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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타트

반복되는 의약품 품절…해법은 '안전·투명 유통망' 구축

  • 이석준 기자
  • 2026-06-12 07:28:17
  • 공급망 위기 상시화…유통 경쟁력도 안전성·투명성 중심으로 변화
  • 정부 민관협의체·KPIS 정보 공개 확대…공급망 관리 체계 정비
  • 대웅제약 블록형 거점도매 주목…권역별 책임 공급 모델 부상

[데일리팜=이석준 기자] 의약품 품절이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료의약품 수급 불안과 글로벌 물류 차질, 국가별 수출 제한 등이 이어지면서 의약품 공급 안정성이 보건의료 현장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여기에 초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까지 겹치면서 의약품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반복되는 품절 사태는 의약품 유통의 역할과 평가 기준까지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품목 확보와 거래처 확대, 전국 유통망 확장, 대량 물량 처리, 비용 절감 등 외형 성장과 효율성이 경쟁력으로 꼽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급망 충격 상황에서도 필요한 의약품을 필요한 곳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안전성과 투명성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의약품은 일반 소비재와 달리 공급이 지연되면 치료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체 품목이 있더라도 처방 변경과 조제 지연, 재고 확인, 환자 안내 등의 부담이 의료현장에 전가된다. 특히 공급이 불안정한 품목일수록 소규모 약국과 비수도권 지역에서 영향이 먼저 나타난다는 점에서 의약품 유통을 국민 건강을 지키는 공공 인프라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산형 유통 구조의 한계와 현장의 부담

국내 의약품 유통은 오랜 기간 다품목·다거래처 중심의 분산형 구조로 운영돼 왔다. 평상시에는 넓은 거래망이 강점으로 작용하지만 수급 불안이 발생하면 복잡한 유통 단계와 영세한 사업 구조가 오히려 병목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 유통 선진화를 위한 유통체계 개선방안 연구'(2024)는 국내 의약품 유통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영세성과 복잡한 도매상 간 거래, 물류비 증가, 정보 비대칭 등을 꼽았다. 연구진은 공동물류센터 조성과 유통 구조 단순화, 도매업체 대형화·계열화, 불필요한 도매상 간 거래 제한 등을 주요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는 콜드체인 등 보관·수송 조건이 까다로운 의약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실제 2022년 생물학적 제제 배송 기준 강화 이후 온도기록 관리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도매업체가 소량 배송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최소 거래금액 설정이나 배송 축소가 이어지면서 인슐린 제제 공급 차질 우려도 제기됐다.

수도권의 한 의약품 도매업체 관계자는 "제약사들은 안전성 평가가 완료된 제품은 콜드체인 없이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지만 유통업체는 기준을 벗어나면 행정처분 대상이 된다"며 "현장의 부담이 상당히 크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이 단순한 효율성 극대화에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공급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소규모 약국과 비수도권 지역에 필요한 의약품이 안정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유통 구조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는 공급망 통제 강화…국내도 민관 협력 확대

공급망 위기 이후 제도적 대응은 해외에서 먼저 본격화됐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FDA의 공급망 개입 권한을 확대했다. 제조량 보고와 생산 중단 통지, 대체 공급원 정보 제출, 위험관리계획 유지 의무 등을 강화하고 공급 부족 우려 품목에 대해서는 심사와 실사를 우선 진행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의약품 공급망 보안법(DSCSA) 이행과 함께 글로벌 정책 기조 역시 사후 대응에서 사전 관리 체계로 전환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도 대응 체계 정비에 나섰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3년 '의약품 수급불안정 개선을 위한 대응 절차 정비'를 발표하고 정부 부처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과거 개별 민원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생산과 유통, 수요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당시 이형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의약품 수급 불안이 발생할 경우 민관협의체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관련 제도 개선도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보 투명성 강화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종합정보포털(KPIS) 데이터를 대한약사회 시스템 등과 연계해 약사들이 부족 의약품 보유 현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KPIS에는 국내 유통망 대부분을 담당하는 2000여개 도매상의 공급 내역과 일련번호 정보가 집계된다. 정부는 이를 활용해 부족 의약품 모니터링과 균등 분배 지원, 비정상 유통 흐름 분석 등을 강화할 계획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한계도 지적된다. 현재 제공되는 정보가 실시간 재고가 아닌 보유 추정 정보인 만큼 실제 재고와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약국 관계자는 "실시간 재고가 아니어서 실제 확보 여부를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화 문의가 더 빠르다는 인식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데이터 반영 시차로 인해 사재기나 끼워팔기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개선 과제로 꼽고 있다.

블록형 거점도매, 공급 안정성 높일 대안 될까

반복되는 품절 사태 속에서 업계는 지역 거점 중심의 책임 공급 체계 구축 필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심평원 연구 역시 인슐린과 같은 수급 불안 우려 품목에 대해 지역 거점 배송을 위한 도매상 시범사업 운영과 유통 구조 단순화 필요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대웅제약이 추진하는 '블록형 거점도매' 모델도 주목받고 있다.

블록형 거점도매는 단순히 거래처를 확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권역별 공급 체계를 구축해 수급 불안 상황에서도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춘 모델이다.

대웅제약은 권역별 재고 현황을 기반으로 공급 상황을 관리하고 비수도권과 소규모 약국까지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체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심평원 연구가 제시한 지역 거점 배송 체계와 공급망 안정성 강화 방향과 맥을 같이한다고 평가한다.

결국 의약품 유통의 선진화는 단순한 물류 효율성 확대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시간 정보 공유와 정확한 수요 예측, 권역별 공급 체계 구축을 통해 유통 과정의 안전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앞으로 의약품 유통의 경쟁력이 얼마나 많이 판매하느냐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복되는 품절 사태 속에서 안전하고 투명한 유통망 구축이 국민 건강권 보호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석준 기자(wiviwivi@dailyphar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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