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비친 나에게 말을 건다 "행복하니, 넌?"
- 김지은
- 2013-06-04 1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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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즈음 차린 약국 안에서 좌절하고 매일 꿈꾸는 여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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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다시 하루의 시작이다.
약국까지 지하철로 30분. 제약회사를 그만둘 때만 해도 출퇴근 길 만원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기대 하나로 들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떠밀리듯 탄 만원 지하철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묻는다. "행복하니 넌?"
독백 한구절 떠올린다. "참느냐, 마느냐(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햄릿 3막 1장)."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
학창시절 남부러울 건 없었다. 성적은 톱클래스였고 명문여대 약대생이라면 사람들은 한번 더 쳐다봤다.
전문직 여약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은근히 즐겼지만 약사로서 자존감과 소명의식도 있었다.
동기들이 약국 근무약사가 될 때 국내 굴지 제약회사 개발부에 취업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난, 더 큰 그림을 그려 나가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현실은 내 꿈과 목표를 180도 바꿔 놓았다. 막연한 걱정으로 다가왔던 약가인하 소용돌이는 조직에 후폭풍을 가져왔다. 영업·마케팅팀에 비해 '철옹성' 같았던 개발부도 약가인하 앞에선 맥을 못췄다.
약사 출신 팀장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함께 일하던 동기, 선후배들도 갈라지고 뿔뿔이 흩어졌다. 팀이라는 연대감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일 잘하고 똘똘하기로 소문났던 동료 약사들은 제 갈길을 찾겠다며 로스쿨이다 변리사 준비다, 해외 유학 길이다, 죄다 골라 나갔다. 모두들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 약업계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나 역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곤 대학시절부터 꿈꿔왔던 '진짜' 약사가 되기로 마음 먹고 약국을 차렸다. 서른, 비교적 어린 나이에 나만의 약국을 갖고 흐믓했다. 하지만 현실은 또 한번 나를 무너뜨렸다.

서울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도봉구에 10평 남짓한 동네 약국. 융통할 수 있는 돈으로는 최선이었다. 시내 대로변이나 클리닉 약국은 엄두도 못냈다.
약국 '잘'하는 약사로 불리고 싶었다.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 탓도 있지만 내 직업에 만족했고 또 좋았다.
맞딱드린 현실은 그저 훌륭한 약사가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자기 약국을 하는 선배에게 들었던 무자격자, 난매와 조제료 할인이 눈 앞에 펼쳐졌다.
고령 환자가 많은 동네 특성때문인지 주변 약사들은 일반약 가격 '후려치기'는 기본이고 한달분 조제료도 깎아 준다고 한다.
제값을 고집한 우리 약국은 늘 가격시비의 표적이 되기 일쑤다. 100원, 200원 시비가 지겨워 같이 가격을 낮춰 볼까 생각도 해봤다. 잠깐의 유혹이 틀렸다는 것을 깨우쳐 준 건 한 환자였다.
"저기는 약값이 싸고요, 여긴 친절하고 설명을 잘하는 곳이에요." 환자 한 마디에 '값싼' 약국이 되지 말자 다짐했다. 그래도 거듭되는 약값 시비에는 신물이 난다.
혹시나 했는데…. 술에 잔뜩 취한 중년 남성이 약국 문을 들어서며 "박카스 한병"을 외치더니 대기 의자에 앉아 음담패설을 늘어 놓는다.
여약사와 여자 전산원 두명만 풀근무를 하다보니 술 취한 사람들과 '진상' 고객의 표적이 된다. 물론 가끔이지만 후유증은 오래간다.
한달 전엔 한 70대 고객이 일주일분 약을 적게 조제해 줬다고 우기며 약국에서 3시간 이상 난동을 부려 고민 끝에 지역 파출소에 신고하고야 말았다.
"이 약국 가만두지 않을거야. 내가 어디 잘 되나 두고본다." 경찰에 끌려나가는 이 사람, 약국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악담을 쏟아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가족이나 부모같은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겠다는 다짐은 조금씩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10년 앞 내다볼 수 없는 암담한 미래
남들은 서른 둘 나이에 자기 약국을 운영한다고 하면 영락없이 성공했다고 추켜세운다.
그런데 지금 나는 행복할 수 없다. 하루 처방 50건 남짓해서는 근무약사를 따로 두기 쉽지 않다.
의원이 7시에 문 닫았다고 나도 따라 문을 닫고 싶지도 않다. 자존심일까? 오기일까? 그러다 보니 하루 절반을 10평 약국 안에 갇혀산다.
12시간 가량 약국 안에서 생활하며 화장실도 맘 편히 가지 못한다. 여유로운 식사는 사치다.
점심, 저녁은 조제실 한켠에서 해치운다. 오늘도 백반을 배달해 먹었다. 10분도 채 안되는 식사 시간동안 두 세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 나면 입맛이 싹 가신다. 최근엔 팜파라치 때문에 화장실 가는 시간도 정해 놓았다.
친구들은 또래에 비해 좀 더 번다며 내 삶이 부럽다고들 한다. 참, 속 모르는 소리다. 그들은 모른다. 내가 직장인, 당신을 얼마나 부러워 하는지 말이다. 내 삶의 질은 만족스럽지 않다.
10년, 20년을 내다 볼 수 없는 현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약이 편의점으로 나가더니 이제는 자동조제 로봇에 화상투약기까지 등장했다한다. 일반인 약국개설도 머지 않은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죽는냐 사는냐 그것이 문제로다." 환경과 소용돌이 치는 고뇌 속에서 갈등하던 햄릿처럼 10평 약국 안에서 나도 갈등한다.
"파랑새는 있다"…10평 약국 안에서 행복찾기
문득 10평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여기서 파랑새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약국에 지쳐 미뤄뒀던 공부를 시작했다. 약국에서 느끼는 갈증을 공부로 채워나가고 싶어졌다.
전에는 없었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피해의식과 열등감. 주변 의원과 소소한 갈등을 겪을 때나 "의사한테 물어야지. 약국이 뭘 알겠어"라는 환자가 무심히 던진 한마디가 비수처럼 박힐 때가 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열등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선 내가 더 알고 떳떳해 져야겠다는 생각이 커진다.
남는 시간 짬짬이 공부하고 대학원에도 진학할 생각이다. 임상약학대학원도 좋고 의전원 입학도 생각해 보지만 의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내 자신이 만족할 수 있고 행복한 약사가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오늘도 난 꿈꾼다. 파랑새를 품에 안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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