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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양극성 장애 앵무새 처방전까지 조제를…"

  • 데일리팜
  • 2011-11-28 14:25:30
  • [46] 외로운 노인들 애완동물 처방약 비싸도 산다

한국의 추석과 같은 미국의 명절은 쌩스기빙 데이(Thanksgiving Day)다. 쌩스기빙은 매년 11월 넷째 주의 목요일로 그 다음 날은 금요일은 공휴일은 아니지만 학교와 대부분의 회사가 쉬기 때문에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장장 4일간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쌩스기빙에는 멀리 떨어져 살았던 가족, 친척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한해동안 감사했던 일들을 나눈다.

쌩스기빙 다음 날인 블랙 프라이데이 (Black Friday)는 일종의 쇼핑 데이다. 각종 상점과 백화점이 파격적인 할인행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말도 안되는 미끼상품을 내걸어 새벽부터 상점이 문을 열기 전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대규모의 인파가 쇼핑몰에 모이기 때문에 그 날은 쇼핑몰에 들어가기도 어렵고 나오기도 어렵다.

블랙 프라이데이의 어원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쌩스기빙 다음 날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과 차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됐다가 이후에는 파격적인 할인행사로 인해 매출이 증가해 적자였던 회사라도 흑자로 바뀌는 날이라는 의미로 '블랙(black)'을 프라이데이 앞에 붙인 것이라고 한다.

체인약국은 블랙 프라이데이에 당연히 문을 연다. 각종 잡화 및 장난감, 건강용품 파격세일행사를 하기 때문에 체인약국이 핵심 비즈니스인 약국도 열려있다. 남들은 집에서 쉬거나 쇼핑을 가는데 체인약국의 약사인 나는 블랙 프라이데이에 일하러 나서야한다. 설상가상으로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보통 때보다 훨씬 일찍 집에서 출발해야지 아니면 쇼핑하러 나온 차들로 도로가 넘쳐 제시간에 약국에 도착하지도 못한다.

내가 일하는 약국은 은퇴한 노인들이 사는 지역이라 쌩스기빙이나 크리스마스면 손주들에게 줄 장난감과 포장지, 리본을 고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아 장난감이 블랙 프라이데이 약국 세일의 빅 아이템 중 하나다. 약국의 회계지표를 '블랙'으로 만드는 아이템 중 하나가 장난감인 것이다.

쌩스기빙 전날 어떤 할머니가 약국에 약을 받으러 왔다. 처방약이 나가기 전에 상담이 필요한 약이어서 처방전을 리뷰한 다른 약사가 'consultation'을 걸어놨기 때문에 메모를 보고 상담을 했다. 약을 건네주니 'Happy Thanksgiving'하길래 나도 응답해줬더니 대뜸 하는 말이 'I will be alone on Thanksgiving. But I am okay. I will be with my dog, having turkey'하면서 쓸쓸하게 웃는 것이었다.

무슨 사연인지, 이혼을 했는지 자식들이 다른 주에 사는데 이번 쌩스기빙에는 사정이 생겨 오지 못하게 됐는지 남들은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저녁에 혼자 있어야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오로지 곁에 있어줄 수 있는 하나는 강아지 뿐이다.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해외토픽으로 애완견에게 엄청난 재산을 상속하는 애완견 주인의 이야기가 지면에 오르면 한국에서는 그 사람을 거의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혀를 찼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생활해보니 자식과 멀리 떨어져 혼자 사는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그동안 항상 자신을 곁에서 지켜줬던 애완견을 걱정해 상속까지 해야하는 외로운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노인들이 거주하는 이 지역에서 약사로 일하기 이전에는 정부에서 나오는 소셜 시큐리티 연금으로 살아가는 노인이 당뇨병 강아지에게 줄려고 백불 가까이 되는 인슐린이나 녹내장인 강아지를 위해 그 비싼 점안액인 잘라탄(Xalatan)을 처방약으로 받아가면 차라리 그런 돈을 사람에게 쓰지 왜 강아지에게 허비하나 하는 냉소가 스쳤었다. 지금은 아니다.

미국에서 아무리 같은 나라에 살아도 부모는 서부에 살고 자식은 동부에 산다면 자식이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부에서 동부는 시차가 3시간, 비행기로 6시간 걸린다. 자식이 다른 나라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껏 외로움을 덜어주고 곁에서 자신을 반기고 따라주는 강아지가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자기의 단 하나 뿐인 친구이자 가족인 강아지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조금이라도 수명을 연장하고자 그 비싼 약을 현금가로 사가지 않을 수 없다.

몇 년전에 괴상한 처방전을 하나 받았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렇다

이렇게 소량의 리스페리돈이 왜 대여섯살짜리에게 처방됐을까. 알고보니 환자는 앵무새이고 처방한 의사는 수의사였다. 새의 생년월일은 대부분 주인이 모르기 때문에 1월 1일로 쓰고 성은 주인의 이름으로 해서 약국에 등록된 것이었다.

앵무새가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였나보다. 새는 정제를 복용할 수 없기 때문에 액제가 새의 체중에 맞춰 소량 처방된 것이다. 앵무새 주인이 앵무새가 무슨 짓을 하는 것을 봤길래 자기 새가 미쳤다고 생각해서 수의사에게 데려갔을까, 새가 제정신이 아닌건가, 아니면 그 새 주인이 제정신이 아닌건가 황당해하면서그날 같이 일했던 동료 약사와 함께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웃어버리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친 앵무새를 고쳐볼려고 리스페리돈을 시도하는 할머니를 보니 마음이 씁쓸했다. 그 할머니를 탓할 것이 아니라 외로워서 앵무새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는 할머니의 마음을 돌봐주지 못한 주변 가족들이 반성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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