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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기자의 눈] 제약업계 견고한 유리천장의 아쉬움

  • 차지현
  • 2025-04-09 06:18:32

[데일리팜=차지현 기자] 3%. 지난해 매출 상위 제약 업체 50곳 최고경영자(CEO) 67인 중 여성 CEO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국내 제약 업계에서 여성이 수장 자리에 오르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단순히 여성 CEO 수가 적은 게 문제가 아니다. 약사회에 회원 신고를 한 약사 수를 기준으로 전체 약사의 60%가 여성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낮은 여성 CEO 비중은 여성 인재가 능력에 걸맞은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구조적 불균형을 보여준다. 고학력·전문직 여성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에 오르는 비율은 턱없이 낮다는 얘기다.

사실 그동안 여성 CEO의 낮은 경영 참여율은 그다지 큰 이슈로 부각되지 않았다. 국내 제약 산업은 과거 내수 중심의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해 왔다. 외부로부터 감시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았던 산업 구조 속에서 여성 CEO의 부재가 큰 문제라는 인식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국내 제약 기업들이 내수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삼으면서다. 글로벌 시장을 상대하기 위해선 신약개발 역량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준 충족 등 비재무 경쟁력이 평가 지표로 작용한다. ESG 중 지배구조(G) 항목에서는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 특히 성별 다양성이 주요 평가 요소다.

ESG 기준을 충족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세계적인 연기금과 기관투자자가 이를 핵심 투자 지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ESG 요소를 갖추지 못한 기업에 대한 투자가 제한되거나 배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블랙록, 노르웨이 국부펀드, 칼퍼스 같은 세계적 자산운용사는 ESG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한다.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KIC) 등 국내 기관도 ESG를 반영한 투자 전략을 확대하는 추세다.

ESG 역량 부족으로 인해 파트너사와 협력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고위험·고비용 제약 산업은 공동개발, 기술이전 등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ESG는 장기적 협업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여성 CEO의 부재가 단순한 성비 문제를 넘어 국제 경쟁력과 직결되는 구조적 리스크로 부상했다.

국내 제약 업계가 성별 균형 잡힌 리더십 구성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제약 산업은 고난도 과학적 의사결정과 기술개발을 동반한다. 다양한 배경과 시각을 지닌 리더가 경영에 참여할수록 불확실성을 줄이고, 조직 내 창의성과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 현실적인 제약은 존재한다. 제약 산업은 약학, 의학, 생명과학 등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다. 이로 인해 경영진 후보 풀 자체가 좁은 데다 내부 승진이나 인사 인선에서 검증된 경력 중심으로 접근하는 보수적 방식이 일반적이다.

많은 제약사가 여전히 가족경영, 오너십 기반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여성 CEO가 적은 배경이다. 오너 일가 중 남성 후계자가 주로 주요 경영 직책에 오르는 구조다. 동일 업계 내에서 성공한 여성 CEO가 적다 보니, 여성 인사의 도전이나 기업 내부 변화 동력이 부족하기도 하다. 다만 변화가 힘들다는 이유로 변화를 거부하는 건 더 큰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근 여성 전문경영인을 CEO로 발탁했다. 삼성그룹 내 최초의 여성 전문경영인 CEO가 바이오 계열사에서 탄생했다. SK바이오팜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여성 이사회 의장을 추대했다. 제약산업의 보수적인 특성을 고려하면 이 같은 변화는 상징성이 크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정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리천장을 깨는 일은 선택이 아닌 미래 생존 전략이다. 이는 여성만을 위한 게 아니라 제약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변화이기도 하다. 제약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 성별에 따른 기회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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