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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다방 술집 그리고 약국, 삼다의 시대

  • 정웅종
  • 2011-12-03 06:44:48
  • 옛날신문을 읽다

유행어가 단순한 풍자를 넘어 당시 세태를 고스란이 반영하기도 합니다. 1970년대에 이런 말이 유행이었습니다. '한 집 건너 OO', '전봇대 숫자만큼 많은 OO'. 다방, 술집 그리고 약국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경향신문은 1971년 기획시리즈로 '서울 새 풍속도'라는 기사를 내놨습니다. 공업화가 본격화 되던 시대에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중심지인 서울의 변화 모습을 진단하는 기사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이 시리즈에 약국이 등장한다는 것. 약의 범람이라는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입니다.

문헌적으로 약국이라는 말의 효시는 고려시대 공양왕때 혜민약국이라고 한 것이 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약사자격을 가진 사람이 약국을 개설한 것은 1922년 서울 낙원동에 세운 삼우당이 최초 입니다.

현대적 개념의 첫 약국의 등장이후 서울의 약국 수는 1970년대 3700여개를 넘어섰습니다. 현재 5000여개에 육박한 숫자에 비하면 적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서울의 인구가 55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약국 전성시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당국은 약국이 서울에 너무 몰려 있어 경쟁이 심하고 약업질서를 문란시키고 있다는 점을 들어 신고제를 허가제로 할 것을 검토한 일도 있는데 폐쇄는 1년에 2백 내외. 흔히 관광객들이 서울을 약국과 다방 그리고 술집이 많은 삼다도(三多都)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1971년 2월12일자 경향신문]

치열한 약국간 경쟁은 바로 1970년대 시작됐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난매약국이라는 표현도 이때부터 등장했습니다.

당시 신문은 '약국세계를 카멜레온 생태를 닯았다'고 표현 했습니다. 불과 몇평에 지나지 않는 공간이지만 찾는 사람의 생태가 만태이고 약국이 그런 세태와 계절에 민감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약국의 양태도 달랐습니다. 그 당시 서울 명동과 무교동 거리의 약국에서는 술깨는 약 간장약 등의 광고 쪽지가 누덕누덕 붙였습니다.

동대문이나 영등포 역전에 있는 약국은 '성병, 1일 치료'라는 선전광고가 붙었습니다. 환락가 지역의 약국 특성을 보여준 셈이죠.

'잠 안오는 약', '머리 깨끗해지는 약'의 선전은 입시지옥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기계문명으로 인한 현대인의 고단함은 '노이로제 약'으로, 연탄가스 공포는 '가스해독제'라는 이름의 약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나른해지는 봄철이면 마치 서울의 모든 약국이 시민들의 춘곤을 걱정해 주는 양하고 여름철이면 하절 건강을, 살찌고 싶어지는 가을에는 호르몬제니 강장제니 어쩌고하는 선전 쪽지가 철따라 쇼윈도에 나붙는다.' [1971년 2월15일자 경향신문]

약국의 과잉은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전화 배달제를 실시하는 약국이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전화로 약사와 상담하고 약을 직접 집으로 배달하는 방식입니다.

PR개념이 일반화되지 않은 1970년대 상황에 비춰보면 약국의 선전 마케팅 수준은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약국의 신경전은 꼭두새벽부터 시작, 밤 12가 넘도록 펴진다. 건너편 약국이 몇시에 문을 열고 닫는가, 많이 나가는 드링크류와 소화수는 얼마에 파는가, 고객은 어느 골목에서 나오는가에 온 신경을 쏟게 마련이다.' [1971년 2월15일자 경향신문]

하지만 경쟁은 약사를 바쁜 직업인으로 변화 시켰습니다.

건너편 약국, 옆에 약국의 매상을 늘 눈치봐야 하는 존재로, 약 심부름을 오는 꼬마에게 껌이나 연필이라도 챙겨줘야 하는 말 그대로 고단하고 고독한 존재로 전락 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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