의 의견이 엇갈리는 첨예한 사안이다. 논란이 커지자 식약처는 내년 분류체계 재검토를 목표로 현재 모니터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사전피임약 보급은 1960년대 초 인구억제와 경제발전을 목표로 한 흐름을 타고 시작됐다. 사후피임약은 이후 1990년대 말 성폭력에 의한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정부의 청소년 성상담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국가 차원의 보급에 의해 전문가는 그 하부 실행자로서 권위가 크지 못한 게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후 들어서야 여성 개인의 건강권을 위한다는 수사가 사용된다.

문제는 여성 건강은 전문가 집단 관리에 의해 보호돼야 한다는 주장으로 최종 선택의 권한을 전문가 집단으로 제한한다는 데 있다.

유 책임연구위원은 "여성의 경험과 입장을 전문가의 권위와 지식으로 제약하면서 하나의 사회문제를 전문가들만의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즉 피임약은 안전성과 접근성, 의도치 않은 성관계나 실패한 피임, 의료비 부담 등 당사자를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가 얽혀 있는 만큼,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판단과 동시에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료전문가, 즉 의약사는 전문약-일반약 구도로만 보거나 의료기관이냐, 약국이냐의 의료이용 문제로만 좁혀 주장하는 것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접근성의 경우 의료계는 주말 외래진료와 분만을 하는 의료기관이 오히려 약국보다 접근성이 높을 수 있고 사생활 상담이 필요한 피임약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약사사회에서는 친밀하고 일상적인 공간인 약국이 접근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유 책임연구원은 "이러한 구도는 일종의 전문직 이익집단 간 '밥그릇 싸움'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지만,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경쟁을 통해 증대되는 전문가의 역할과 권위에 대한 주장과 인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주장하는 팩트와 근거가 미약한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 피임법은 국체적 복용실태와 경로, 이에 따른 부작용이 체계적으로 조사된 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사회연구원의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 조사'의 경우도 15~44세의 가임기 '기혼' 여성으로 한정돼 있어 한계를 드러냈다.

의사단체가 내놓고 수없이 재인용된 바 있던 '사전피임약 2.8%, 사후피임약 5.6% 복용'의 경우 또한 산부인과학회 측에서 자료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전문지식, 소위 '팩트'가 탄탄했다기 보다는 비전문가(무지한 일반여성)를 만들어 경계짓고 비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보태거나 확보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유 책임연구원은 "만약 사후피임약이 오남용 되고 있다면 그 일차적 책임은 전문약이기 때문에 처방과 판매를 담당하는 의료 전문직에게 있을 것인데, 무지하고 성적으로 방종한 여성들의 탓으로 개탄하며 책임의 주체는 슬며시 심판자의 자리로 옮겨갔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과학기술정책에 시민참여 민주주의가 논의되는 것과 같이, 여성의 몸에 대한 전문성의 의미와 한계를 되짚고, 전문가의 적절한 역할 수행과 책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언이다.

그는 "이는 전문가의 역할이나 이해관계를 배제하자는 주장이 아니다"라며 "여성 당사자의 몸과 피임에 대한 경험, 인식, 태도, 실천을 기본으로, 전면 고려할 때만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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