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형약국', 높은 윤리강령 따르던 지식인이 운영
- 데일리팜
- 2014-08-04 06: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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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6] 아라비아문명에서의 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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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은 특히 서기 400~900년 사이에 번영하였는 데 당시 수많은 그리스 및 로마의 저작물(작품)들이 이곳에서 아랍어로 번역, 복제 및 보존되었다. 번역, 복제 및 보존된 작품에는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필연적인 증보개정판 및 누락되고 오류가 있는 형태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비잔티움에서의 종교탄압 때문에 비잔티움 학자들은 네스토리우스의 기독교인(Nestorian Christians)들이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시리아어와 아랍어로 번역하던, 페르시아 남서부에 위치한 준디 샤푸르(Jundi-Shapur)로 이주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로마(Greco-Roman)의 문화를 보존하는 일은 아랍국가의 책임이 되었다.
다수의 셈족국가의 집합체인 아랍 국가들은 시리아, 페르시아 그리고 이집트를 정복함으로써 고대의 문명 세계를 짓밟아 버린다. 안타깝게도, 광신적인 기독교인들과 싸운다는 명목으로 똑같이 광신적인 반기독교 이교도들에 의해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Library of Alexandria)은 서기 643년에 파괴되었다.
선지자 모하메드(Prophet Mohammed, 서기 570~632년)는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슬람 세계를 만들었다. 이슬람은 유대교 및 기독교와 함께 공통유산을 공유하는 종교이다. 무하마드가 죽고 난 후 100년 동안 아랍제국은 인도에서 스페인까지 계속해서 확장하였다.
아랍어는 이슬람 세계의 학자들이 사용하던 언어였으나 당시 과학의 주역들은 아랍인들이 아니었다. 아랍에서 번성한 후기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류였던 연금술사는 불로장생의 약(Elixir of Life)과 비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들의 노력은 화학의 기초를 세웠다.
알렉산드리아에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의 지식은 아랍인들 사이에서 퍼져나갔으며, 바그다드(Baghdad)는 다시 한 번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서기 6~9세기까지 계몽된 통치자들의 지배하에 괄목할 만한 지식의 집적(Collation)이 이루어졌다. 자비르 이븐 하이얀(Jabir ibn Hayyan, 서기 776년 출생)은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화학자(Chemist)로 여겨졌으며 그의 저서는 10세기에 출판되었다.
시리아 다마스쿠스(Damascus) 출신의 네스토리우스의 기독교인인 요한 메수(Johann Mesue the Senior, 서기 777~857년)는 하룬 알 라치드(Harun-al Raschid)의 궁전 주치의(Court Physician)이자 갈렌(Galen)의 권위자(An Authority)였다.
그가 바그다드의 의과대학을 설립했고, 순한 설사약(Purgatives)인 센나(Senna)와 타마린드(Tamarind)를 약으로 도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처방집인 셀렉타 아르티스 메디시나에(Selecta Artis Medicinae)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아포테카리샵(아랍형 약국, 850년) 서기 750년에 이르러 약 판매자의 상점들은 페르시아에 모습을 나타냈지만, 아랍의 특징적인 아포테카리 샵(Apothecary Shops)은 그 후인 850년경에 이르러서야 나타났다. 이러한 샵들을 통해 여러 가지 특징들을 알 수 있는데, 첫 번째로 약국이 의학에서 분리되어 있었고, 두 번째로 상점들은 높은 윤리강령을 따르던 지식인들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세 번째로는 아포테카리를 위한 교육이 실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샵들은 전통적인 약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약, 인도약 그리고 화학품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약제들을 제조하였다.
북쪽으로 다른 국가들은, 예전 로마의 영향을 받아 자신들만의 토착 의약품을 사용했다. 토착 의약품 목록은 의학적 사용을 위해 존재하였고 이 목록에는 의학적 사용에 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서기 794~795년에 프랑스 남부에서는 루도비쿠스 경건왕(Louis the Pious)에 의해 허브 및 약용 식물을 아키타니아(Aquitania) 전역에 심으라는 칙령이 공표되었다. 이는 서유럽에서 이러한 식물들을 재배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유럽 약학에 영향을 끼친 여러 허브들이 이 시기부터 전해졌다.
라제스(850~925년)
알 라지(Al Razi) 또는 라제스(Rhazes, 서기 865~925년)로 불리는 '페르시아의 갈렌'은 바그다드 대형병원의 의사 담당자(책임자)였으며 이 병원의 재건을 감독하였다. 라제스는 다작하는 작가, 교사, 화학자 및 계획가였다. 그는 당시의 의학지식을 다룬 포괄적인 의학전집을 출판한 바 있다.
이 책은 그리스, 시리아, 아랍, 페르시아 그리고 인도에서 유래된 지식에서 파생된 사전(Encyclopaedia)이었다. 그는 환약(Pills)의 사용을 장려했고, 브랜디 및 아라크주(코코넛 증류주)를 사용한 제조(Arrack-type)법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좋은 장비를 갖춘 실험실(연구소)에서의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화학을 개척하였다.
아비센나(Avicenna, 980~1037년)
유럽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아랍인은 아비센나(Avicenna) 또는 이브 시나(Ibn Sina, 서기 980~1037년)였다. 그는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인 부하라 근처에 있는 아파나(Afaana)에서 태어났다. 그는 7살에 코란(Koran)을 모두 암송할 수 있었으며 10살이 되었을 때 논리와 그리스 철학, 기하학 그리고 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15살 밖에 되지 않았을 때 의학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아비센나의 아버지는 왕족들을 위한 세금 징수관이었는데, 도서관에 불이 나서 파괴되기 전까지 아비센나는 왕족의 대규모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그는 이후에 방랑생황을 하였으며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되었다. 그는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가르침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과 연결 지으려는 시도를 했던 알콰눔(Al-Qanum, 서구에서는 '의학정전(Canon of Medicine으로 알려진)')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후 아비센나는 대형 도서관을 갖추고 학문의 중심지였던 자이즈(Jaij)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하마단으로 옮겼다.
그는 그곳에서 계속해서 글을 집필하였으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한 약종상의 집으로 피신해 숨어 다녀야 했다. 그 후 그는 이스파한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왕족 개인 주치의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였다. 그는 왕의 군대와 함께 원정에 동행을 하였는데 이 시기가 바로 그가 아랍어를 배운 시기이다. 하지만 그의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그는 군대가 하마단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하게 된다.
아비센나는 '아랍의 히포크라테스'로 불려왔다. 의학정전은 12세기에 크레모나의 제라르드(Gerarde of Cremona)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었으며 수 세기동안 의학의 근간이 되어왔다. 그가 집필한 또 다른 책이 있는데 이 책은 당시의 약제를 다룬 처방집이다. 이 처방집에는 760종의 의약품과 이 약들의 해독제(Antidotes)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처방집은 환약에 은박을 입히는 방법(Silvering)을 추천하고 있다. 그는 일생동안 약 200여권의 책을 집필하였다. 그는 갈렌과 함께 왕립영국약사회의 문장을 수놓은 겉옷을 장식하고 있다.
학문의 서방으로의 이동(700~1100년)
심화되는 종교탄압은 학자들을 페르시아로부터 서방으로 계속해서 이동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미 8세기부터 이탈리아에서 번창하던 학문의 중심지였던 살레르노와 파두아에서 10세기에 이르러 스페인 무슬림 사람들의 코르도바 및 톨레도와 같은 도시들로 확장되었고, 11세기에는 프랑스의 몽펠리에와 파리와 같은 도시로 확장, 이후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볼로냐 같은 도시들이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학자들 간의 불화로 많은 학자들은 더 서쪽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 결과 영국에도 이들 학자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결국 옥스퍼드 대학(1190년)과 캠브리지 대학(1290년)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대형 도서관들이 세워졌으며 학자들은 번역을 하고 새로운 지식에 논평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들을 여러 수도원에 보관되어 왔던 그리스 및 라틴계 두루마리에 추가하였다.
그래서 11세기말에 각 전문 직종들이 분화 발전할 기초가 이루어졌다. 약용으로 쓰던 자연물질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공통의 언어 및 문자를 통해 이러한 지식을 보존하고 이후 세대에게 전달하는 수단을 갖게 되었으며, 원료를 처리하는 기본적인 기술들이 개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직능의 전문화(Specialisation)를 위한 첫 단추가 끼워진 셈이었다.
암흑시대 당시 과학에 대한 교회의 탄압이 있었지만, 유럽 전역의 수도원의학에 의해 의학 지식들을 보존하고 있었으며 이는 영국까지 퍼지게 되었다. 약학이 단독적인 직능으로 분리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였으며, 약학은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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