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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화상 의약품 투약기라고? 참 부질없는 짓

  • 조광연
  • 2016-05-28 06:14:56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는 몽롱한 새벽, 섬광처럼 아이디어가 번뜩일 때면 이를 놓치지 않겠다고 "잊지말자, 꼭 기억하자" 다짐하며 흐믓한 기분으로 다시 잠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이런 상황을 대비해 머리 맡에 두었던 공책을 더듬거려 끄적이기도 한다. 균형감각이 살아난 현실로 돌아온 아침, 희망에 부풀어 메모를 보며 상상력을 덧붙이고 따져보다가 거의 대부분 별게 아니어서 실망했던 기억들, 누구나 갖고 있을 지 모른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라고나 해야할까? 정부가 도입해 보겠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는 '화상 투약기'를 보면, 그 어느 날 새벽이 떠오른다.

지난 3월 국무조정실 신산업투자위원회에 섬광처럼 떠오른 '화상투약기' 아이디어는 의약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떠안아 오는 8월 이를 실현할 근거인 약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제반 절차를 거쳐 10월께 국회에 제출할 계획으로 진전됐다. 투자위원회가 던진 '경제적 아이디어'에 복지부가 뼈와 살을 붙이는 작업을 맡게 된 셈이다. 모르긴 몰라도 복지부, 정확히 말해 담당 공무원의 머리는 무겁고, 가슴은 상충되는 논리들의 좌충우돌을 교통정리 하느라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관점으로 신산업투자위원회가 거론한 화상투약기에서 복지부는 국민 안전에 관한 불안한 그림자를 볼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존재들이 신념을 등지면서 상반되는 논리를 개발하는 일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다.

화상투약기는 신산업일까? 경제적 파급 효과, 한번 따져보자. 화상투약기 한대와 설치비용은 대략 1800만원이다. 정부가 약사관리 아래 둔다 하니 약국의 절반인 1만개 약국이 기기를 구매한다 가정하면 1800억원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다 참여할 때 3600억원 시장까지 커질 수 있다. 지속 성장, 가능한가. 불행히도 여기까지다. 화상투약기라는 말이 설명해 주듯 이 시스템이 돌아가려면 약사들이 상시 근무하는 콜센터는 필수 요소다. 약국이 문 닫는 시간은 야간이니, 밤샘 근무할 약사가 필요한데, 이들의 적정 한달 급여는 얼마나 될까. 근무약사 임금이 대략 500만원인데다 야간근무를 감안하면 더 들 것이다. 한달동안 화상투약기가 얼마만큼 매출을 올려야 근무약사 임금을 주고도 남을까. 기계만 팔고 끝날 공산이 크다.

정부가 구상하는 사업이 시장을 형성하며 돌아가려면 동전 넣고 커피를 빼 마시는 유형의 단순 자판기처럼 전국 방방곳곳에 화상투약기를 설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투약기 이용 시간도 야간, 공휴일 등에 한정해서는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할 것이다. 2만개 넘는 약국이 도처에 산재한 상황에서 누가 굳이 밤 늦은 시각 밖에 나가 화면을 보면서까지 의약품을 구입하겠는가. 진통해열제 같은 구급약은 이미 안전상비약이라는 명목으로 약국 만큼 많은 24시간 편의점서 판매하고 있다. 이건 어떤가. 비오는 날, 바람불고 꽁꽁 언날 화상투약기 앞에 서있는 사람을 상상해 보시라. 이런 날씨에 자판기는 의약품이 변질되지 않도록 완벽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경제적 파급효과는 불투명한데 비해 안전한 의약품 사용 등 화상투약기가 몰고 올 부정적 전망들은 너무도 빠르고 명확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정부는 왜 이토록 의약품 자판기에 집착할까. 약사와 환자가 만나는 '대면의 판매의 원칙'을 무너뜨려가면서 '약 권하는 사회'를 정부가 앞장서 조성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화상 만남도 대면이라고 우기고 싶겠지만, 안전하게 의약품을 사용하는 현 시스템엔 문제가 없다. 해서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가습기 살균제 파동을 경험한 정부의 안전의식이 여전히 안일해 보이는 이유다. 해없는 단순 도우미로 여겼던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의약품에서는 왜 보지 못할까. 의약품 사용설명서를 보라. 효능이 한 두줄, 주의사항이 10줄이 넘는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와 관련해 사과할 줄 모르른 옥시를 적극 압박한 것도 약국, 약사들이다. 사회적 편익이라고는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는 화상투약기는 시작도 않는 게 진정으로 남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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