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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비싼 약 덜 쓰면 다냐, 환자 생각해야지"

  • 이혜경
  • 2016-08-30 06:15:00
  • SSRI 항우울제 60일 처방제한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지난 14년간 심한 우울증 환자들이 자살로 생명을 잃고 있다. 매일 40명이 사망하고 있다. 이 중 SSRI 계열 항우울제를 60일간 복용하다 중단한 환자들 몇 명일지 생각해봤나."

신경과 전문학회가 '정신과 이외의 타과에서 기타 질환으로 인한 우울증에 투여시 60일 범위내에서 SSRI 계열 약물 처방을 인정한다'는 보건복지부 고시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는 2002년 고시 제정부터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가 대립을 겪었던 문제로, 신경과가 오랜만에 국회 정책토론회를 통해 공론화를 시켰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오는 9월 경 전문학회 및 의사협회, 복지부가 참여하는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60일 이상 처방시 삭감 당하면, 월급에서 20% 떼어가

홍승봉 대한뇌전증학회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홍승봉(삼성서울병원) 대한뇌전증학회장은 이번 토론회에서 열변을 토했다. SSRI 항우울제 처방제한은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의 '밥그릇싸움'이 아니라 환자를 위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홍 회장은 "뇌질환 연구만 32년을 한 사람으로서, 답답해 죽겠다"며 "무조건 비싼 약을 적게 쓰는 일에만 신경을 썼을 뿐 환자에게 어떤 피해를 입힐지 전혀 생각없이 만든 고시"라고 복지부와 심평원을 비난했다.

그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다 중단한 환자들 가운데 몇 명이 자살했는지 생각해 봤느냐"며 "전원을 원하지 않는 환자들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하다가 삭감당하면, 월급에서 20% 떼어가는 대학병원도 있는 상황"이라고 현 실태를 언급했다.

복지부 고시가 1988년 SSRI 고가 항우울제 인정 기준 회의 이후 이뤄진 것으로, 당시 1500원이던 항우울제 가격이 현재 400원으로 25% 떨어진 만큼 급여기준의 직접적인 근거가 없어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경과에서 진료를 받는 뇌전증,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 환자들의 경우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최소 15%에서 최대 60%인데, 이 중 75%는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회장은 "많은 중증환자가 정신과를 가지 않고 포기하거나, 지금은 불법이지만 과거 본인부담으로 비싼약을 탔다"며 "자살사고나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이 아니라면 신경계 질환을 보는 의사에 의해 우울증도 진단,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해운대 교통사고 이후, 홍 회장은 "내 환자 중에서도 해운대 사건 이후 뇌전증에 대한 인식이 안좋아지면서, 몇 명이 죽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왔다"며 "개인 핸드폰번호를 주고, 상담을 해주면서 자살을 막아왔다"고 뇌전증 환자 가운데 우울증이 심해진 환자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홍 회장은 한미정신과의사협회(UCLA) 전 회장이었던 유태평 교수 편지를 공개했다.

홍 회장은 "미국정신과학회 최고평생회원이자, UCLA 정신과 교수로 유명한 유태평 교수는 한국의 신경과 전문의들에게 SSRI 60일 처방제한을 해제하길 요청했다"며 "정신과 교수 또한 SSRI 타과 처방 제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신경과 의사들이 3개월 치 항우울제 처방?

이번 국회 정책토론회는 심상정 의원과 박인숙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홍 회장의 주제발표를 들은 석정호(강남세브란스병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보험이사는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석 이사는 "SSRI 항우울제 처방제한으로 우울증, 자살율이 높다고 보느냐"며 "SSRI 급여 제한을 풀면 자살 환자가 줄 것이라는 논리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석 이사는 "SSRI 계열의 약물을 쓰면 환자들이 좋아진다는 것에 대해 절대적으로 동의하지만 인지운동, 항우울제 치료, 전문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신경과는 뇌를 다루고, 정신과는 정서의 변화 등 무의식의 영역까지 다룬다는걸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가벼운 우울증까지는 괜찮겠지만, 심각한 우울증을 정신과로 전원하지 않는 신경과 의사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석 이사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에게 3개월 치 항우울제를 처방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홍 회장은 "이 장소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주지 않는다. 몇 명이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사들을 욕먹이지 말라"고 받아쳤다.

석 이사는 "우울증은 약물치료로 좋아지는 부분이 있지만, 약만 준다고 해서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다"라며 "1년 이상 우울증 지속되는데 약만 주는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이 정신과를 기피하면서 60일 이후 항우울제 복용을 중단한다는 홍 회장의 지적에, 그는 "정신과는 미친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올 수 있는 곳이고, 상담과 약물치료가 이뤄지는 곳이라는걸 의사들이 먼저 알리고 전원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심세훈(순천향대천안병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교수는 "많은 환자들이 잘못된 편견 속에서 정신과 치료의 기회를 뺏기고 있다"며 "우울한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파킨슨, 뇌전증 등 기질성 질환이 발견되면 신경과에서 진료를 하면 되고, 아니면 정신과에서 가족력 조사부터 임상특성, 알콜 사용 등 디테일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항우울제 제한을 철폐 한다면 자살의 위험성이 올라갈 것이라 본다"며 "의사가 왜 처방권을 제한 받느냐고 한다면 같은 의사로서 할 말은 없지만, 분명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은 협진이 답?

홍콩에서 온 YK Wing 정신과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를 지켜 본 홍콩과 일본의 정신과 교수들은 "영역 간 갈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chinese university of Hongkong의 YK Wing 정신과 교수는 "영역 간 갈등이 있는 문제가 있지만, 전 세계적인 데이터를 보면 우울증에 대한 60일 처방 제한은 재발을 늘릴 것"이라며 "우울증은 재발하면 더욱 치료가 어려워 지는 질환"이라고 지적했다.

YK Wing 교수는 "60일 처방 제한은 근거를 기반으로 한 약물 처방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동반 질환이 강한 환자는 장기간 처방이 필요한 만큼, 신경과에서 진료를 하더라도 정신과가 트레이닝 할 수 있는 단계별 진료모델을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서로 장벽을 세우기 보다 의사협회, 학회, 정부가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다각도로 접근해야 한다"며 "제한 철폐 주장보다 단계별로 접근할 수 있는 협진 체계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Aichi medical university의 kousuke kanemoto 정신과 과장은 "신경과, 정신과 입장이 모두 이해가 간다"며 "항우울제 처방보다 뇌전증 약 중에서도 정신과 측면에서 좋지 않은 영향의 약이 있다"며 "뇌전증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들이 진료한 이후에도 낫지 않는 경우 정신과와 협진하는 게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정신과에 오면 현실적으로 정신과가 볼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할 것"이라며 "급여를 제한하려면 SSRI 항우울제 보다 TCA 독성이 높기 때문에 더 제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신경과와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박건우(고대안암병원) 대한치매학회 교수 또한 협진 이나 협조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교수는 "급여 제한보다 코워크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협조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특권이 있고, 누군가에게 특권이 없는 듯한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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