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안부
- 데일리팜
- 2014-02-20 09: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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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훈 (소설가, 대한약사회 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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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듣는 '출발 FM과 함께'는 베를린 필하모닉 12첼리스트가 연주하는 '쉰들러리스트'의 주제곡에 이어 미션 같은 크로징멘트를 남긴다. 가끔 한 번 씩 모든 형태의 미디어와의 접촉을 끊어봐라, 당신의 깊은 내면에서 나오는 작고 조용한 소리를 더 많이 들어봐라, 점점 더 비인간적으로 변하는 문화에서 사람들에게 당신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려라,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보는 대신 홀로 있는 시간·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라, 라는 존 라빈스(John Robbins)의 잠언(箴言)성 경구를 나지막이 짚어가던 박지현 아나운서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끝을 살짝 들어 올리는 의문부호성 톤의,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명령어 형식으로 해석되어지는 완곡한 한 문장으로 진행을 마감한다. 2014년의 첫 번째 주말부터 실행에 옮겨보시면 어떨까요.
앗, 오늘이 벌써? 그 멘트를 놓쳤다면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는 애칭으로 칭송받는 금요일 아침임을 깜빡할 뻔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영동대교 남단을 휘어 돈다. 감정의 기후는 늘 예고 없이 출몰하는 소소한 것들로 태클 걸린다. 단단히 졸라맨 허리 벨트의 매듭을 툭, 끊는 듯한 그 찰나의 각성은 액셀레이터 페달 위에 얹힌 오른발의 힘을 일거에 제압한다. 월·화·수·목·금·금·일.(휴일지킴이로 나서게 되는 주는 월·화·수·목·금·금·금.)! 관성의 힘이 작동될 만큼 최적화된 맞춤형 일상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 의무가입과 요양기관 당연지정제(當然指定制)를 근간으로 한 의약분업(醫藥分業)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2000년부터다. 오롯이 환자를 중심으로 한 의사와 약사의 정확한 '투약 크로스 체킹(cross checking)'! 다시 말해 중복과 병용금기는 물론 적정용량 및 투여 횟수 등의 처방오류 방지를 위한 '다시 보기(re-vision)'가 모든 투약에 앞선 선행작업으로 자리매김하면서부터다.
차창 밖으로 강 저편의 사물들이 뭉텅뭉텅 지나간다. 잠잠히 떠있는 희부연 구름떼와 맞은 편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행렬은 일탈을 청유하는 유혹의 시그널링처럼 고집스레 따라붙고, 머리 위로는 '뮤지컬 고스트' 현수막이 내걸린 잠실대교가 다가왔다 멀어진다. 겨울 휴가를 앞당길까? 지나치게 공식화된 일상을 지나치게 쿨한 척 견디며 스트레스만 적립해가는 건 아닌가 하는 물음표, 나날이 눈물만 늘어간다는 아버지의 알츠하이머 병증악화 걱정이 유도해낸 혼잣말이다. 혹은 깊은 내면에서 나오는 작고 조용한 소리를 더 많이 들어보라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려보라는 박 아나운서의 서정적 마감멘트에 대한 화답일 수도 있다. 안 될 것도 없다. 1주일 이내라면 하시라도 교대 가능한 동료가 있고(물론 사전조율작업이 필요하겠지만), 환자 수가 폭증하여 하루의 업무를 마비시켜버릴 돌발상황 발생은 사막에서 얼음을 기대하는 일보다 희박하기 때문이다.
저만치 올림픽대교가 나타난다. 깜빡깜빡, 방향지시등을 작동시키며 아산병원쪽으로 난 우측으로 차선을 바꾼다. 80·70…30으로 떨어지던 속도게이지가 직진 차량과 합류되는 송파세무서를 한 블럭 앞두고는 명절의 귀성길처럼 0와 5 사이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상습 병목구간. 늘 그렇듯 올림픽대교를 건너와 아산병원 쪽으로 우회하려는 차량이 압도적이다. 관계는 존재에 우선한다. 둔중한 무게의 이름들이 줄레줄레 떠오른다. 진행성 녹내장(綠內障) 수술 후 Vexol·Cravit·Cosopt··Alphagan P 등의 점안액을 14일 주기로 처방 받아오는 김00, 갑상선전절제(甲狀腺全切除) 수술 후 1개월 단위로 Synthyroid·Dicamax 등의 처방을 받아오는 서00, 무릎 인공관절(人工關節) 수술 후 Celebrex· Almagel 등을 3개월 주기로 처방 받아오는 박00, 심혈관조영시술(心血管造影施術) 후 6개월 단위로 Nitroglycerin·Concor·Crestor·Plavitor·Molsiton ·Aspirin·Cozaar 등의 처방을 받아오는 김00 등등….
흐음! 허리를 꼿꼿이 세워보는 몸짓으로 잠시 움튼 미혹의 민망함을 털어낸다. 맞다. 제아무리 외로워도 서울 거주 50대 개국약사의 금요일 아침 미션은 공익성· 전문성·이타성을 초석으로 한 의약품의 투약과 복약지도로 수렴되는 게 자연스럽다. 자신의 일을 긍정하는 건 스스로를 긍정하는 일이다. 모든 의약품은 약사의 손에 의탁하여 투약될 때 비로소 그 효용가치의 환산이 가능해지며, 그 행위의 결과 약사(혹은 의약품)는 질병을 치료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 약사(혹은 의약품)로서의 자기생산성(自己生産性)을 세상에 드러냄이 가능해짐을 곱씹어본다. 세상에, 피아일체(彼我一體), 가족 이상의 신뢰로 머리를 빌려주고 몸을 내어주는 이 도타운 관계의 접점에서 동행하는 저 친숙한 이름들을 깜빡할 뻔하다니! 오감을 총 동원하여 그들의 말이며 말투· 눈빛과 낯빛·걸음걸이와 풍기는 느낌 등을 고샅고샅 살펴봐야하는, 또한 두 겹의 눈을 뜨고 처방된 약 이름이며 약성·주치료효과와 부작용·약물상호작용과 금기사항 등을 면밀히 체크해야하는 지당한 일을….
삐뽀삐뽀, 황색실선을 무시한 순찰차가 송파세무서 부근 중앙차선 방향의 접촉사고 현장으로 이동해가며 울리는 경고신호다. 컵홀더 안의 생수로 목을 축이며 때때로 무르춤히 손을 놓게 하던 불온한 이야기 하나 건져 올린다. 법인약국설립을 목적으로 한 약사법 개정! 이는 공공재로서의 '의약품'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를 몰이해(혹은 경시)한 정부가 투자활성화라는 명목아래 원격진료 등과 함께 밀어붙이려는 보건의료정책 중 하나다. 단연코 어불성설이다. 지치고 망가진 몸을 기대고파하는 환자들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허술히 대하기에는 너무 조심스러운, 사람의 병을 치료(혹은 경감시킴)함을 목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숭엄한 정신이 깃든 의약품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두 명의 약사가 근무하는 여건에서도 내방하는 환자의 기왕병력(旣往病歷)과 체질·습관·주위환경 등의 배경지식을 습득한 약사로 하여금 마주서도록 차트 나눔이 바람직한 일인데, 하물며 자본을 엮어 꾸려가는 법인이라니! 하물며 투자금의 활성화, 영리 추구의 목적을 가지고 환자 앞에 서도록 만들겠다니!
올림픽대교남단사거리를 벗어나자 비로소 속도게이지가 오르기 시작한다. 맞은편 길로는 사고차량의 견인이 목적인 듯한 레카차가 붕붕 달려간다. 최적의 안전거리를 생각하다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던 '타이레놀시럽 리콜' 사태를 떠올린다. 국민편의라는 명분아래 '안전상비의약품'이라는 정체성 모호한 이름표를 붙이고 24시간 가동되는 편의점으로 옮겨 앉은 몇몇 의약품 중 하나다. 모름지기 의약품은 사람의 몸에 적용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여타의 공산품과 그 궤를 달리해야한다. 정부가 나서야할 만큼 경제가 가파르게 곤두박질치고 그래서 모든 것이 자본주의로 치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해도 본질은 그렇다. 일찍이 '나는 인간과 지구공동체의 건강이 기업의 이익 창출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설파한 이가 있다. 존 라빈스(John Robbins)! 한 달 내내 새로운 맛을 선사하겠다는 모토로 창업된 아이스크림제국, '배스킨라빈스 31'의 상속자 자리를 박차로 나가 환경운동가로 거듭난, '음식혁명' '인생혁명''100세혁명'의 저자! 바로 그이다.
핸들을 우로 돌려가며 그들, 붙잡으려했으나 끝내 축축한 마음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안전상비의약품'들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운 그대 안녕하신지. 그토록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우리의 손을 떨치고 가시더니, 혹여 구매자들의 눈길 닿지 않는 어느 한켠에 방치된 채 흩날리는 먼지 속에 삭아가고 있진 않으신지. 혹은 지혜로운 주인의 협력자로 숨쉬던 옛 자리가 꽃자리였다는 늦은 자각으로, 귤화위지(橘化爲枳)의 비루한 현실에 눈물 찍으며 훌쩍이고 있진 않으신지. 그리운 그대, 그대의 현재가 혹여 한갓진 구석에 진열된 채 초라히 좀먹어가는 푸슬푸슬한 나날을 견디는 중이거나, 혹은 전량 리콜이라는 불명예기록을 남긴 '타이레놀시럽'의 트라우마에 갇혀 마른가지 위의 공벌레처럼 몸을 동글게 말며 숨죽이는 중이라 할지라도, 그런 그대의 서러움 때문에 가슴 아픈 우리는 또 그런 그대의 서러움 때문에 안도하기도 한다. 외롭고 서러운 그대의 하루하루가 어쩌면 그대를 우리에게 돌려주는 이유로 세워지는 생기로운 반전의 불쏘시개가 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 때문이다. 아아, 그렇게 해서라도 그리운 그대를 다시 품어 안을 수만 있다면, 그때 우린 맨발로 폴짝폴짝 뛰어 그립고 그리운 그대를 마중나가리니, 부디 그대 건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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