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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정부는 왜 직영도매에 칼날을 들이대나

  • 정혜진
  • 2020-01-17 06:12:10

[데일리팜=정혜진 기자] 병원 49%, 도매업체 51% 지분의 직영도매 설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 한 대형의료원이 A도매업체를 설립하면서 시작된 직영도매 형태는 최근 10년에만 10개 안팎의 대형병원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편법이라 할 수 있어도 불법이 아니기에 누구도 제재를 걸지 못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해 10월에는 교육부는 36개 사립대 부속 대학병원에 의약품 납품업체와의 계약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두달 후에는 서울의 모 대학병원의 직영도매 문제가 종합편성채널 뉴스에 등장하며 이슈가 되었다.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BtoC 거래인 '의약품 도매업체' 문제가 공공연한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정부가 실태조사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 지는 알 수 없으나, 직영도매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

과거에 병원들은 입찰을 통한 낮은 의약품 공급가를 확보하는 것을 병원의 이익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병원들은 언제부터인가 또 다른 더 큰 이익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법을 어기지 않는 선 안에서 도매업체에 투자해 이 도매업체와의 수의계약으로 약을 받기 시작했다. 병원의 선택을 받은 특정 도매업체는 제약사나 또 다른 도매업체로부터 병원에 필요한 약을 조달해 안정적인 고정 이익을 확보했고, 이 이익 가운데 일정부분을 또 다른 투자자인 병원에 돌려주게 되었다.

문제는 이 '특정 도매업체'가 독점 공급권을 무기로 제약사로부터 더 많은 마진, 즉 전보다 낮은 공급가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입찰은 복수 도매업체들의 경쟁에 따라 저가 낙찰로 건보재정을 아낄 수 있었지만, 직영도매 방식은 병원이 높은 가격에 약을 구입해 청구하므로 건보재정에도 이로울 것이 없다. 직영도매와 병원의 이익을 건보재정 안에 포함시킨 셈이다.

최근 만난 한 제약사 관계자는 "직영도매가 설립되면 제약사도 힘들다. 전보다 낮은 공급가를 요구하기 때문인데, 제약사 입장에서는 병원에 약을 넣지 않을 수 없으니 울며겨자먹기로 공급가를 인하한다"며 "대체제가 많은 제네릭일 수록, 원내에서 많이 쓰는 품목일 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직영도매가 의약품 도매업계에 이익을 준다고도 말할 수 없다. 입찰 방식에서는 서로 경쟁을 하더라도 도매업체들이 각자 병원 공급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직영도매는 그 가능성을 아예 박탈하기 때문이다. 적은 마진이라도 확보하려면 직영도매에 도도매를 제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점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유통협회와 도매업체들이 주장해온 것들이다. 하지만 매번 찻잔 안의 태풍으로 끝났고 직영도매는 우후죽순 늘어났다. 정부의 건보재정에서 약품비가 날로 늘어나고, 병원들이 환자서비스와는 동떨어진 도매 설립·투자를 통해 이익을 축적해가면서 비로소 이제와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하다.

그렇다면 직영도매만 해결한다고 왜곡된 의약품 유통이 회복될까. 직영도매가 출현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병원의 권력 비대화다. 대구에서 계열사를 가진 기업 가운데 매출 1위를 지켜온 대구은행을 경북대병원이 제친 건 병원 권력의 비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역의 대학병원이 이럴진대, 수도권의 기업형 대학병원 규모는 얼마만큼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환자 쏠림이 갈수록 심해지고 대학병원 매출이 매년 최대치를 찍는 때에 도매는 물론 제약사, 약국, 환자 어느 누가 병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는 푸념이 계속된다.

어느 산업이든 직능군 간 힘의 균형이 원만해야 건강한 거래와 경제활동이 가능하다. 병의원과 약국, 제약사와 도매업체가 서로 균형을 이뤄야 의약분업의 근본 취지인 서로 간의 감시와 견제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지금 보건의료계의 모든 힘은 병원으로 집중되고 있다. 직영도매 조사가 이제 시작됐을 뿐이지만, 서로 다른 직능 간 힘의 분배와 균형이 실현되는 첫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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