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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약통 여니 설탕과 벌레가…약사, 환자 곁 '소근소근'

  • 정혜진·김지은
  • 2018-01-02 12:15:00
  • 부산 북구 '스마트약국'...경기 부천 '찾아가는 약료서비스' 현장

"주민에 더 가까이"…약국이 어르신들 건강 관리소로 부산 북구약사회 '스마트약국'

"여기 이 검사…무료에요?" 정형외과서 소염진통제 처방을 받아온 40대 후반 남성은 약국을 나서려다 돌아서서 말했다. 그는 유리문에 부착된 '스마트약국' 안내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김진경 약사는 남성을 상담테이블에 앉혀놓고 기본 인적 사항과 간단한 건강 상태, 원하는 검사 종류를 점검하는 설문을 했다.

약국 출입문과 상담카운터에 부착한 스마트약국 이용 안내문
이 남성은 혈액검사와 혈당검사, 체성분검사 항목을 신청하며 연락처와 개인정보이용 동의서에 서명하고는 "작년에 병원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해 '한번 받아야지, 받아야지' 하다 시간만 흘렀어요. 무료로 해준다니 이 참에 검사를 받아야겠어요"라고 말하고는 조제약을 챙겨 나갔다.

데일리팜이 부산 북구 그린약국을 찾은 건 지난 20일 오전 10시반. 처방전이 많지 않은 한산한 약국인데도, 김진경 약사가 부착해놓은 '스마트약국 안내문'을 보고 혈당검사 등을 받아보겠다고 문의하는 환자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저런 분들이 많이 있냐'고 묻자 김 약사는 "내가 먼저 권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안내문을 보고 물어보신다"며 "관련 질환을 갖고 계시거나, 저 분처럼 평소 검사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분들이 안내문을 보면 거의 100% 먼저 이야기를 꺼내신다"고 했다.

이렇듯, 부산 북구보건소와 북강서구약사회가 2015년부터 시행한 '스마트약국'은 다시 말해 '약국이 지역주민들 가까이에서 보건소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검사 없이 고지혈증 약만 계속 복용하는 노인, 검사를 통해 약을 조절할 필요가 있는 중년, 혈당·혈액 검사를 원하는 주민이면 누구나 약국을 통해 보건소에 방문해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검사를 통해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하는 것이 이 사업의 궁극적 목표다.

혈당검사를 받으려는 40대 남성과 상담 중인 김진경 약사
김진경 약사는 "북구 지역이 부산에서도 특히 노인이 많고 저소득층이 많아 보건소가 소외계층을 위해 보건소 무료 검진 서비스를 더 많이 받도록 약국 연계 사업을 시행한 것"이라며 "실제 혜택을 받아본 분들이 주변에 소개해 점차 더 많은 분들이 스마트약국을 통해 보건소 무료 검진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북구보건소에 따르면 참여 주민 수가 2015년 98명에서 2016년 159명, 2017년 186명으로 점차 늘고 있다. 그린약국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약국으로, 지난해 연계해 온 환자수 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혜택을 받은 주민 수가 크게 늘어났던 데에는 참여 약국이 늘어난 이유도 있다. 2015년 14곳 약국으로 시작한 스마트약국은 2016년 20곳, 2017년 30곳으로 늘어났다.

스마트약국 카운터에 비치된 스마트약국 안내문(왼쪽)과 팸플릿. 보건소가 제작했다. 그린약국이 환자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제작한 설문지. 개인정보이용 동의 내용이 포함돼 환자 편의를 높였다.(오른쪽)
보건소는 더 많은 홍보를 위해 홍보물과 쿠폰을 발행해 스마트약국에 비치하고 있는데, 쿠폰을 소지한 주민이 보건소에 연락해 검사를 예약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그린약국은 주민이 직접 연락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개인정보이용동의를 함께 받기 위해 직접 설문지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설문지는 ▲병원 방문 빈도 ▲앓고 있는 질환 ▲혈압측정·혈액검사 빈도 ▲보건소에서 받고자 하는 검사 등을 조사할 수 있는데, 이 설문지를 약국이 보건소 담당자에게 팩스로 전송하면 담당자가 환자에게 전화를 해 방문예약을 잡는다.

김진경 약사
김 약사는 "직접 전화하라고 하면 많은 환자분들이 잊어버리거나 귀찮아하죠. 보건소에서 전화를 하면 편한 시간에 예약을 잡아 참여하는 분들이 더 많아진다"고 말했다.

환자의 자발적인 질문 외에도 김 약사는 특히 혈당 수치에 따라 약을 조절해야 함에도 계속 같은 약을 같은 함량으로 복용하는 환자들에게 이 사업을 소개하고 검사를 받도록 유도한다. 가까이 있는 의원에 혈당 검사기기가 없어 의원도 보건소 검사 결과를 가져오면 진료에 활용한다.

김 약사는 "의원이 협조적이어서 이 사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며 "많은 약국들이 의원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보건소와 의원, 약국이 손발이 맞았기 때문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더 많은 약국과 지자체과 연계해 이웃들에게 다가가는 사업이 확대된다면 좋겠다. 사업 혜택을 받은 분들은 매우 만족하고 지인들을 약국에 데려오고 사업을 소개하고 있다"며 "입소문을 탈 정도로 주민들 반응이 좋다. 약국 이미지도 좋아지고 말이다. 지자체와 약국, 주민 모두에게 좋은 일석삼조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찾아가보니 알겠더라"…주민 삶 속으로 들어간 약사들 경기도 부천시약사회 '찾아가는 약료 서비스'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지난 여름, 경기도 부천의 약사들이 지역 독거 노인들의 집을 방문했다.

흔한 선풍기, 에어콘도 없는 방에서 30분 이상 어르신들의 의약품을 정리하고 복약지도와 생활 수칙 등을 전달하다보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지는 건 기본이었다.

오랜기간 지역 내 취약계층 방문 약료를 꿈꿔왔던 부천시약사회(회장 이광민) 윤선희 부회장은 올해 여름 길었던 머리를 잘랐다. 더운 날씨 한집이라도, 한명의 어르신이라도 더 만나겠다는 생각에 긴 머리는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천시약사회는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7개월 동안 경기도 지원을 받아 방문약료 사업을 진행했다. 경기도에서 예산 지원을 결정하기 수년 전부터 분회 차원에서 취약계층 방문 상담을 위한 준비를 해 왔고, 관련 내용을 건의해 왔던 터라 시작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부천시약사회 소속 25명의 약사들은 지난 한해 주민들의 집을 직접 방문해 복용 중인 의약품을 정리, 관리하고 평소이 식이요법, 생활 습관 등을 상담했다.
윤선희 부회장을 필두로 23명의 약사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처음 시작하는 사업인 만큼 2명의 약사가 한팀을 이뤄 7개월간 총 76명의 대상자를 관리했다.

다행히 부천에서는 지역 내 독거노인지원센터 소속 생활관리사들이 지역 내 취약계층이나 독거노인 리스트를 보유하고, 관리해 왔기 때문에 대상자 선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복병은 뜻하지 않은 데서 발생했다.

"이전부터 생활관리사 분들이 대상자들을 보호해왔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나선다니 생활관리사 분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본인들이 해 왔던 업무가 있고, 우리로 인해 그것이 침해받을까 걱정이되셨겠죠. 그래서 방문 이전에 생활관리사 분들의 교육부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이분들의 인식이 바뀌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복용 약물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보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협조가 너무 잘됐고,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됐어요."

약국을 벗어난 약사들이 직접 현장에서 발견한 의약품 관리와 복용 실태는 상상 그 이상으로 심각했다. 그들이 생활하는 집문을 직접 열고 들어가보니 그 안에서 건강 상태와 문제가 진단돼 나왔다고 했다.

윤 부회장이 만난 한 대상자는 필요 이상으로 골절이 심했던 환자였다. 큰 사고도 아닌데 골절 사고로 수차례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것. 그 이유는 대상자의 집을 방문하고나서야 알게됐다.

복용 중인 약을 확인하려던 중 모든 약통에 설탕이 가득 담겨있었던 것. 대상자는 입맛이 없어 단맛을 내는 설탕에 의존해 살았다고 했다.

처음 약사들이 대상자들의 집을 방문했을 당시 의약품 관리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약사들은 복용 중이거나 그렇지 않은 의약품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대상자들에 일일이 설명했다.
"약통을 정리하려고 보는데 유독 그 주변으로 벌레가 많은거에요. 그래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설탕이 가득 담겨 있는거에요. 미각을 점점 잃으면서 모든 음식에 설탕을 과도하게 넣어 드셨던거죠. 그때서야 알겠더라고요. 뼈가 약해져 유난히 골절도 많았다는 걸. 병원이나 약국에선 환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거잖아요. 이후 벌레퇴치제를 뿌리고 약 관리는 물론 식습관 관리방법까지 해드렸어요. 그랬더니 기존에 우을증약, 파킨슨병약을 드셨었는데 훨씬 건강해지시는게 눈이 보이더라고요."

4개월 간 방문과 전화를 포함해 5차례 상담을 진행하는데, 과연 얼마나 변화가 있을까 하는 약사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5번의 약사와 대상자 간 교류는 단순 약물 사용의 변화를 넘어 그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약사들이 직접 만들어간 약달력과 약바구니는 약은 관리하며 올바르게 복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대상자들에 심어줬고, 약사들의 전문적인 복약상담과 더불어 식이요법, 생활수칙 등에 대한 조언은 그들의 건강을 개선시키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부천시약사회 약사들이 직접 제작한 약먹는 달력. 약사들은 의약품을 정리하고 대상자들이 제때 정량의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어떤 분은 유난히 마르시고 핏기가 없어 물어보니 먹던 빈혈약을 중단한 상태더라고요. 동네병원에서 한달 정도 약을 먹고 종합병원을 가라하니 엄두가 못내고 있던 거에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도록 알려드리고 일일이 적어드렸어요. 식이요법도 설명해 드렸고요. 그랬더니 5차 방문때 얼굴도 밝아지고 살이 붙으신거에요. 너무 뿌듯했죠. 5번의 만남으로 그분들 삶이 이렇게 개선될 수 있다는 게 놀랍고 또 감사했어요."

약사들의 노력은 지자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부천시의회는 지난달 개최된 제224회 제2차 정례회에서 부천시장(시장 김만수) 안건으로 제출된 부천시 의약품 안전사용 조례안을 행정복지위원회 소관 안건으로 최종 통과시켰다.

윤선희 부천시약사회 부회장
이번 조례는 부천시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한 의약품 안전 사용 교육, 방문약료, 폐의약품 수거, 관리를 포함해 방문약료 사업의 시행,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약사들의 활동을 지켜본 지역 보건소에서도 조례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줬다.

약사들은 이번달부터 지난 7개월 간 진행한 사업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생활관리사들이 대상자들을 직접 만나 약사들과 상담을 진행한 후 달라진 점이나 개선이 필요한 내용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결과가 나오면 내년 사업에 적극 반영할 방침이다.

"올해는 처음이다보니 자발적으로 모인 약사님들이 봉사의 마음으로 참여해주셨어요. 내년에는 조금 더 체계적이고 표준화된 상담과 관리가 될 수 있도록 참여 약사 교육과 매뉴얼 등을 만들 예정이에요. 또 각 반회에서 참여 약사님들이 나와 대상자와 약국 간 더 긴밀히 교류할 수 있는 체계도 만들었으면 하고요. 앞으로는 독거노인을 넘어 요양원 등 요양기관에 대한 방문 관리로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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