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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탈락한 후보물질이 넓은 특허의 경계를 만든다좋은 후보물질을 찾는 것과 넓은 특허범위를 설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권리범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데이터를 확보하고, 어떻게 배치해야 할까. 연구결과를 학회나 투자자료로 발표할 때는 가장 우수한 후보와 긍정적인 결과가 중심이 된다. 특허 명세서 역시 발명의 효과를 보여주는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출원 전에 권리범위를 검토할 때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도 함께 읽어야 한다. 특정 구조를 변경했을 때 활성이 사라졌다면 그 구조는 단순한 선택사항이 아니라 효과에 관여하는 핵심 요소일 수 있다. 치환 위치만 바꿨는데 선택성이 크게 낮아졌다면 위치적 특성이 후보군을 정의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탈락한 후보가 경계를 보여준다 이때 유용한 접근 가운데 하나가 매치드 몰레큘러 페어(matched molecular pair) 분석이다. 나머지 구조는 유지하면서 특정 부위가 달라진 화합물 쌍을 비교해 해당 변형과 활성 변화의 관계를 살펴보는 방식이다. 공개 화합물 데이터에 이 방법을 적용한 연구에서는 일반적인 구조 유사도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액티비티 클리프도 확인됐다. 권리범위를 설명하기 위한 비교군도 이러한 관점에서 달라질 수 있다. 리드 후보에서 하나의 구조 요소만 바꾼 물질, 치환 위치나 입체구조가 다른 물질, 청구하려는 구조 범위의 경계에 있는 물질과 가장 가까운 선행물질을 함께 비교하는 방식이다. 그래야 리드 후보의 우수성이 어떤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됐고, 그 효과가 어느 범위까지 반복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반대로 구조가 상당히 달라졌는데도 효과가 유지된다면 당초 예상보다 넓은 공통 원리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서로 다른 후보가 공유하는 구조적·기능적 특징을 다시 정의하고, 추가 실험을 통해 그 범위의 대표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실패 결과를 모두 명세서에 공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데이터를 출원서에 포함할지는 영업비밀, 후속 연구와 추가 출원 계획까지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다만 내부 분석에서 긍정적인 결과만 남겨두면 현재 데이터가 실제로 설명하는 범위를 과대평가하거나, 반대로 권리화할 수 있었던 공통 원리를 놓칠 수 있다. 연구팀에서 탈락한 후보라도 IP-R&D 관점에서는 구조와 효과 사이의 경계를 보여주는 데이터가 된다. 성공한 후보는 개발할 물질을 알려주지만,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는 지점은 특허로 설명할 수 있는 후보군의 범위를 보여준다. 실시예는 숫자보다 배치다 넓은 권리를 확보하려면 가능한 많은 후보물질을 실시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비슷한 구조와 긍정적인 결과만 반복하면 실시예 수는 늘어도 후보군의 기술적 경계는 여전히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치환기를 공유하는 유사체 여러 개가 모두 활성을 나타냈더라도, 청구하려는 범위가 위치·크기·전자적 특성과 입체구조가 다른 치환체까지 포함한다면 기존 데이터가 그 범위를 고르게 대표하는지는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 같은 골격을 공유하더라도 치환기 변화에 따라 활성뿐 아니라 선택성·용해도·대사 안정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실시예 수가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구조적 변형의 서로 다른 지점에 배치돼 있다면 후보군의 공통성과 경계를 설명하는 데 더 유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몇 개의 물질을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기술적 질문에 답하도록 물질과 비교군을 배치했는가다. 결국 데이터의 특허상 가치는 절대적인 개수보다 배치에서 나온다. 최고 성능 후보 주변에 유사한 성공 사례를 추가하는 것보다, 청구하려는 범위의 서로 다른 지점과 효과가 달라지는 경계를 보여주는 비교실험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청구항보다 데이터 지도가 먼저다 출원 단계에서는 확보하고 싶은 사업영역을 기준으로 청구범위를 넓게 설계하려는 유인이 생긴다. 경쟁사가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치환기와 유사체를 최대한 포함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이 희망하는 사업범위와 현재 데이터가 설명하는 기술범위는 구분해야 한다. 청구항의 문언을 넓히는 것만으로 데이터가 보여주지 못한 구조와 효과의 관계까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확인된 후보 하나만 지나치게 좁게 보호하는 것도 최선은 아니다. 현재 데이터로 공통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범위, 추가 비교실험을 통해 확장 가능성을 검토할 범위, 후속 연구와 별도 출원으로 남겨야 할 범위를 나눠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출원서를 작성하기 전에 데이터의 지도를 먼저 그려야 한다. 어느 구조군에 실시예가 집중돼 있는지, 어떤 변형까지 효과가 유지되는지, 어디에서 액티비티 클리프가 나타나는지, 가장 가까운 선행물질과의 비교가 비어 있는지를 한 화면에 놓고 보는 것이다. 이 지도는 현재 확보할 수 있는 권리만 보여주지 않는다. 다음 합성에서 어떤 구조를 우선 확인해야 하는지, 어떤 비교군이 추가되면 후속 후보군의 범위를 설명할 수 있는지, 어느 영역은 별도의 발명으로 분리해 검토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특허를 위한 추가 실험은 실시예 수를 무작정 늘리는 작업이 아니다. 현재 데이터가 대표하지 못하는 영역을 찾고, 효과가 유지되는 범위와 무너지는 경계를 효율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판단이 연구 후반에 이뤄지면 필요한 비교물질을 다시 합성해야 할 수 있다. 초기 후보의 시료나 시험조건이 남아 있지 않거나 개발 일정상 비교실험을 반복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긴다. 반면 리드 최적화 단계에서 권리범위에 관한 질문을 함께 설정하면, 기존 평가계획에 필요한 비교군을 배치해 후보 선정과 권리 설계에 필요한 데이터를 함께 축적할 수 있다. 출원 후 확보한 데이터가 기존 설명을 보강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 취급은 국가와 구체적인 법적 쟁점에 따라 달라진다. 최초 명세서에 없던 기술적 내용과 새로운 후보군을 후속 데이터만으로 언제나 최초 출원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논문·학회·IR 공개와 후속출원 일정 역시 데이터 확보 계획과 함께 검토해야 한다. 리드 후보를 선정하는 데이터는 어느 물질을 개발할지 알려준다. 권리범위를 설계하는 데이터는 그 물질이 속한 후보군을 어디까지 하나의 기술적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두 목적을 구분한다고 해서 특허만을 위한 실험을 무한정 늘릴 필요는 없다. 확보하려는 범위를 먼저 정하고 구조적 대표성, 효과의 연속성, 선행기술과의 비교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 비어 있는지를 판단하면 된다. 유사한 성공 사례를 반복하는 대신 범위의 공통 원리와 경계를 확인할 수 있는 비교군을 선택하는 것이다. 좋은 후보물질은 가장 높은 성능값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넓은 권리는 최고점 하나가 아니라, 구조가 달라져도 효과가 유지되는 구간과 그 효과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경계를 데이터가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지에서 결정된다. ◆글: 석종헌 변리사(특허법인 린) 바이오·화학 분야의 특허 포트폴리오 설계와 IP-R&D를 자문한다. 신약 후보물질과 바이오 플랫폼의 연구데이터, 경쟁사 특허와 사업 확장 경로를 연결하는 IP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2026-09-03 06:00:38데일리팜 -
[기자의 눈] 시장이 실망한 건 실패가 아니었다[데일리팜=최다은 기자] 올해 7월은 제약·바이오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기업들이 잇따라 악재를 내놓으면서 실망감이 극대화된 한 달이었다. 문제는 단순한 임상 실패나 허가 지연에 그치지 않았다. 기대를 키우는 데는 적극적이면서 정작 결과가 예상과 달랐을 때 이를 설명하고 수습하는 방식은 미흡했다는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가장 충격이 컸던 곳은 HLB였다.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세 번째 보완요구서한(CRL)을 받으며 미국 진출이 또다시 좌절됐다. 이후 항서제약 제조소 실사가 자발적 시정조치(VAI)로 최종 종결되면서 재도전의 발판은 마련됐지만, 시장이 받은 충격까지 곧바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파트너사의 제조소 문제가 반복된 데다 관련 정보가 양사 간 제때 공유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글로벌 파트너십 관리 능력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코오롱티슈진은 또 다른 의미에서 실망을 안겼다. 무릎 골관절염 치료제 TG-C의 미국 임상 3상 첫 번째 시험에서 공동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임상 결과 자체보다 논란을 키운 것은 이후의 대응이었다. 공시와 보도자료, 기자간담회 발표자료에 기재된 수치가 서로 달랐고, 결과 발표 전 주가가 급락한 배경을 둘러싼 의혹도 명확히 해소되지 않았다. 회사는 예상보다 크게 나타난 위약 효과를 강조하며 오는 10월 공개될 두 번째 임상 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했다. 그러나 시장이 먼저 요구한 것은 새로운 기대가 아니라 이미 공개된 데이터에 대한 정확하고 일관된 설명이었다. 펩트론도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드러냈다. 시장에서는 일라이릴리와의 공동연구가 비만치료제 마운자로의 월 1회 제형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공동연구 대상에 마운자로 주성분인 터제파타이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경영진 발언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펩트론 측은 특정 상업화 제품 하나가 아니라 복수의 차세대 후보물질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회사는 직접 마운자로 월 1회 제형을 공식화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기대가 장기간 커지는 동안 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관심은 오는 10월 기술평가 계약이 실제 본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로 옮겨갔다. 삼천당제약 역시 하루 만에 상한가와 하한가를 오가는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회사는 FDA로부터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 제네릭 개발과 관련한 Pre-ANDA 회신을 받았다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답변서의 핵심 내용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웠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스스로 규정한 호재보다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를 원했다. 충분한 정보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대만 앞세운 설명은 투자심리를 붙잡기는커녕 더 큰 변동성을 불러왔다. 신약 개발에서 실패는 낯선 일이 아니다. 임상은 실패할 수 있고 허가 일정도 늦어질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하나의 신약을 시장에 내놓는다. 문제는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 가능성을 사전에 어떻게 알리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시장과 어떻게 소통하느냐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그동안 기대감을 중요한 자산으로 활용해 왔다. 기술수출 가능성이나 글로벌 빅파마와의 협업, FDA 일정 하나만으로도 기업가치가 크게 움직였다. 그러나 기대감은 실적이나 데이터보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근거보다 기대가 앞서면 현실이 조금만 달라져도 실망은 몇 배로 돌아온다. 상장사는 연구개발 기업인 동시에 공시 기업이다. 투자자는 희망적인 해석보다 정확한 사실을 원한다. 긍정적인 내용만 부각하고 불리한 정보는 뒤늦게 설명하거나, 공개 자료의 수치조차 일관되게 관리하지 못한다면 시장의 신뢰는 빠르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번 잃은 신뢰는 임상에 성공하는 것 만큼이나 회복하기 어렵다. 올해 7월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기술 경쟁력만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투자자들은 임상 결과뿐 아니라 정보 공개의 투명성, 기대 관리 능력, 위기 대응 방식까지 함께 평가한다. 악재 릴레이에서 시장이 가장 크게 실망한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었다. 이전부터 실패 가능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고, 일관되게 설명하지 못한 태도였다. 기업들이 다시 신뢰를 얻으려면 새로운 기대를 내놓기 전에 이미 제기된 의문부터 명확하게 해소해야 할 것이다.2026-07-24 06:00:40최다은 기자 -
[기자의 눈] 약가 깎고 R&D 늘려라…중소사 ‘퇴출 압력’[데일리팜=최다은 기자] 정부가 발표한 ‘약가제도 개선방안’은 분명 방향성만 놓고 보면 그럴싸하다. 제네릭 중심의 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제약사들이 신약 연구개발(R&D)과 원료 자급화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단순 복제약 판매에서 벗어나 산업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도 역시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현장의 온도는 다르다. 정책이 제시한 유인책이 실제로는 상당수 제약사들에게 이중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제네릭 약가를 낮추는 대신 R&D 투자 비중이 높은 기업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약가를 보장하겠다는 구조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 비중이 높을수록 제네릭 약가를 더 인정받고, 이는 곧 기업 수익성과 직결된다. 문제는 이 구조가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R&D 역량과 자본을 확보한 상위 제약사에게는 보상이 될 수 있지만 중소·중견 제약사에게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제네릭 약가 산정률이 기존 53.55%에서 45%로 낮아지고 후발 품목에 대한 계단식 인하 시점도 13번째로 앞당겨지면서 기본적인 수익 기반 자체가 축소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존 등재 품목까지 단계적으로 약가 인하가 적용되면 상당수 중소 제약사들은 당장 현금 흐름 악화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다. 물론 정부는 ‘혁신형’과 ‘준혁신형’ 제약기업을 통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설명한다. R&D 비중이 높은 기업에는 최대 60% 수준의 약가를 보장하고 일정 수준의 투자 기업에도 우대 가산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선투자가 필요하다.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R&D 투자를 늘려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는 자금 여력이 부족한 기업일수록 접근하기 어려운 선별적 인센티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주 수익원인 제네릭 약값은 깎이는데 낮아진 수익성을 보전받으려면 도리어 수십,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R&D 비중을 끌어올려야만 한다. 준혁신형 제약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따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산업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자본력이 있는 상위 제약사는 R&D 투자 확대를 통해 혜택을 극대화하는 반면 중소 제약사는 투자 여력 부족으로 오히려 시장에서 밀려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향후 11년간 2조4000억원 규모의 건보 재정을 절감하겠다고 공언했으나, 그 대가는 R&D 체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 제약사들의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일각에서 정부의 이번 약가 개편이 국내 제약산업의 강제 구조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구조는 여력이 있는 기업만 더 성장할 수 있는 구조”라며 “중소 제약사들이 R&D에 참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약산업의 R&D는 장기 레이스다. 단기간의 성과로 평가하기 어렵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만 결실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약가 개편안은 출발선부터 체력이 다른 기업들을 같은 트랙에 세워놓고 더 빠르게 달릴 것을 요구하는 셈이다. 더욱이 R&D 투자는 실패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투자 대비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영역에서 수익 기반까지 약화된 기업이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결국 일부 기업은 생존을 위해 연구개발보다 단기 수익 확보에 집중하거나 사업 자체를 축소하는 선택에 내몰릴 가능성도 있다. 제네릭 난립을 줄이고 산업 구조를 고도화해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속도와 방식의 문제다. 다만 일괄적인 약가 인하와 선택적 인센티브만으로 구조 전환을 유도하는 방식은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 중소 제약사들이 최소한의 투자 여력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R&D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번 개편은 혁신 촉진이 아닌 산업 축소로 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약가를 낮추는 정책과 R&D를 늘리라는 요구가 충돌하지 않도록 추가 유인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2026-03-31 06:00:38최다은 기자 -
[기자의 눈] 한미약품, 신약 명가의 시험대[데일리팜=최다은 기자] ‘신약 명가’로 불렸던 한미약품의 이름 앞에 최근 더 자주 붙는 단어는 연구개발이 아니다. 경영권 분쟁이다. 3년째 이어진 갈등은 일시적 잡음의 범주를 넘어섰다. 이사회 구성과 지분 구도, 대주주와 전문경영인 간 이견이 반복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연구 성과가 기업가치를 설명하던 구조에서 지배구조가 변수가 되는 국면으로 이동했다. 최근에는 내부 성 비위 사건을 둘러싼 회사의 대응을 두고 논란이 확산됐다. ‘성비위 임원 비호’ 의혹에서 출발한 갈등은 대주주의 경영 간섭 논란으로 번지며 조직 전반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인 신동국 회장은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와의 갈등 및 경영 간섭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본부장 및 임원들이 본사 로비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며 공개 성명을 낸 상황 자체가 이례적이다. 조직 내부의 신뢰와 리더십에 균열이 생겼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은 지난해 12월 팔탄공장 소속 임원의 성추행 제보에서 비롯됐다. 이후 해당 임원에 대한 중징계를 둘러싸고 대주주와 전문경영인 간 이견이 불거지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사안의 본질이 무엇이든, 대응 과정에서의 혼선은 기업 이미지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지분 구도 역시 또 다른 변수다. 신 회장은 최근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추가 매입해 지분율을 30%에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경영권 분쟁과 무관하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그 배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거 ‘4자 연합’으로 묶였던 주주 간 관계에 균열이 생긴 상황에서 지분 확대는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회사의 중심이 연구 현장이 아닌 이사회와 지배구조 이슈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신약 개발은 속도와 일관성이 핵심이다. 경영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수록 글로벌 파트너와 투자자들의 시선은 보수적으로 변한다. 한미약품은 고(故) 임성기 회장이 강조해온 ‘인간존중’과 ‘가치창조’를 기업 정신으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최근 논란은 그 가치가 조직 전반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되묻게 한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임상 데이터의 신뢰, 경영의 투명성, 윤리적 조직 문화가 함께 구축돼야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내부 갈등이 반복될수록 기업가치는 할인되고, 신약 명가라는 타이틀의 무게도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관건은 분쟁의 종결이 아니라 이후의 변화다. 최대주주와 오너 일가, 전문경영인 간 갈등을 봉합하고 명확한 거버넌스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한미약품그룹이 다시 연구개발 중심 기업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지분율이 아닌 성과와 경영 안정성으로 답해야 할 시점이다.2026-02-26 06:00:38최다은 기자 -
[기자의 눈] 난치암 신약의 무진행생존기간에 대한 접근[데일리팜=손형민 기자] 난치암은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질환과 다른 예후가 공존한다. 백금저항성 난소암, 소세포폐암, 담도암 등 공통점은 명확하다.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고 평균 생존기간이 짧으며 다음 선택지가 빠르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 영역에서 신약 개발은 본질적으로 어렵다. 환자 수는 제한적이고 질환의 생물학적 이질성(Heterogeneous)은 크며 진단 시 전신 상태가 악화된 환자가 많아 임상시험 설계 자체가 까다롭다. 대조군 설정도 쉽지 않고 교차투여(crossover)나 후속치료로 인해 전체생존기간(OS) 차이를 명확히 입증하기도 어렵다. 그 결과 임상 성과는 주로 무진행생존기간(PFS)이나 위험비(HR) 개선으로 제시된다. 대조군 대비 PFS 차이가 1개월 남짓에 불과한 연구도 있다. HR 0.73,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 27% 감소. 위험비가 1 미만이면 치료 효과가 있다는 뜻이고 통계적으로도 유의하다. 그러나 환자가 체감하는 것은 상대위험 감소율이 아니라 실제로 확보된 시간이다. 중앙값 PFS가 3.8개월에서 5.2개월로 늘어난 연구라면 HR 0.73라는 수치와 함께 1.4개월 연장이라는 현실이 존재한다. 통계적으로는 분명 진전이지만 임상적 의미는 그보다 복잡하다. 그렇다고 짧은 PFS 개선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치료 옵션이 거의 남지 않은 환자에게 6주, 8주의 질병 통제는 다음 치료로 이어질 기회이자 삶의 질을 지키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객관적반응률(ORR)이나 PFS2가 의미 있게 나타나고, 반응 지속기간(DoR)이 긴 환자군이 존재한다면 중앙값 뒤의 ‘롱테일’은 결코 작지 않다. HR 0.72라는 숫자 속에는 서로 다른 환자의 시간이 섞여 있다. 문제는 이 수치가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기대를 전제할 때 발생한다. PFS 1~2개월 개선이라는 결과는 독성 부담, 치료 중단율, 환자보고결과(PRO)와 함께 해석돼야 한다. 특히 OS 데이터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PFS 중심 평가가 반복될수록 ‘의미 있는 시간’의 기준은 더 복잡해진다. 이 고민은 임상 현장을 넘어 제도 판단으로 이어진다. 한정된 재정 안에서 어떤 약을, 어떤 환자군에, 어느 시점에 허용할 것인가. 사망 위험을 20% 낮췄다는 사실이 곧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가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응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얼마나 정교하게 선별할 수 있는지, 실제 진료 현장에서의 효과를 어떻게 확인하고 보완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난치암 영역일수록 접근은 더 정교해야 한다. 모든 환자에게 일괄적으로 문을 여는 방식이 아니라 근거가 확인된 환자군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초기에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실제 사용 데이터(Real-World Data)를 축적하고, 일정 기간 후 OS, PFS2, 치료 지속성, 삶의 질 개선 여부를 재점검하는 체계가 병행돼야 한다. 결국 문제는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난치암이라는 절박함과 통계적 유의성 사이에서 판단은 더 섬세하고 더 투명해야 한다. 다만 난치암의 질환적 특성과 개발의 어려움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오로지 OS 개선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다면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은 여전히 낮을 수밖에 없다. 특정 암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치료 기회가 더 좁아지는 구조는 정당화되기 어렵다.2026-02-20 12:03:52손형민 기자 -
[기자의 눈] 펜터민 규제 늪에 빠진 청소년 비만치료[데일리팜=이정환 기자] GLP-1 유사체를 필두로 한 비만치료제 열풍이 수 년째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GLP-1 유사체 세마글루타이드(제품명 위고비)와 리라글루타이드(제품명 삭센다)는 18세 이상 성인에 이어 12세 이상 소아청소년 투여 적응증을 획득하면서 치료제 선택권을 넓힌 상태다. 그런데도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 내분비대사내과 등 의료현장에서는 "소아청소년 중증 비만 환자에게 쓸 약이 마땅치 않다"는 호소가 나온다. 왜 일까. 현장 의료진 목소리를 들어보면 여전히 경직된 '저용량 펜터민+토피라메이트' 복합제(제품명 큐시미아)에 대한 처방 기준이 걸림돌 중 하나였다. 저용량 펜터민과 토피라메이트 복합제는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지정된 비만치료제로, 투여 적응증이 18세 이상부터다. 처방 의료진들은 소아청소년 치료제 옵션을 늘리기 위해 복합제 투여 연령대를 12세 이상 등으로 낮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마약류 규제당국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펜터민 성분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다소 모순적인 부분은 복합제보다 향정신성 성분 용량이 높은 펜터민 단일제의 투여 허가 연령대가 16세 이상으로 저용량 펜터민 복합제보다 더 넓다는 점이다. 펜터민 단일제 용량은 37.5mg, 펜터민·토피라메이트 복합제의 1단계(최저용량) 펜터민 용량은 3.75mg으로 단일제의 10분의 1 수준이다.(참고로 복합제 2단계 펜터민 용량은 7.5mg, 3단계 11.25mg, 4단계 15mg이다.) 이를 이유로 의료진들은 "제한적인 조건을 걸어서라도 고도 비만이나 성인병 위험군 소아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펜터민 복합제를 쓸 수 있게 처방 트랙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식약처도 의료진들의 요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펜터민이 자칫 중독 위험을 높일 수 있는 향정 성분이라는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에서 반 발자국도 못 물러서는 실정이다. 더욱이 식약처는 12세 이상 소아청소년에게 펜터민 복합제 등 향정 비만치료제를 처방하더라도, 사후 충분한 의학적 소명 절차를 완수한다면 처방 의료진의 불이익은 없다는 견해를 내비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펜터민 복합제 임상시험 데이터를 제출하라는 요구인데, 이는 임상 환자를 모집하기 어려운데다 일부 윤리적 문제까지 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향정 마약류 규제당국의 단단한 입장에 공감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미국 FDA가 펜터민 복합제에 대한 투약 연령을 12세 이상으로 유연하게 운영중인 점 등을 살펴 '제한적 처방 허용'에 대한 허가 트랙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 더욱이 현장 의료진들은 식약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처방 의사들도 소아청소년 저용량 펜터민 복합제에 대한 까다로운 처방 제한이나 모니터링 행정을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태도다. 소아청소년 마약류 처방 옵션을 한 꺼풀 더 벗겨보면, GLP-1 유사체의 경우 제형이 주사제인데다 투약 비용이 백 만원 수준에 달한다는 장벽이 있다는 점이다. 반면 펜터민 복합제는 한 달 투약 비용이 15~20만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우리나라의 소아청소년 비만율은 수 년째 일본과 중국, 대만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성인병으로 이어지는 비율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게 치료제 옵션 확대를 주장하는 의사들의 견해다. 규제당국이 '처방 후 의사 소명서 제출' 또는 '소아청소년 환자 직접 임상시험 실시' 등 딱딱한 행정에 머물러있을 게 아니라 우울감과 사회 부적응, 고혈압·당뇨·고지혈 등 성인병 위험에 노출된 소아청소년들을 위해 최소한의 처방 트랙을 만들기 위한 적극행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 4단계 처방 용량 중 최저 용량에 대한 연령 금기 조정을 위한 데이터를 제약사에 요구하거나, 처방 의료진에 대한 추가적인 모니터링 기전을 마련하는 등의 행정을 위해 의료진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처방 의료진과 제약사도 소아청소년에 대한 저용량 펜터민 복합제의 비의존성과 함께 고도 비만 치료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 증례 확보를 토대로 규제당국의 합리적인 행정을 지원해야 한다. 향정약이란 이유로 늪에 빠진 저용량 펜터민 복합제가 소아청소년 중증 비만 환자들의 정상 체중을 위해 국소적으로나마 처방될 수 있는 민관 협의를 기대한다.2026-01-29 06:00:41이정환 기자 -
[칼럼] 작년 글로벌 제약 특허 주요 사건과 올해 전망2026년 새해가 시작됐다. 지난해에도 글로벌 제약 특허 분야에서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사업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주요 판결과 제도 변화가 잇따랐다. 그중 우리나라 기업들이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먼저 미국에서는 암젠 대 사노피 판결의 연장선상에 놓일 만한 의미 있는 판단이 나왔다. 2025년 12월 2일, 미국 연방항소법원(CAFC)은 화이자의 자회사 시젠(Seagen)이 일본 다이이찌산쿄(Daiichi Sankyo)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시젠의 특허를 무효로 판단했다. 이 사건은 항암제 엔허투(Enhertu)와 관련된 소송으로, 엔허투는 2024년 기준 약 37억 5천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문제 된 특허(U.S. Patent 10808039)는 항체-약물 접합체(ADC)에 관한 것으로, 청구항 제1항을 간략히 표현하면 ‘항체–링커–펩타이드–약물’ 구조의 ADC를 포괄적으로 청구하고 있었다. CAFC는 이 특허가 두 가지 측면에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는 명세서 기재요건(Written Description) 불비다. 해당 청구항에서 펩타이드 부분(Ww)은 글리신(Gly)과 페닐알라닌(Phe)으로 구성된 테트라펩타이드를 의미하며, 이론적으로 81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그러나 특허 명세서에는 Gly·Phe로 구성된 테트라펩타이드가 단 하나도 특정되지 않은 채, 아미노산이 2개부터 12개까지 연결된 약 47만 개 이상의 펩타이드가 가능하다는 수준의 일반적 기재만 존재했다. 법원은 ‘81’이라는 수가 ‘47만’이라는 범위에 비해 극히 제한적이며, 명세서가 Gly·Phe 테트라펩타이드라는 특정 아종(subgenus)을 충분히 개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는 실시가능성(Enablement) 요건 불비다. 청구항에서 약물 부분은 임의의 약물로 정의돼 있어, 결과적으로 ‘세포 내에서 절단 가능한 모든 ADC’를 포괄하게 된다. 하지만 명세서에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공통의 구조적 특징이나 원리가 제시돼 있지 않았다. 이로 인해 연구자가 발명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개별 접합체를 하나씩 시험해야 하는 과도한 실험이 요구된다고 봤다. 이는 암젠 대 사노피 판결에서 문제 삼았던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그 결과 해당 특허는 모든 청구항이 무효로 판단됐다. 최근 미국 특허 판례를 보면 ‘개시한 것’과 ‘청구한 것’ 사이의 간극이 큰 특허는 과거보다 훨씬 쉽게 무효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청구항이 반드시 실시예에 한정될 필요는 없지만, 개시 범위를 현저히 넘어서는 과도한 확장은 리스크로 작용한다. 특히 개별 특허의 사업적 가치가 큰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는, 청구항 수가 다소 늘어나더라도 넓은 범위부터 좁은 범위까지 단계적으로 구성하는 전략이 상대적으로 유리해 보인다. 2025년에는 유럽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유럽 바이오시밀러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아일리아(애플리버셉트) 특허 분쟁이다. 독일 뮌헨 지역법원은 2025년 10월, 리제네론·바이엘의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인 포미콘(Formycon)의 FYB203이 리제네론의 조성물 특허(EP 2364691)를 침해했다며, 유럽 20개국을 대상으로 한 다국가 특허침해 금지명령(Cross-border Injunction)을 내렸다. 주목할 점은 이 판결이 유럽통합특허법원(UPC)이 아닌 독일 지방법원에서 내려졌다는 점이다. 해당 특허는 이미 UPC 관할에서 옵트아웃(opt-out)된 상태였지만, 유럽사법재판소(CJEU)가 2025년 2월 25일 선고한 C-339/22 판결 취지에 따라, 피고가 소재한 EU 회원국 법원이 국경을 넘는 관할권을 인정한 것이다. 이제 유럽에서 다국가 특허소송을 검토할 때는 UPC와 함께 CJEU 체제까지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UPC는 참여국 전체에서 특허를 일괄 무효로 만들 수 있는 반면, CJEU 체제에서는 중앙 무효 판단이 불가능하다. 아일리아 사례에서 보듯, 이는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전략적 판단 요소가 된다. UPC 출범 이후 유럽 특허소송은 CJEU, 개별국 법원, UPC가 얽힌 복합적인 전략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이밖에도 미국에서는 제약사 테바(Teva)가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압박 속에 2025년 12월, 부적절하게 등록된 200건이 넘는 특허를 오렌지북에서 삭제하는 디리스팅(de-listing)을 단행했다. 유럽에서는 데이터 독점기간 단축과 볼라 예외(Bolar exemption) 확대를 골자로 한 제약 패키지법(Pharma Package)이 EU 의회를 통과했다. 2026년 역시 변화의 속도는 늦춰지지 않을 전망이다. 2026년부터 2028년까지 주요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본격화되는 특허절벽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AI를 활용한 발명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영향으로 의약품 포트폴리오가 저분자 화합물에서 바이오의약품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변화는 늘 반복돼 왔다. 다만 그 변화의 방향과 속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2026년이 우리 제약·바이오 기업들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자 기회의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2026-01-09 12:12:50데일리팜 -
[기자의 눈] 아시아로 향하는 글로벌 임상, 한국의 전략은[데일리팜=손형민 기자]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 아시아 학술대회 'ESMO ASIA 2025'의 주요 화두는 단순히 글로벌 제약사들이 아시아인 서브그룹 데이터를 제시했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번 학회에서 확인된 변화는 임상 성과가 만들어지는 무대와, 그 성과를 따라 움직이는 투자와 개발 전략의 무게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흐름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 사례가 이번 ESMO ASIA에서의 아스트라제네카 발표였다. 아스트라제네카에 따르면 현재 소화기암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의 60~70%가 아시아에서 모집되고 있다. 연구는 아시아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이 지역 전반에서 약 50개의 활성 임상시험 사이트가 운영 중이다. 단순히 참여 비중을 넘어 임상 성과의 신뢰도를 좌우하는 핵심 근거가 아시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향후 신약 허가와 급여 논의에서도 아시아 중심의 데이터 반영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제 글로벌 제약사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해지고 있다. 아시아는 더 이상 글로벌 임상의 하위 분석 대상이 아니라, 임상 성과가 먼저 만들어지고 신약개발 전략이 출발하는 지점이 되고 있다. 하위군 분석이 아닌 주요 평가지표의 무게가 아시아로 이동하는 날도 머지않았다는 신호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아시아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이상 어떤 국가의 어떤 기업을 전략 파트너로 선택될 것인지는 결국 각 기업의 준비도에 달려 있다. 아시아가 중심이 된 임상과 투자 재편 속에서 한국이 어떤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임상 성과의 이동은 자연스럽게 글로벌 제약사의 투자 전략 변화로 이어진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후기 임상, 병용 전략, 후속 연구까지 아시아를 중심에 두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임상과 투자가 동시에 이동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중국의 존재감이다. 중국은 더 이상 환자 수가 많은 나라에 머물지 않는다. 국가 차원의 임상 인프라 확충, 규제 혁신, 자본 투입을 바탕으로 초기 임상부터 후기 3상까지 독자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역량을 빠르게 축적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가 중국 바이오텍을 개발 파트너로 삼아 임상 전략을 설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중국의 강점은 속도와 규모에 그치지 않는다. 특정 기전과 적응증에서는 중국이 글로벌 개발의 출발점이 되는 장면도 나타난다. 이는 아시아로 이동하는 임상과 투자가 다시 중국으로 수렴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간 한국은 오랫동안 글로벌 임상에서 신뢰 가능한 임상 수행국으로 자리 잡아왔다. 빠른 환자 모집, 우수한 의료 인프라는 분명한 강점이다. 그러나 중국이 설계와 주도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수행 역량만으로는 전략적 존재감을 유지하기 어렵다. 글로벌 제약사가 아시아에서 찾는 것은 단순히 많은 환자가 아니라 개발 전략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파트너다. 임상 설계 단계에서의 관여, 특정 환자군에 대한 해석 역량, 후속 연구를 주도할 수 있는 연구 생태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은 단순 참여국을 넘어 임상 설계·해석·확장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대형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한 전문 진료 역량, 특정 암종과 환자군에 대한 축적된 경험, 빠른 데이터 생산 속도는 아시아 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문제는 이 역량이 개별 연구자나 기관 단위에 머무르고 국가 차원의 전략으로 묶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로의 이동은 모든 국가에 동일한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임상 수행국은 많지만, 성과가 쌓이고 투자가 이어지는 국가는 제한적이다. 중국이 빠르게 개발 주도국으로 이동하는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얼마나 참여하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관여하느냐에 대한 선택이다.2025-12-23 06:00:44손형민 기자 -
[기자의 눈] 휴온스의 자본잠식 기업 인수 승부수[데일리팜=이석준 기자] 휴온스가 4년 연속 완전자본잠식(자본총계 마이너스)에 빠진 크리스탈생명과학 인수를 추진한다. 이 회사는 수년 간 자본잠식 탈피 등 자구책에도 계속기업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휴온스가 손을 내밀었다. 휴온스는 크리스탈생명과학 100% 자회사 편입을 통해 고형제 등 신규 제품 생산능력(CAPA)를 확보하고 제조 효율화에 나설 계획이다. 그룹사 간 사업 시너지 창출에도 주력해 중장기적으로 헬스케어 시장 영향력 확대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주식매매계약에 따라 휴온스는 크리스탈생명과학이 보유한 채무 160억원에 대한 담보 제공한다. 휴온스는 CG인바이츠(구 크리스탈지노믹스)로부터 크리스탈생명과학 지분 100%를 확보한다. 언뜻 보면 휴온스그룹의 결정에 의구심이 든다. 완전자본잠식 등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기업을 인수하기 때문이다. 다만 휴온스그룹의 그간 행보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벌써부터 M&A 마법이 다시 한번 통할까라는 기대감도 든다. 최근 M&A 마법 사례는 휴엠앤씨다. 휴온스는 2021년 법원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화장품 부자재 기업 휴엠앤씨(옛 블로썸엠앤씨)를 580억원에 인수하는 모험을 강행했다. 이후 휴온스는 의약품 부자재 사업을 맡고 있는 휴베나를 휴엠앤씨에 흡수합병시키며 재무 건전성을 높이는 등 실적 개선에 주력했다. 화장품과 제약·의료를 아우르는 '헬스케어 종합 부자재 기업'을 겨냥한 휴엠앤씨는 2022년 10월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 유지 결정을 받아 거래가 재개됐다. 2020년 5월 거래 정지 후 2년4개월여 만이다. 휴온스는 2021년 2월 휴엠앤씨 인수 후 20개월 만에 기업 정상화를 이뤄냈다. 휴엠앤씨는 올 3분기 누계 매출액 371억원, 영업이익 38억원을 올렸다. 전년동기대비 각각 50%, 192.3% 오른 수치다. 어느덧 그룹 한 축을 형성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휴메딕스(옛 에이치브이엘에스)는 휴온스그룹의 대표 M&A 작품으로 꼽힌다. 휴온스그룹은 2010년 매출 50억원, 영업적자 20억원이던 휴메딕스를 사들여 지난해 매출 1232억원, 영업이익 260억원 회사로 키웠다. 2014년 12월 코스닥 입성에도 성공했다. 올 3분기 누계 매출(1155억원)과 영업이익(321억원)을 감안하면 최대 실적이 점쳐진다. 휴온스그룹은 제약업계에서 M&A로 커온 대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윤성태 휴온스글로벌 회장은 수차례 M&A를 통해 그룹을 7000억원대 회사로 만들었다. 휴온스의 4년 연속 완전자본잠식크리스탈생명과학 인수. 보통은 우려가 앞서지만 휴온스의 그간 행보를 봤을 때 또 한 번의 M&A 성공 사례를 기대케 한다. 윤성태 회장의 또 한번의 승부수가 던져졌다.2023-12-26 06:00:21이석준 -
[모연화의 관점] 조금 더 공부하고 해볼게요(40)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커뮤니케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룹의 의견을 미루어 짐작하는 관점은 커뮤니케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과한 신념으로 확언을 내뱉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오늘은 세 가지 심리적 특징과 커뮤니케이션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1. 공부를 많이 하는 A약사를 만났다.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반짝이는 능력이 다른 약사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강의를 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는 "저는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아요. 조금 더 공부하고 해볼게요"라고 말한다. 공부를 끊임없이 하는 약사들은 의외로 자신이 별로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성취한 건, 운이 좋아서 혹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로 생각하며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 걱정한다. 이러한 현상은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78년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폴린 클랜스(Pauline Clance)와 수잔 임스(Suzanne Imes)는 깊게 공부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고, 그들이 근거 없는 불안을 호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심리적 특징을 '가면 증후군'이라고 명명했다. 가면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일반인의 70%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은 그저 암기를 잘했을 뿐이에요, 저는 머리가 좋지 않아요 등의 생각을 하며, 자신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진정으로 똑똑하지 않고,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챌 거로 판단하여 불안해 한다. 2. 약과 관련한 이슈에 관해 명징한 관점을 가진 B약사를 만났다. 문제 분석 및 해결 방안 도출 과정이 체계적인 사람이었다. 연재 글을 써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는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싫어할 거에요. 제 의견은 소수의 의견일 뿐이니까요. 다음에 해볼게요"라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플로이드 올포트(Floyd Allport)와 다니엘 카츠(Daniel Katz)는 목소리가 큰 몇몇 의견이 다수의 의견이라 가정하고, 다수의 사람이 그 생각을 수용하고 있다고 잘못 판단하는 심리적 현상을 다원적 무지로 명명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일 거라 가정한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이 자신과 다른 의견일 거라 가정한다. 기사의 댓글에 달린 글이 다수의 생각이라 착각하고,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것도 다원적 무지 현상의 일종이다. 3. 확신에 차 있는 C약사를 만났다. 자신의 사업 모델이 완벽하게 성공할 거라는 확언, 많은 사람이 의견에 동의하고 있으므로 '탄탄대로'라는 그의 설명을 듣는 중에 그의 자신감만이 부러웠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앞, 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 많아 몇 개를 슬쩍 찔러보았다. 그런 건 별거 아니라는 손사래와 함께 이미 많은 사람이 변화에 동참했다는 의기양양한 눈빛을 보낸다. 이러한 현상은 허위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허위 합의 효과는 대다수가 자신처럼 생각하지 않는데 남들도 자신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잘못 가정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실제보다 더 널리 수용되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쉽게 낙인 찍는 특징도 보인다. 허위 합의, 혹은 허상의 합의를 쉽게 하는 사람은 자기 향상 메커니즘을 잘 돌리며 높은 자신감을 보인다. A, B, C 세 약사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떠할까? 쉬이 상상할 수 있다. A 약사는 여전히 공부를 더 하고 말하겠다며 차일피일 미룰 것이고, B 약사는 집단의 의견에 따르며 방관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C는 말이 없는 다수가 이미 동의를 했다고 착각하며, 더 크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결론은? C의 말이 다수의 의견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A와 B를 위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가면증후군과 다원적 무지라는 단어를 기억하자. 명칭은 진실을 깨닫게 한다는 순자의 말을 기억하면서, 물 위로 올라가려는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의 겸손이 어쩌면 사회적 공포의 일종일 수 있음을 상기시키자. 과거의 성취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기 위해, 다양한 피드백을 받아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C를 위한 결론은 시간이 약이지 않을까. 부디 자기 과시적 확언을 통과한 후에 겪을 실패의 경험이 새로운 지식 체계에 도움이 되길 바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우리도 그 과정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겸손을 배우는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을 권유하는 바이다.2023-06-12 13:20:39데일리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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