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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짓밟는 끈질긴 입법

  • 데일리팜
  • 2009-04-30 09:52:50

새로운 입법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수차례 통과되지 못하는데서 나아가 아예 논의만 되다가 종국에는 상정조차 되지 못한다면 입법을 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해봐야 한다. 일명 '과잉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법'으로 불리며 지난 2006년부터 장장 3년여째 국회 상임위원회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법안은 논란의 와중 속에 그저 이름만 유명세를 타고 있는 상황이니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입법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의아하고 착잡하다. 국회가 그렇게 할 일이 없나 하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의협, 병협 등 관련단체의 강력한 반발과 이해관계 때문에 속도조절을 한 것이라고들 하지만 과연 스피트메터를 조절할 가치가 있는 법안인지부터 엄정히 그리고 분명하게 다시 따져 봐야 한다.

민주당 박기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지난 27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4대 사회보험료 징수 통합을 골자로 한 건보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으로 내세워졌다. 하지만 누가 봐도 복지위에 상정되지 못한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빙빙 돈 시간이 벌써 3년여가 넘고 손을 댄 국회의원들도 16대~18대에 이르기까지 다섯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지난 16대 국회 때는 김성순 의원이, 17대 국회에서는 장향숙 의원이 추진 또는 발의했다가 무산되거나 폐기됐다.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의원시절에 추진하기도 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으로 5수째다. 법안소위 통과 전례도 이번으로 두 번째다. 오는 6월 열릴 다음 임시국회때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장담하는 복지위 일부 인사의 판단력이 그래서 심히 의심스럽다.

단순히 '원인제공'(원외처방)만으로 부당이득금을 환수할 수 없어 민법까지 동원해야 하는 정부의 애타는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보험재정 누수를 막아야 하는 복지부, 공단, 심평원 등의 입장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조차 난 상황이 아닌가. 원외처방 약제비를 환수할 근거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의료기관의 책임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볼 수 없다는 해석까지 하는 것은 자의적일 뿐만 아니라 지나치다. 잘못의 책임이 있으면 제3자가 받은 돈임에도 그 돈을 물어내야 하는 논리가 맞는다고 전제한다면 그 잘못의 잘잘못을 엄정히 가릴 수 있는 또 다른 대전제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불분명하다. 의료와 의학의 잘잘못은 정부가 아무리 전지전능해도 쉽게 판단할 일이 못 된다.

실제 이를 감안하지 않은 요양급여비용 삭감으로 의료계는 억울한 사례를 많이 당했다. 의료계가 줄줄이 정부를 상대로 요양급여비용환수처분 무효소송이나 취소소송에 나서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정부는 이들 소송에서 패배를 경험했다. 우리는 이런 상황 때문에 추진된 입법정신 그 자체가 더 문제라고 지적하고 싶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근거가 필요해 입법이 필요하다면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법률을 정부는 수시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가. 설사 범죄행위라도 법률 조항을 마구 양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으로 통한다.

우리는 물론 의료진의 과잉처방을 무조건 옹호할 생각은 없다. 매년 150~200억원 가량이 과잉 원외처방 약제비로 환수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반영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연도별 원외처방약제비 조정건수와 금액'을 보면 그 내역이 세세히 나온다. 그런데 과잉처방이라는 기준이 참으로 모호하기 그지없어 고무줄 해석이 가능하다. 단순한 지표를 놓고 과잉처방 잣대를 일방 적용하기에는 환자의 상태나 진료 상황의 변수가 너무나 많다. 진료 자체를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시각으로 바라 봐야 한다는 의미다. 일률적 잣대로 과잉처방 기준을 설정한다면 행정부나 관료가 의사나 의학의 눈으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아가 의대와 의학 자체를 정부가 부정하는 출발선에 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설사 원외처방 이슈에는 이른바 '리베이트'가 암묵적으로 걸려 있다고 해도 그것을 빌미로 잡는다면 말이 안 된다. 그 부분은 검·경 수사를 통해 리베이트 부문만 떼어 내 단죄하는 것이 맞다. 과잉처방은 그 자체만으로 놓고 봐야 한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정부는 해석을 자제하고 궁극적으로는 아예 잣대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참에 의원입법으로 밀어붙이려는 의지를 버렸으면 한다. 정부가 스스로 부여한 배타적 의사면허를 누구보다 신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 면허의 활용에 대해서는 의학과 의사의 양심과 소신에 맡기는 것이 옳다. 설사 일부의 과잉처방과 그로인한 부닥이득금이 제3자에게 발생해도 그렇다는 얘기다.

현행 건강보험법에는 의사가 부당 또는 과잉처방을 하면 처벌받는 규정이 이미 있다. 법 제85조(업무정지) 제1항1호에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가입자 및 피부양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때'라는 규정이다. 이 경우 1년의 범위에서 해당 요양기관은 업무정지 명령을 받는다. 개정 법안도 '거짓이나 그 밖에 부당한 방법'라는 문구로 상정됐다. '속임수'와 '거짓'의 용어 차이가 무엇이 다른가. 다시 말해 현행법으로도 요양기관은 보험공단에 허위 또는 부당청구를 했다면 업무정지 처분을 받는다. 처방 자체에 단죄규정이 있는 이상 원외처방까지 곁들여 또 다른 단죄 규정을 만든다면 의사는 이른바 '제3의 이익' 내지 '미지의 이익'에 대해서까지 온통 범법자 취급을 받는 셈이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현행 법 조항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85조의2(과징금)를 보면 요양기관의 업무정지를 불가피하게 내리지 못할 경우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부담하게 한 금액의 5배 이하의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징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이 역시 '처방'이라는 큰 울타리에서 '의사'라는 객체만을 보면 의사는 현행법에 5배라는 강력한 과징금 규정을 적용받는 것이 중요한 맥락이다. 어느 직종보다 사회적 품위와 신뢰를 담보해야 하는 의료진에게는 다섯 배의 금액도 그렇지만 그 자체로 치명적 손상이 되는 형벌규정이 있다는 것이다. 현행 법률에 과잉처방시 단죄를 줄 조항이 이렇게 겹겹이 둘러쳐 있기에 원외처방 만큼은 의료계의 양심을 끈기 있게 기대해 보자. 라이선스에 대한 믿음을 정부가 지켜가 준다면 의료계는 자정활동으로 그 신뢰에 신호를 보낼 것이라는 믿음을 반드시 가져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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