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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약사의 중재는 환자를 보호한다"

  • 데일리팜
  • 2017-01-13 12:14:52
  • 최방선 새물결약사회 학술이사

2016년 5월 인천의 한 여성이 사전피임약 야스민을 처방받아 복용한 후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야스민 복용 후 환자가 사망한 사례는 국내에서 두 번째다. 첫 번째 케이스에서 유가족이 처방한 의사를 대상으로 재판을 진행하였으나 의사는 무죄 확정 선고를 받고, 그 삼 년 후에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 중 첫 번째 케이스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보자.

2012년, 4월 한 20대 여성이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월경통 때문에 처방 받은 '야스민'을 복용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여성의 사인은 폐혈전색전증이었다. 유가족은 의사에게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의사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사망자의 직접적 사인인 폐혈전색전증과 관련된 병력이 없었고, 약물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약사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설명의무 위반과 이 사건의 인과관계도 적다는 것이 무죄판결의 이유였다.

사망한 문제의 환자는 과거 편두통과 자궁내막근종을 진단 받은 경험이 있었다. 이 여성의 병력을 살펴보면 의사가 야스민을 처방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왜냐하면 이 병력들은 합성 여성호르몬제 복용 시 주의를 요하는 조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편두통의 측면에서 볼 때, 특히 "AURA"와 같은 신경학적 증상을 동반하는 편두통은 야스민 복용의 금기 요건에 해당한다. 상대적으로 편두통 병력을 가진 여성들은 편두통이 없는 여성들보다 혈전 생성 위험이 더 높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합성여성호르몬 복용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그런 환자에게, 사전피임약 중에서도 가장 혈전 위험이 높은 4세대 약물인 야스민을 의사가 처방했다는 것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나는 생각해본다. 만약, 약사가 좀 더 적극적으로 환자의 처방전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사건의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환자의 병력을 듣고 의사에게 직접 전화해서 처방을 바꿀 수 있었다면, 그리고 환자에게 혈전의 위험과 그 경고 증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고 대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더라면 말이다.

사실 약사의 의사 처방에 대한 중재(intervention)는 의약분업이 선행된 선진국에서는 아주 중요한 약사의 역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지극히 환자 중심의 약료서비스이며, 환자의 이익(benefit)에 부합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약사가 감히 의사에게 처방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의사에게 종속되어 있는 비정상적인 구조 속에서 의사와 관계가 틀어질 것을 각오하고 약사가 자기 소신을 펼치기는 매우 어렵다. 설혹 용기를 내어 병원에 전화를 해도 의사와 직접 통화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의사들의 눈치를 보는 시스템에 갇혀버린 한국 약사들은 호부호형을 못하는 홍길동에게 동병상련을 느낄 뿐이다.

다시 사망한 20대 여성에게 돌아가보자. 그리고 그날, 그 여성이 율도국에 있는 나의 약국에 왔다고 상상해본다. 야스민이 처방 나왔지만, 환자가 편두통 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 거리낌도 없이 의사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율도국의 약사가 있는 곳 말이다.

"선생님, 이 분이 편두통 병력이 있는데요, 비록 AURA와 같은 전조증상은 없는 경우라 금기 사항은 아니지만, 편두통이 없는 분들보다는 혈전 위험이 높다고 생각되니까요, 4세대 말고 상대적으로 혈전 위험이 적은 2세대 약물을 처방하시면 어떨까요?" 약사의 이런 제안에 율도국의 의사는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준다. 그것이 환자에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환자에게 약을 건네주며 다리 통증 등 혈전 위험을 암시하는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이나 약국에 연락을 취할 것을 당부한다. "감사합니다." 인사하며 나가는 환자를 보며, 율도국의 약사는 혼자 읊조린다. 약사의 중재는 환자를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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