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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더 카운터…약국 밖으로 나간 약들은 말한다

  • 영상뉴스팀
  • 2014-06-05 12:29:59
  • 일반의약품 편의점 판매로 본 미래 정책의 '맥점'

2007년 못 믿을 약속

5만3975㎡의 공간을 2만명이 뿜어내는 탄성과 박수 소리가 가득 메웠다.

약사라면 그 현장에서 느꼈을 기대와 희열은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소한 의약품이라도 외국에는 약국이 동네마다 없기 때문에 부득이 수퍼마켓에서 팝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취급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2007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4차 전국약사대회 현장. 이명박 당시 대통령후보의 축사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동네약국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거 하나 내가 못하겠느냐고"

그로부터 4년후.

일반의약품의 상징인 '박카스'가 약국 밖으로 나오기 한달 전인 2011년 6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대한약사회 행사장에서 유영진 부산시약사회장은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우리는 2007년 킨텍스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속았습니다."

과거의 복지부

"편의점협회에서 일반약을 팔았으면 좋겠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일부 제약회사들이 뒤에서 조장하고 있는데 이런 회사들에 대해서는 엄중히 경고합니다."

2009년 12월 15일 서울조달청에서 열린 전문자격사 선진화 공청회에서 김충환 복지부 의약품정책과장의 발언이다. 윤희숙 KDI 연구위원의 발제를 듣고 이에 대한 패널토론에 나선 김 과장의 논평은 계속 됐다.

"보건의료시장을 대자본에 두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기에는 우리 국민의 건강이 더 중요하고요. 오늘 (윤희숙 연구위원이)주제발표 하신 것에 대해서 복지부의 담당 과장인 저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약사들이)어떻게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약사출신도 아니고 일반인의 관점에서 봤을때 피투성이가 되고 총알받이가 되더라도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대안으로 제출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복지부의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신중론은 2년 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게 된다.

속도내는 MB 정부

2010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당시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일반약 수퍼판매를 지시했다. "콧물이 나면 내가 아는 약을 사 먹는다. 그러면 개운해진다. 미국 같은 데 나가 보면 슈퍼마켓에서 약을 사 먹는데 한국은 어떻게 하나"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관련 부처의 정책 추진에 시동을 걸게 된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부처가 기획재정부였다. 투자활성화, 일자리창출, 규제완화, 전문인 독점권 해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던 기재부였다. 기재부는 대통령 발언 넉달 후인 2011년 4월 가정상비약 약국외 판매를 서비스산업 선진화 과제로 삼게 된다.

2011년 6월 청와대 국무회의는 주무 부처인 복지부의 입장이 선회하게 된 계기가 된다. 당시 회의에서 대통령이 일반약 수퍼판매가 지지부진함을 공개 질책했다. '사무관처럼 일한다'라는 말도 흘러나오면서 복지부는 종전 신중한 자세에서 적극적인 수행 기관으로 변모한다. 대통령의 공개질책 한달 뒤 박카스를 비롯해 액상소화제, 정장제 등 48개 일반약이 의약외품으로 전환되면서 수퍼에서 판매 됐다. 그리고 8월 진수희 복지부장관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약사회의 투쟁과 협상

MB 정부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약사회는 긴장한다. 김구 당시 약사회장은 회원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2011년 1월 '단 한 톨의 약도 약국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공세적인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에 약사회는 부랴부랴 실력 행사에 나서면서 정부와 약사회의 갈등 구조가 표면화 했다. 약사회는 그해 8월 수퍼판매 반대 100만명 서명지를 들고 복지부 앞으로 몰려가 '길거리 접수'라는 촌극을 빚었다. 이후 복지부 앞 약사법개정 저지 투쟁, 국회에서는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광장에 나서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대국민 홍보도 병행했지만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집단적 반발을 보였던 약사회는 투쟁에서 협상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급기야 12월 약사회는 정부와 약사법 개정안을 협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듬해 1월 임시대의원 총회에서 내부 진통 끝에 국회 설득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때가 약사사회 내부에서는 '전향적 협의'라는 논란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한 시점이다.

공격 당하는 약사 직능

대통령의 일반약 수퍼판매 지시가 있고 나서 두 달 뒤인 2011년 2월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 기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 장관은 "일반의약품을 가정상비약으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한다. 일종의 '네이밍 마케팅'이 시작됐다.

정책은 크게 보면 국민적 관심 유도, 정책의제 설정, 정책화라는 과정을 거친다. 일반약 수퍼판매 허용이라는 정책 역시 이 과정을 밟았다.

정책 총기획자인 윤 장관의 발언은 정책 의제 방향을 좀더 선명하게 보여줬다. '의약품'이 약국 밖으로 나간다는 부담을 덜어보자는 의도였다. 이후 보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가정상비약 약국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가 급조된다.

정책 정당성 확보를 위한 움직임도 시작됐다. 심야시간대와 휴일에 약 구입이 불편하다는 여론전은 약사회 입장에서는 곤혹스런 상대의 전략이었다. 무자격자 의약품 판매, 복약지도 불신 등도 정부가 사용한 약사회 공격 소재였다.

수퍼판매 정책의 속도가 붙던 2011년 봄부터 가을까지 여론은 약사회 편이 아니었다. 종합편성채널과 언론은 광고 물량 증가를 기대하며 의약품 수퍼판매를 지지했다. 대형유통업계와 제약회사도 새로운 시장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여의도 국회에선

"먼저 의사일정 제1항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합니다. 보고에 앞서서 우선 오늘 이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비공개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언론인 여러분들과 보좌진 여러분들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2월 13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서 수퍼판매 문제가 논의됐다. 소위원장인 신상진 의원이 기자와 보좌진 퇴장을 요구했다. 오후 3시19분 시작된 소위는 저녁 7시42분에서야 끝났다.

야당인 박은수 의원이 20개 품목으로 한정하고 약국외 판매장소를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장소로 한정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원칙적으로 반대입장이던 야당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여론의 부담을 느껴 정치적 타결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2012년 5월 2일 다시 여의도 국회. 재석 151명 중 찬성 121표, 반대 12표, 기권 18표. 약사법 개정안이 18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되는 순간이었다.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약사회가 발표 한 지 반년만에 일반약이 약국 밖으로 나갈 법률적 장치가 마련됐다. 의약품 수퍼판매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끝나지 않은 논란

국민 편의성인가 아니면 안전성인가. 의약품 수퍼판매 논란은 이 두 논제를 특정 직역단체의 이익옹호 문제로 치환해 버렸다. 이 같은 학습효과는 앞으로 보건의료 관련 정책 판단이나 여론 형성의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을 남겼다.

사회적 논란이 큰 정책 결정과정에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강행 의지 여부가 결정적 변수가 된다는 사실도 수퍼판매 논란이 남긴 교훈이다. 제도 변화가 가져올 수혜를 입을 집단들의 조직화도 하나의 중요 시사점이다. 언론과 의료계, 유통업계, 친정부 성향의 보수단체가 모종의 정책 카르텔를 형성했다.

이해당사자 집단인 약사회가 당초 강경반대에서 수용으로 입장을 선회하게 된 정치적 배경도 곱씹어봐야 할 내용이다.

의약품 수퍼판매는 법인약국, 원격의료, 전문자격사 제도 등 보건의료 직역에게 징비록이 되고 있다.

[제작 : 영상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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