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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탈락한 후보물질이 넓은 특허의 경계를 만든다

  • 데일리팜
  • 2026-09-03 06:00:38
  • 요약
  • 특허법인 린 석종헌 파트너 변리사
특허법인 린 석종헌 파트너 변리사

좋은 후보물질을 찾는 것과 넓은 특허범위를 설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권리범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데이터를 확보하고, 어떻게 배치해야 할까.

연구결과를 학회나 투자자료로 발표할 때는 가장 우수한 후보와 긍정적인 결과가 중심이 된다. 특허 명세서 역시 발명의 효과를 보여주는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출원 전에 권리범위를 검토할 때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도 함께 읽어야 한다. 특정 구조를 변경했을 때 활성이 사라졌다면 그 구조는 단순한 선택사항이 아니라 효과에 관여하는 핵심 요소일 수 있다. 치환 위치만 바꿨는데 선택성이 크게 낮아졌다면 위치적 특성이 후보군을 정의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탈락한 후보가 경계를 보여준다

이때 유용한 접근 가운데 하나가 매치드 몰레큘러 페어(matched molecular pair) 분석이다. 나머지 구조는 유지하면서 특정 부위가 달라진 화합물 쌍을 비교해 해당 변형과 활성 변화의 관계를 살펴보는 방식이다. 공개 화합물 데이터에 이 방법을 적용한 연구에서는 일반적인 구조 유사도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액티비티 클리프도 확인됐다.

권리범위를 설명하기 위한 비교군도 이러한 관점에서 달라질 수 있다. 리드 후보에서 하나의 구조 요소만 바꾼 물질, 치환 위치나 입체구조가 다른 물질, 청구하려는 구조 범위의 경계에 있는 물질과 가장 가까운 선행물질을 함께 비교하는 방식이다. 그래야 리드 후보의 우수성이 어떤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됐고, 그 효과가 어느 범위까지 반복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반대로 구조가 상당히 달라졌는데도 효과가 유지된다면 당초 예상보다 넓은 공통 원리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서로 다른 후보가 공유하는 구조적·기능적 특징을 다시 정의하고, 추가 실험을 통해 그 범위의 대표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실패 결과를 모두 명세서에 공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데이터를 출원서에 포함할지는 영업비밀, 후속 연구와 추가 출원 계획까지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다만 내부 분석에서 긍정적인 결과만 남겨두면 현재 데이터가 실제로 설명하는 범위를 과대평가하거나, 반대로 권리화할 수 있었던 공통 원리를 놓칠 수 있다.

연구팀에서 탈락한 후보라도 IP-R&D 관점에서는 구조와 효과 사이의 경계를 보여주는 데이터가 된다. 성공한 후보는 개발할 물질을 알려주지만,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는 지점은 특허로 설명할 수 있는 후보군의 범위를 보여준다.

실시예는 숫자보다 배치다

넓은 권리를 확보하려면 가능한 많은 후보물질을 실시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비슷한 구조와 긍정적인 결과만 반복하면 실시예 수는 늘어도 후보군의 기술적 경계는 여전히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치환기를 공유하는 유사체 여러 개가 모두 활성을 나타냈더라도, 청구하려는 범위가 위치·크기·전자적 특성과 입체구조가 다른 치환체까지 포함한다면 기존 데이터가 그 범위를 고르게 대표하는지는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 같은 골격을 공유하더라도 치환기 변화에 따라 활성뿐 아니라 선택성·용해도·대사 안정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실시예 수가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구조적 변형의 서로 다른 지점에 배치돼 있다면 후보군의 공통성과 경계를 설명하는 데 더 유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몇 개의 물질을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기술적 질문에 답하도록 물질과 비교군을 배치했는가다.

결국 데이터의 특허상 가치는 절대적인 개수보다 배치에서 나온다. 최고 성능 후보 주변에 유사한 성공 사례를 추가하는 것보다, 청구하려는 범위의 서로 다른 지점과 효과가 달라지는 경계를 보여주는 비교실험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청구항보다 데이터 지도가 먼저다

출원 단계에서는 확보하고 싶은 사업영역을 기준으로 청구범위를 넓게 설계하려는 유인이 생긴다. 경쟁사가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치환기와 유사체를 최대한 포함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이 희망하는 사업범위와 현재 데이터가 설명하는 기술범위는 구분해야 한다. 청구항의 문언을 넓히는 것만으로 데이터가 보여주지 못한 구조와 효과의 관계까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확인된 후보 하나만 지나치게 좁게 보호하는 것도 최선은 아니다. 현재 데이터로 공통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범위, 추가 비교실험을 통해 확장 가능성을 검토할 범위, 후속 연구와 별도 출원으로 남겨야 할 범위를 나눠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출원서를 작성하기 전에 데이터의 지도를 먼저 그려야 한다. 어느 구조군에 실시예가 집중돼 있는지, 어떤 변형까지 효과가 유지되는지, 어디에서 액티비티 클리프가 나타나는지, 가장 가까운 선행물질과의 비교가 비어 있는지를 한 화면에 놓고 보는 것이다.

이 지도는 현재 확보할 수 있는 권리만 보여주지 않는다. 다음 합성에서 어떤 구조를 우선 확인해야 하는지, 어떤 비교군이 추가되면 후속 후보군의 범위를 설명할 수 있는지, 어느 영역은 별도의 발명으로 분리해 검토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특허를 위한 추가 실험은 실시예 수를 무작정 늘리는 작업이 아니다. 현재 데이터가 대표하지 못하는 영역을 찾고, 효과가 유지되는 범위와 무너지는 경계를 효율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판단이 연구 후반에 이뤄지면 필요한 비교물질을 다시 합성해야 할 수 있다. 초기 후보의 시료나 시험조건이 남아 있지 않거나 개발 일정상 비교실험을 반복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긴다. 반면 리드 최적화 단계에서 권리범위에 관한 질문을 함께 설정하면, 기존 평가계획에 필요한 비교군을 배치해 후보 선정과 권리 설계에 필요한 데이터를 함께 축적할 수 있다.

출원 후 확보한 데이터가 기존 설명을 보강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 취급은 국가와 구체적인 법적 쟁점에 따라 달라진다. 최초 명세서에 없던 기술적 내용과 새로운 후보군을 후속 데이터만으로 언제나 최초 출원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논문·학회·IR 공개와 후속출원 일정 역시 데이터 확보 계획과 함께 검토해야 한다.

리드 후보를 선정하는 데이터는 어느 물질을 개발할지 알려준다. 권리범위를 설계하는 데이터는 그 물질이 속한 후보군을 어디까지 하나의 기술적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두 목적을 구분한다고 해서 특허만을 위한 실험을 무한정 늘릴 필요는 없다. 확보하려는 범위를 먼저 정하고 구조적 대표성, 효과의 연속성, 선행기술과의 비교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 비어 있는지를 판단하면 된다. 유사한 성공 사례를 반복하는 대신 범위의 공통 원리와 경계를 확인할 수 있는 비교군을 선택하는 것이다.

좋은 후보물질은 가장 높은 성능값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넓은 권리는 최고점 하나가 아니라, 구조가 달라져도 효과가 유지되는 구간과 그 효과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경계를 데이터가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지에서 결정된다.

◆글: 석종헌 변리사(특허법인 린)

바이오·화학 분야의 특허 포트폴리오 설계와 IP-R&D를 자문한다. 신약 후보물질과 바이오 플랫폼의 연구데이터, 경쟁사 특허와 사업 확장 경로를 연결하는 IP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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