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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 '건강한 사람과 환자'

  • 최은택
  • 2014-06-02 06:14:50

프랑스 철학자 미쉘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광기는 이성중심의 서구 문화가 포용하지 않고 배척했던 인간적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지고 배제된 '비정상'이었고, '한울타리' 안에 공존할 수 없는 '타자'였다.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이런 이분법적 배제논리를 받아들였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저서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제국주의적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런 이분법적 서구중심주의가 어떻게 활용됐는 지 보여줬다. '동양'(오리엔트)은 '서양'(옥시던트)의 타자였고, '문명'(서양)이 일깨워줘야 할 '미개'(동양)였다.

푸코와 사이드 등이 주창한 이런 철학적, 문화사회적 문제 의식과 비판은 맑스주의와 더불어 인류의 사고체계를 전환시키는 데 기여한 중요한 인식론적 접근이었다. 또 여성, 인종차별, 동성애, 장애인 등 소수자운동의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밑거름이 됐다.

우리도 변했다. 이제 '장애인'의 반의어로 '정상인'이 아닌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여성은 나약하고 종속돼야 할 남성의 타자로 여기지 않는다.

여기서 의약품 인·허가와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대표적인 '국민건강지킴이' 정부 부처인 식약처가 최근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자.

성장호르몬제제의 올바른 사용법을 안내하면서 "성장호르몬제는 정상인을 위한 키 크는 약"이 아니라고 했다. 또 "정상인이 잘 못 사용하는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도 했다.

데일리팜은 '정상인' 대신 '성장호르몬에 이상이 없는 사람'이라고 바꿔 쓰고 식약처 측에 질문했다. '정상인'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것 아닌가?

식약처 측의 답변은 이랬다. '환자'의 반대말로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례이고 국어사전에서도 그렇게 쓰고 있다고. 네이버 국어사전은 실제 '정상인'을 '상태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예문으로 "…수술경과가 매우 좋아 환자가 정상인과 다름없는 거동을 한다…"라고 썼다.

국어사전도, 식약처도, 평범한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환자를 정상인의 타자쯤으로 여기고 그렇게 무식화 해 온 결과다. 기자는 환자단체에 '비장애인'의 경우처럼 환자를 정상인의 타자로 불리지 않게 쓸 적절한 용어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환자단체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기자는 이 날 이 문제를 머리 속에 품고 지냈다. 그리고 '건강인' 또는 '건강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결론 내렸다. 다음 날 환자단체에서도 '건강인'이 적절해 보인다는 답을 줬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건 진정성 있는 공감과 함께 세심한 용어선택, 어조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국민의 건강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는 정부기관이라면 용어사용에 보다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데일리팜은 환자의 반의어를 '정상인' 대신 '건강인'이나 '건강한 사람'으로 사용하는 쪽으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건강인'보다 더 울림있고 공감할만한 용어를 복지부나 식약처가 나서 환자단체와 함께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지금이라도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했던 역사를 돌아보고 반면교사 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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