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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미약품은 왜, 속수무책 당했나

  • 조광연
  • 2016-10-13 06:14:55

공든 탑이 무너졌다. 43년 차곡차곡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는데 14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창업주 임성기 회장이 1973년 한미약품을 세운 이래 거친 도전과 모험으로 조각해 온 글로벌 R&D 기업의 이미지와 사회적 신뢰가 최근의 늑장 공시 파동으로 적잖이 훼손됐다. 작년 대규모 기술 수출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이자 유능한 연구원이기도 한 이관순 대표는 허리를 90도로 꺾어 사죄를 해야했다. 제약바이오 붐을 일으켜 투자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던 한미약품은, 이제 역설적이게도 투자심리를 약화시켜 놓은 기업이라는 원성마저 사고 있다. 정부의 신약 정책에도 부정적 기류를 만들었다는 비판대에도 올랐다.

한미약품 파동은 어디서부터 꼬이고, 잘못된 것일까. 명백하게도 그것은 회사의 느슨한 위험 감수성과 안일함에서 비롯됐다. 회사가 '제넨텍에 기술수출을 했다'는 호재성 공시를 한 것은 9월29일 오후 4시 30분 무렵, 코스피(KOSPI)가 폐장한 후였다. 공교롭게도 베링거가 '폐암신약 후보 물질인 올무티닙(한국 상품명 올리타)의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이메일을 보내온 게 이날 저녁 7시 6분이었다. 익일 새로운 장을 앞두고 호재와 악재가 겹치게 된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리스크(Risk)였다. 정상적 '리스크 매니지먼트 프로세스'가 작동했다면, '제넨텍 호재'에 기대를 걸고 다음 날 오전 코스피 개장을 밤새 기다릴 투자자들을 무겁고 엄중하게 의식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30일 장이 열리기 전 공시를 했어야 했다. '24시간 안 공시 같은 규정'을 염두에 둘 사안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한미는 그렇게하지 못해 혼란을 자초했다. 개장되고 29분이 흐르고 나서야 악재 공시를 올렸다. 회사는 여러 정황을 앞세워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누가 이를 액면으로 믿어 주겠는가. 회사 내부의 책임 회피를 위한 설명으론 그럴듯 할지 몰라도 대외적 메시지로는 불충분했다. 만약, 회사가 '익일 개장전 공시의 절박성'을 인식해 최선을 다했다면 증권거래소가 문을 닫았거나, 담당자가 자리에 있든 없든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장 전 공시를 했어야 옳았다. 모든 투자자들이 '호재와 악재'를 천칭 저울에 올려 투자를 결정하도록 했어야 맞다. 그게 책임있는 기업의 자세다. 작년 기술 수출을 할 때처럼 시차가 나는 외국 기업과 업무 협의를 위해 밤샘했던 것처럼 투지와 열정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면 작금의 한미파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미에겐 14시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속절없이 흘려 보냈다.

베링거 악재공시, 코스피 개장전 공시했어야...안일함이 화 불러

'베링거 개발 중단 악재'를 개장 전에 공시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런데 실책은 실책을 부르는 것일까. 파동이 불거진 이후 한미가 제대로된 메시지 한 줄 내놓지 못한 것은 더 한미답지 못한 실책이었다. 30일, 일반 투자자들이 '악재를 장전에 공시하지 않아 손실을 보았다'며 분노하자 언론들은 일제히 '판도라 상자'를 열어 보겠다며 달려 들었다. 언론들이 베링거 개발 중단 사유를 의심하고, 작년 기술수출액이 부풀려진 것 아니냐는 등 다양한 방향에서 문제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오후 4시께 식약처가 '올리타 안전성 서한'을 배포하자 아주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확산됐다. '약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이 주류였다. 늑장공시, 임상시험중 사망사건 등이 한 덩어리로 묶여 한미를 통째로 휘감아 버리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게 금쪽같은 금요일과 토요일은 흘러갔다.

만약, 금요일 오전부터 선제적으로 움직였으면 어땠을까? 제약 기술수출(라이센스 아웃)의 특수성은 무엇이며, 얼마나 많은 계약이 체결된 후 임상개발 과정에서 드롭(중단)되는지, 임상시험에서 부작용은 무엇을 뜻하는지, 말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의 특성은 무엇인지 등을 제대로 알리려는 노력들 말이다. 차근차근 진행했다면 보도의 방향은 주말과 연휴를 기점으로 조금씩 변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흔하디 흔한 보도자료조차 단 한건 밖에 내지 않던 회사는 연휴 한 중간인 10월 2일 오전 일문일답형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한데, 회견으로 논란이 수그러 들기보다, 되레 기사량 만 늘려 놓았다. 선제적이지 못했던 기자 회견은 드러난 의혹에 마지 못해 해명하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그렇다 보니 기자회견으로 외부를 설득하려 한 것이었는지, 내부를 향한 제스처였는지 그 목적성이 헷갈릴 지경이었다. 일련의 사태를 설명해 줄 자료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무슨 자신감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특히 기자 회견에서 늑장공시와 관련한 담당 임원의 설명은 전형적인 내부용이었다. "공시 정정은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중요한 건이어서 내용을 모르는 당직자나 당번에게 설명하고 승인 받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30일 아침 8시35분에 공시 담당자와 전화가 됐다. 8시 40분 공시 절차를 진행했다. 신속을 요하는 것은 거래소와 한미 모두 알고 있었다. 결국 늦게 공시하게됐다." 과연 이 발언은 조사권한을 갖고 있는 금감원이나 거래소에게 어떤 뉘앙스로 전달됐을까? 공동 책임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이관순 대표가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허리를 깊숙이 숙여 사과하고, 한편에선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거래소와 상의하는 과정에서 늦어졌다고 말하는 미숙함을 드러냈다. 얼마지나지 않자 금융 당국이 대답했다. "철저히 조사하겠다."

한미약품은 한국 제약산업사에서 R&D를 선도해온 기업이다. 1989년 국내 제약기업 최초로 3세대 항생제 세프트리악손을 600만달러를 받고 로슈에 기술을 수출했으며, IMF로 실의에 차있던 1997년에는 마이크로 에멀전 기술이 적용된 면역억제제 임플란타 기술을 스위스 노바티스에 7400만 달러(내수포함)에 수출한 기업이다. 그런가하면, 개량신약 아모디핀을 개발해 새로운 장을 열었고, 곧이어 복합신약을 개발했다. 작년에는 잇따라 기술을 다국적 제약사에게 수출한 명실상부한 신약개발 R&D 기업이다. 예기치 않게 호재와 악재가 맞물리는 상황에서 위기 관리시스템 부재로 필요이상 비난에 휩싸이게 됐지만, 다시 시스템을 정비하고 추스려 글로벌 행진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이번 파동을 면밀하게 복기해 잘잘못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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