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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

화장품, 약국의 친구...세계적 브랜드가 된 작은 약국

  • 정혜진
  • 2015-04-13 12:25:00
  • 참존·시세이도·키엘·폰즈·피에르 파브르...브랜드 스토리

피부 질환 치료 연고를 만들다 화장품을 개발한 약사, 최초의 신식 약국에서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한 약사, 제약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화장품으로 더 유명한 제품을 만든 약사.

약사들이 만든 화장품 브랜드의 공통점은 모두 '약학'의 관점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이중에는 색조화장 분야까지 진출한 브랜드도 있거니와 여전히 피부 건강을 강조하며 기초화장품 영역에 머무르는 브랜드도 있다. 화장품 시장의 거목이 된 5인의 약사가 만든 화장품 브랜드 스토리를 모았다.

김광석 회장
◆=참존 화장품, 김광석 약사 (한국, 1984년 설립, 한국 기능성 화장품의 창시자)

청개구리를 모티브로 해 1980년대부터 부유한 주부의 상징으로 군림한 참존. 설립자 김광석 회장(사진)은 성균관대 약학대를 졸업한 약사였다.

그는 1966년 서울 충무로 스카라극장 앞에서 피부 치료제를 직접 조제·판매하는 '피보약국'을 20년간 운영했다. 난치성 피부질환을 고칠 수 있는 피부 치료제를 연구·개발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자신이 제조한 약을 무심코 다른 약국에서 팔게 한 것이 보건법 위반으로 적발되면서 전환기를 맞는다.

이 사건으로 큰 빚을 지고 어려움을 겪던 중, 빚을 갚기 위해 차린 화장품 회사가 '참존'이다. 1984년 7월 경기도 시흥 공장을 신설하고 11월 '참존' 브랜드로 첫 상품을 출시한다. 처음에는 '부유한 대한민국'이란 뜻의 '부한(富韓)화장품'으로 출발했으나, 사명을 순 우리말 '참존'으로 변경하고 최고 품질의 화장품을 개발한다.

약사 출신이었기에 그는 '나만 만들 수 있는, 피부에 좋은' 화장품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청개구리 캐릭터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으면 만들지 않겠다'는 자부심에 착안한 것. 색조화장품은 피부에 부담을 준다고 생각해 설립 이후 단 한번도 색조화장품을 만들지 않았다.

현재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20여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자료 출처: 김광석 스포츠조선 인터뷰 기사, 참존 홈페이지)

후쿠하라 아리노부 약사
◆=시세이도, 후쿠하라 아리노부 약사 (일본, 1872년 설립, 일본 최고(故) 화장품 브랜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는 일본 최초의 서양식 약국에서 출발했다.

창립자 후쿠하라 아리노부(사진)는 한의사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약에 관심을 가졌다. 자라서 도쿄대학 의학을 전공하고 해군병원에서 약사로 근무한다.

이후 자신의 동네 시장에 나와있는 질 떨어지는 약들을 보며 일본에 근대식 의약품을 들여와야 겠다고 다짐하고 의료와 조제를 분리하고자 23세에 1872년 도쿄 긴자에 최초의 서양식 조제 약국 '시세이도'를 설립했다.

1877년 일본 전역에 콜레라가 유행하면서 시세이도 약국 매출이 폭발적으로 오르고, 후쿠하라는 1897년 도쿄 긴자 뒷골목에 있던 매장을 사거리로 크게 이전하며 화장수, 헤어오일 등 화장품을 제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시세이도 화장품의 시초이며, 이때 개발한 화장수 '오이데루민'과 헤어오일 '야나기이토코'는 140여년 지난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다.

'시세이도'라는 말은 중국 고서 '주역'에 등장하는 '새로운 생명을 키우고 새로운 가치를 낳는 위대한 대지의 미덕을 칭송하라'라는 구절 중 '자생'(資生)에서 따왔다. '자생'의 일본식 발음은 '시세이'로, 약국 이름 '자생당'이 '시세이도'이다.

이후 1915년 후쿠하라 아리노부의 셋째 아들 후쿠하라 신조가 시세이도 사업을 물려받는다.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근대 화장품 문화를 받아들여 다양한 화장품 라인을 선보이며 지금의 시세이도를 만든다. (자료 출처: 시세이도 홈페이지)

1.피에르 파브르 연구 자료 2.참존 수성세안제(1988) 3.키엘 약국 4.시세이도약국 화장품 진열매장 5.폰즈의 제품 광고

존 키엘 약사
◆=키엘, 존 키엘 약사 (미국, 1894년 설립, 약병 디자인·약사가운 등 '약국 콘셉트' 유지)

1851년 키엘 약국의 모태인 'Brunswick Apotheke'가 현재 키엘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 13th St와 3rd Ave. 코너에 오픈한다. 1894년 콜롬비아 약대 출신 존 키엘(John Kiehl) 약사가 'Brunswick Apotheke'를 인수하면서 키엘 약국이 탄생했다.

1921년 존 키엘 수제자 어빙 모스가 키엘 약국을 인수했고, 이때부터 키엘 브랜드의 화장품 제품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어빙 모스의 아들 아론 모스는 약사이자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키엘 약국을 물려받아 남성전용 스킨케어를 소개한다. 그는 미국 최초 불소치료법을 발견, 화학성분 구조 개발에 힘써 새로운 화장품 제조술을 선보이기도 한다.

키엘 창립 약사들과 화학자들은 키엘만의 개인 맞춤형 처방과 서비스를 시행했는데, 지금도 약병 모양의 화장품 패키지와 약사 가운을 입은 점원 등의 아이템을 고수하고 있다.

'치유'되는 화장품으로 출발해 조금씩 미용, 수분으로 제품 라인을 확장해 왔으며, 지금도 좋은 성분을 좋은 색감보다 우선시 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자료 출처: 키엘 홈페이지)

테론 T.폰드 약사
◆=폰즈, 테론 T. 폰드 약사 (미국, 1874년 설립, 안정된 크림 최초 개발)

독일 출신 약사였던 테론 T. 폰드(Theron T. Pond)가 1846년 내추럴 식물인 '위치 하젤'(Witch Hazel)에서 성분을 처음으로 추출해 폰즈 제품을 만든 것이 효시다.

이후 1874년 '폰즈 엑스트렉트'란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고, 세계 최초 화장품 광고를 선보여 그 명성이 미국 전역에 퍼지게 됐다. 1878년 영국 런던에 첫 해외 지사를 설립하면서 유럽 시장 개척에도 나선다. 1882년 크림, 립스틱, 파우더 등 화장품 전 라인을 연구, 개발, 판매해 세계적인 명성의 화장품 회사로 성장한다.

폰즈가 유명세를 탄 것은 일명 '콜드 크림'과 '바니싱 크림'인데, 1907년 두 가지 제품을 선보이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다. 크림은 클레오파트라 시절부터 존재했으나 쉽게 부패하고 분리되는 이유로 얼음에 보관했는데, 때문에 크림은 특수 부유층에게만 판매됐다. 폰즈는 세계 최초로 안정화된 크림을 만들어 넓은 층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 발명으로 모든 크림 제형이 폰즈의 처방을 근간으로 하게 됐으며 영양 및 보습 크림의 대명사가 됐다.

1950년대에는 최초의 TV CF를 시행했는데, 마침 1960년대 여성들이 직장 생활을 활발히 하기 시작하던 시대적 환경과 맞물려 폰즈는 여성의 사회적 캐리어 확장과 함께 발전했다. 한국에는 1983년 진출했다.(출처: 폰즈 홈페이지)

피에르 파브르 회장
◆=피에르 파브르 그룹, 피에르 파브르 약사 (프랑스, 1962년 설립, 아벤느 등 7가지 화장품 브랜드 보유)

세계적인 화장품 그룹 '피에르 파브르'는 설립자이자 약사인 피에르 파브르의 이름에서 따온 브랜드다. 그는 30대 중반 프랑스 툴루즈 근방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약국을 인수해 약사로 일하며 다리 붓기를 빼주는 약을 개발했고 이 약이 입소문이 나며 크게 성공한다.

1962년 자기 이름을 딴 피에르 파브르(Pierre Fabre) 회사를 설립한 이래 의약품을 만들었는데, 1965년 클로랑(Klorane) 브랜드 인수를 계기로 더모 코스메틱 사업을 시작한다. 이후 1969년엔 듀크레이(Ducray), 1978년엔 탈모방지 샴푸로 유명한 르네 휘테르(Rene Furtherer), 1990년엔 아벤느(Avene)를 차례로 인수하며 현재 7개의 더마 코스매틱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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