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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모든 의사에게 있을 첫 환자의 기억[데일리팜=이정환 기자] 내게는 20년 가까이 꾸준히 찾는 동네 가정의학과 의원이 한 곳 있다. 10평 남짓, 작지만 정갈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이 동네 의원은 섬세하고 차분한 가정의학과 전문의 진료를 십 수년째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다. 희끗한 머리의 관록과 품위를 갖춘 여의사가 몇 해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이 들린 이후, 동료이자 연세세브란스의대 선배 의사인 남편이 의원을 이어 받으며 진료 바통을 주고 받은 부부 의원이 된 이 곳은 아는 사람은 아는 동네 소문난 '명의원'이다. 훗날 알게 된 일이지만, 부창부수라 했던가 두 부부 의사는 비단 의료계뿐만 아니라 사회복지학, 약리학 등 다방면 분야에서도 십 수년 간 사회에 공헌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 온 '저명 인사'였다.나는 좀처럼 아픈 일이 드문 선천적인 체질과 아직은 팔팔한 나이 탓에 반기에 한 번 내지 연에 서너번 꼴로 내원 진료를 받는 수준이지만, 의사 얼굴을 맞대고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 당장 질환에 대한 걱정과 물리적 아픔이 사라지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는 반복된 경험 탓에 나 홀로 마음속 주치의로 삼은 지 벌써 20년에 가까웠다. 이에 개인적인 내원 사례를 짧게 소개한다. 지난해 급격히 불어난 체중 관리를 위해 방문한 의원에서 항상 자상하고 젠틀한 표정의 원장님은 내게 매번 같은 톤으로 묻는다. 애초 살 빼는데 도움이 되는 약이라도 한 번 처방받아볼까, 하는 마음에서 찾은 의원이었다."오늘은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 "평소 혈압은 문제 없으시죠? 새로 재봅시다.", "뻔하게 들리시겠지만, 약 보다는 식단과 운동이 먼저에요. 약만으로는 길게 못 갑니다.", "지금 그리 과체중이 아닌데, 한 달만 같이 노력해보고 정 안 되면 그 때 처방해 봅시다."처방에 앞서 우선 생활습관부터 함께 교정해보자는 의사 제안에 나는 약 없이도 건강한 라이프 사이클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반년째 기울이고 있다. 명의라는 든든한 우군 탓에 실제 어느 정도 체중감량과 건강증진이란 질환 치료·호전 효능감도 맛 봤다.같은 의원, 동일 의사의 또 다른 나의 내원 진료 사례다. 가정의학과 진료와 함께 가벼운 수준의 피부과 진료를 더해 요구하자 병변을 간단히 살펴본 원장님 왈 "피부과는 나보다 더 잘보는 동료가 있어요. 제가 얘기해 둘 테니 한 번 찾아가 보시죠"란다. 자신의 전문진료과가 아닌 피부과 질환에 대해 다른 피부과 전문의를 소개한 것이다. 또 다른 의미의 동네 의원 간 협진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진료 수익 대신 환자의 더 좋은 진료와 건강을 우선한 원장님에게 감사함과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게 바로 의사의 품격이자 동네 의원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비대면진료가 보건의료계 뜨거운 감자다. 플랫폼 기업들은 초진 비대면진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료를 탄압하는 행위이자, 기득권인 의사와 약사 편에만 서는 입법이라며 대국민 '비대면진료 지키기' 서명운동을 받고 있다. '아픈 내 새끼 진료, 워킹맘은 꿈도 못 꾼다'는 격한 표현으로 국민의 감정을 뒤흔드는데 여념이 없다.일간지, 경제지 등 유수의 주요 언론도 여전히 플랫폼 목소리를 한층 증폭하고 널리 확산하는데 앞장 서고 있다. 코로나19 판데믹 예방을 위해 한시적으로만 허용하기로 했던 비대면진료가 낡은 규제로 인해 당장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국회가 의료법 개정안 심사를 하지 않고, 의·약사가 반대한 탓에 한국의 비대면진료 기술력이 중국에 따라잡혔다는 프레임의 뉴스가 쏟아지는 실정이다. 언제부터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는 대면진료를 비대면진료에 우선하는 게 낡은 규제가 됐는지 모를 일이다.플랫폼 기업들은 국회 앞에서 초진 비대면진료 허용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비대면진료로 병·의원 방문 없이 간편하게 집에서 전화통화로, 화상으로 진료 후 약을 받을 수 있는데 도대체 왜 초진 비대면진료를 허용하지 않는 대면진료로 되돌아 가려 하냐는 게 대다수 언론의 스탠스다. 뉴스 보도 과정에서 비대면진료로 발생할 수 있는 '의사 편법 진료' 유혹이나 '환자 편법 약 처방' 유혹, 충분치 않은 진료 후 약 처방, 불필요한 수준의 과잉 약 처방 등 문제점이나 부작용은 일체 도려내졌다.질환으로 아픈 환자에게 의사는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전문가다. 자신의 신체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신뢰감과 안정감, 안전감, 만족감을 요구한다. 진료 후 질환의 빠른 호전은 환자가 의사에게 원하는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요건이다. 단순히 전화통화, 화상만으로 의사와 환자 간 진료가 진행·종료되는 풍경이 일상화 한다면 질환에 대한 소통 과정이 삭제되고, 단편적인 약 처방만이 남게 되지 않을까. 아울러 진료란 애시당초 대면과 비대면으로 나뉠 계제가 아니라, 당연히 대면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거동불편자나 도서·산간·벽지 등 의료취약지 거주 환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이미 국회 계류 중인 의료법 개정안 4건(강병원·최혜영·이종성·신현영안)이 초진부터 비대면진료를 허용 중이다. 플랫폼 기업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담은 단 1건의 의료법 개정안(김성원안)만이 정신과 질환 등 일부 진료과를 제외한 모든 질환, 모든 환자에 대한 초진 비대면진료를 허용하고 있다."의사와 환자는 만나야 합니다."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원격의료 제도화 시도 때마다 내걸던 현수막에 쓰였던 문구다. 전국 모든 의사들, 아니 전 세계 모든 의사들은 갓 의사 면허를 딴 후 진료현장에 나섰을 때 만났던 '첫 환자'를 향한 또렷한 기억이 몸과 마음 곳곳에 각인됐을 테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후, 자신의 첫 환자 진료를 앞둔 설렘과 자신감, 긴장감, 두려움, 희열 등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과 경험이 차곡차곡 쌓였을 때 국민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란 칭호를 그제서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게 아닐까.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최근 모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국회의 간호법 제정안 처리를 놓고 "법안 저변에 의사 중심주의를 깨려는 조항들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합리적이고 세련된 법치주의를 위해서는 정서나 감정에 기대기 보다는 합리적 대안을 가지고 토론하고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문제점을 짚어나가는 박민수 차관의 담담한 목소리에 절로 공감하며 고개가 끄덕여졌다.비대면진료 제도화와 초진·재진 허용을 놓고 플랫폼 업계와 의사, 약사는 물론 복지부와 국민마저도 갈 길을 잃고 표류 중인 분위기다. 의료법 개정은 물론 시범사업 초안조차 아직까지 베일을 벗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틈 타 플랫폼은 연신 국민 정서를 초진 비대면진료 허용으로 이끌기 위해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다분히 감정에 기댄 여론전에 치중하고 있다. 젊은 패기로 초진 비대면진료를 향한 우려를 정면돌파 하려는 의지는 찾기 어려워 보인다. 재진 비대면진료 입법은 악하고, 초진 비대면진료만이 선하다는 프레임을 전국민 머릿속에 각인시키려는 시도다.박 차관이 제시한 간호법 제정안 해법대로 비대면진료 역시 합리적이고 세련된 제도화를 위해 플랫폼과 의사, 약사, 정부, 국민이 합리적인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기대한다. 플랫폼이 외치는 '워킹맘은 아픈 내 새끼 진료조차 꿈 꾸지 못하게 만드는, 나쁜 재진 비대면진료'와 같은 격정적 선전이 합리적이고 세련된 법치주의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진짜 비대면진료는 동네 의원에서 숙련된 의사와 아픈 환자가 마주보고 질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면진료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아주 당연하고 상식적인 얘기다.2023-05-03 19:29:28이정환 -
[모연화의 관점] 야! 나두, 자기효능감 커뮤니케이션(32)최근 고혈압, 당뇨, 관절염, 심장질환, 암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우울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정신건강연맹에 따르면 만성질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 대비 2~4배 이상의 우울감을 호소한다고 한다.우울감은 의욕이 떨어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인 무기력과 연결되고, 무기력은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는 약물치료 및 생활습관교정과 같은 행동 치료를 방해한다.이에 세계보건기구는 만성질환자의 정신건강에 다차원적인 개입을 촉구하며, 관련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캠페인 형태의 국가 차원의 개입, IoT를 활용한 사회적 차원의 개입,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담당할 지역 의료 모델의 개발 등이 있다.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개념은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다. 자기효능감은 세계적인 심리학자 앨버트 밴두라(Albert Bandura)에 의해 제창된 개념으로, 자신의 능력치에 대한 신념을 뜻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건강 관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왜냐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매일매일 품이 드는 '약 먹기, 덜 먹기, 더 걷기' 등의 건강 행동을 꾸준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인간은 지지를 양분 삼아 자신의 효능감을 인지하고, 나아가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자기효능감을 키워주는 건, 스스로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심리 요인이다.상호작용이 가능한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은 IoT가 자기효능감을 높여, 건강 결과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며 건강 영역 입성을 시도하는 중이다. 귀찮아하지 않고 말을 걸어주며, 잘하고 있다는 사인을 주기 때문에, 우울감 치료나 중독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는 논리다.예를 들어, 'SKT 인공지능 돌봄 1년, 노년층 자기효능감 높여 활동 늘렸다'라는 기사를 보자. 이 기사는 SK텔레콤의 인공지능 돌봄으로 노인의 자기효능감이 높아져 노인들이 통화도 많이 하고, 일 평균 걷기도 많이 했다는 것이다.자기효능감 맥락에서, 약국은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약사는 많은 만성 질환 환자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약사는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환자의 자기효능감 관리를 해줄 수 있다. 이를테면, 꾸준히 혈압약을 받으러 오는 환자에게 "이렇게 꾸준히 관리하기 쉽지 않은데, 자기 관리 만점입니다."라는 형태로 말이다. 약사가 전해주는 잘하고 있을 때는 응원과 지지는 환자의 자신감을 채워줄 수 있다.환자가 꾸준한 복용을 어려워할 때, 약사는 "누구나 꾸준한 약 복용을 어려워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오셔서 건강 관리받는 거, 너무 잘하고 계신 겁니다. 앞으로 더 잘하실 겁니다"라는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며, 다시 시도하도록 독려할 수 있다.결과적으로 약국은 환자들에게 '마음이 안정되고 안심되는 장소', 약사는 '자신의 노력을 평가하고 인정해 주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고, 이러한 마음은 환자-자기효능감의 기반이 되어 준다.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약사가 환자-자기효능감을 높이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약사-자기효능감이다.약사 스스로가 '약물치료 과정의 중심에 약사가 있다는 각성'을 기반으로 '환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의 자기효능감을 가져야, 약사들이 환자의 효능감을 높이는 커뮤니케이션의 동기를 가질 수 있다.이에 많은 나라에서는 약대생에게 약사는 왜 필요한 업인 지, 또한 약사가 환자의 건강에 어떤 경로로 영향을 미치는 것에 관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단단한 직업적 자기효능감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한다. 약사가 약을 넘어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의 업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설명 전문가가 저물어가는 이 시대에 필수적인 교육 과제라 할 수 있다.우리의 현주소는 어떠한지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참고로, 자기효능감은 '나는 스스로 세운 목표 중 대부분을 달성할 수 있다', '나는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다', '나는 상황이 별로 안 좋아도 무슨 일이든 매우 잘할 수 있다' 등에 동의하는 정도에 따라 높고 낮음이 파악된다.약사로서, 당신의 효능감은 어떠한가?2023-05-03 10:03:57데일리팜 -
[데스크 시선] 비대면 진료에 대한 정부의 자세[데일리팜=강신국 기자] 정부가 이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행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엔데믹 선언은 다가오는데 국회에서 입법이 제동이 걸리자, 시범사업이라는 우회로를 찾은 것이다.정부는 코로나 대유행이 이어지자, 한시적 비대면 진료를 도입했다. 코로나라는 시대 상황에 큰 반대나 사회적 저항이 없이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은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했다. 이때 등장한 비대면 플랫폼만 30여 개를 넘어선다.한시적 비대면 진료, 즉 코로나가 끝나면 비대면 진료가 자동 종료되는 상황인데도 스타트업 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비대면 진료 시장에 뛰어들었다. 업체들이 본 것은 의료법 개정을 통한 영구적인 비대면 진료의 도입이었다. 그래야 외부 투자도 받고, 사세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정부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고, 국회도 비대면 진료 도입에 반신반의 분위가 생겨났다.여기에 정부의 첫 번째 실책이 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가 정부 정책 기조라면 정부안을 담은 정부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어야 했다. 의료체계의 근간이 180도 바뀔 수 있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정부는 국회에 이미 제출된 의원입법안에 편승해 얼렁뚱땅 비대면 진료 제도화 버스에 탑승하려 했다.아울러 비대면 진료는 약 배송이 아주 중요한 축이다. 수술이 아닌 이상 결국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약이다. 이 약을 받으려면 환자는 처방전이 있어야 한다.비대면 진료도 조제약 전달이 없으면 하나 마나 한 제도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정부는 약 전달을 위한 중간단계인 전자처방전은 물론 약 전달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명확한 정부안을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의 두 번째 실책이다.이러니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종료되면 플랫폼이 고사 위기에 놓이니 이를 구원하기 위해 시범사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다음은 시범사업의 당위성이다. 지난달 5일 당정협의에서 주호영 국민의 힘 원내대표는 "비대면 진료가 중단되면 당장 많은 국민들께서 불편을 느끼실 텐데, 의료법 개정 전이라도 보건의료기본법 아래 시범사업을 통해서 제한적으로라도 비대면 진료를 이어갈 방안은 없는지 논의하겠다"며 "이를 통해서 비대면 진료 중단으로 인한 의료 공백과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향후 관련 법 개정 및 발전 방안을 정교하게 마련해 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과연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중단되면 의료공백이 발생할까? 여기에 대한 답을 먼저 해야 하는 게 정부의 자세다.비대면 진료가 꼭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통해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진행하는 것이 옳다. 국회 입법과정, 공포 후 시행유예 기간 등 물리적 시간이 소요되지만, 이게 올바른 길이다. 왜 시범사업이라는 우회로를 찾아 비대면 진료를 연장하려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플랫폼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정부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2023-05-01 20:41:38강신국 -
[기자의 눈] 챔프시럽 논란...AAP 불신으로 번지면 안돼[데일리팜=이혜경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4월 25일 동아제약의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챔프시럽'에 대해 잠정 제조·판매·사용중지 조치를 내렸다. 지난 4월 3일 동아제약이 품질부적합 우려로 2개 제조번호에 대해 영업자 회수를 진행했는데, 이들 제품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미생물은 검출되지 않았으나 진균이 정해진 기준 보다 많이 검출됐기 때문이다.동아제약은 부적합한 2개 제조번호를 포함해 자체적으로 갈변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한 16개 제조번호에 대해 자발적 회수를 진행 중이다. 챔프시럽은 일정 수준 이하 미생물이 허용되는 시럽제다. 시럽제는 무균 주사제와 달리 비무균제제로 미국·유럽·일본 등에서도 동일하게 일정 수준 이하의 미생물을 허용하고 있다.다만 제조·판매·사용중지 조치가 내려진 2개 제조번호에서 대한민국약전 일반시험법에 따른 대장균, 살모넬라, 녹농균, 황색포도상구균 등 병원성 미생물 검출은 없었지만 세균, 진균 등 미생물이 정해진 기준 보다 많이 검출됐다. 식약처는 갈변현상이 발생하고, 품질부적합이 확인된 2개 제조번호 뿐 아니라 다른 전체 제조번호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동아제약 측에 식약처가 지정한 시험검사기관에서 모든 제조번호 제품에 대해 검사하고 결과를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갈변현상, 그리고 품질부적합으로 인해 우려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내놓은 후속 대책이었다. 또 챔프시럽의 제조·판매를 잠정 중지하고 의‧약사와 소비자에게 대체 의약품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현재 챔프시럽의 대체 의약품으로 파인큐아세트펜시럽, 콜대원키즈펜시럽, 신비아시럽, 세토펜현탁액, 세토펜건조시럽, 파세몰시럽, 나스펜시럽, 어린이타이레놀현탁액 등이 제안되고 있다.다만 다른 시럽제와 달리 색소와 보존제가 없어 갈변이 더욱 눈에 띈 챔프시럽과 달리 색소가 들어간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다른 시럽제의 경우 갈변현상이 발생해도 육안으로 확인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과 트윈데믹 상황 당시 우리나라는 감기약 품귀현상으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감기약을 구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감기약 증산을 위해 행정적인 지원 뿐 아니라 가격 인상 등의 혜택을 제공했고, 현재 감기약은 안정공급 상태를 보이고 있다.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챔프시럽의 갈변 원인이다. 어떤 이유에서 갈변현상이 이뤄졌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소비자들은 대체의약품으로 제시된 같은 성분의 다른 시럽제를 안심하며 복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원인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아세트아미노펜의 불신도 피해야 한다. 동아제약은 갈변현상의 원인 파악과 함께 모든 챔프시럽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식약처 또한 전 제조번호에 대한 검사를 지시한 상태다. 소비자들은 향후 결과를 기다리면서, 감기약이 필요하다면 의약사 등 전문가의 지시에 따라 대체 의약품을 복용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2023-05-01 12:48:23이혜경 -
[기자의눈] 특허만료 오리지널, 어려운 인하 구조[데일리팜=이탁순 기자] 특허만료 오리지널 의약품은 동일제제 제네릭의약품이 등장하면 상한금액이 복지부 직권으로 조정된다. 오리지널 약품은 1년 간 종전가격의 70% 수준으로 인하됐다가 2년 차부터는 제네릭과 같은 53.55%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가격이 절반 가량 떨어지면 매출도 그의 비례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실적 반토막'이 일어나는 것이다.따라서 회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동일제제 제네릭이 나오지 않게끔 전략을 세워야 한다.먼저, 특허 종료 시점을 늦추는 것이다. 20년 물질특허의 효력을 더 보장받기 위해 존속기간 연장청구를 통해 특허기간을 늘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존속기간 연장에 제한이 없다. 따라서 제약사들은 의약품 등록 기간을 감안해 존속기간을 연장해 특허만료 시점을 늦춰왔다.또 하나는 후속 특허를 등재하는 것이다. 흔히 에버그리닝 전략이라고 하는데, 염특허나 제제특허, 조성물특허, 용도특허를 추가로 등재해 제네릭 시판을 늦추는 것이다.국내 제약사들은 존속기간 연장이나 후속 특허를 피하기 위해 염변경 약제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법원이 존속기간 연장 회피 수단으로 불허 하면서 이제는 후속특허를 무력화하기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그런데, 염변경 약제는 오리지널 약제와 염이 다르므로 동일제제가 아니다. 따라서 염변경 약제가 나온다 해도 오리지널 약제의 상한금액은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오리지널 약제의 에버그리닝 전략이 먹혀든 것일 수도 있다.작년 당뇨병치료제 '테넬리아'는 후발약물이 나왔지만, 상한금액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모두 염변경약물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런 특허전략에도 불구하고 제네릭은 나오기 마련이다.지난달 당뇨병치료제 포시가 제네릭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따라서 이달 오리지널 약값이 직권 조정될 예정이었다.하지만 약가인하가 잠정 미뤄졌는데,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가 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이것이 잠정 인용됐기 때문이다.아스트라제네카가 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한 데는 포시가가 제네릭과 달리 당뇨병 외 다른 적응증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심부전, 신장병 등 급여를 신청한 다른 적응증까지 모두 영향을 미치는 약가인하 조치는 불합리하다는 게 회사 측 주장이다.제네릭이 기어코 나와 약가인하가 현실화 하자 아스트라제네카는 최후의 수단으로 집행정지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가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입게 될 경우 집해정지 가능성은 높아진다. 앞서 언급했듯 오리지널약의 직권조정 약가인하는 실적이 반토막 나는 일이기 때문에 재산상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에 집행정지 인용률도 높은 편이다.한번 집행정지가 인용되면 본안소송 재판결과 때까지 가격조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제약사는 장기간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반면, 약가조정 시기가 연장될 수록 그만큼 건강보험 재정 손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최근 이런 문제점이 대두됨에 따라 법률 개정을 통해 문단속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제약사의 약가인하 처분 취소 행정소송 결과에 따라 집행정지 기간 내 지급 또는 미지급한 약제비를 환수·환급하는 건강보험법 개정안은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했다.정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이 법이 시행되면 약가인하에 불복해 무분별한 집행정지 신청이 잦아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또한 특허 존속기간 연장을 허가 이후 14년까지로 제한하고, 연장가능 특허권 수를 제한하는 내용의 특허법 일부개정안도 발의됐다. 이 법이 통과되면 종전보다 제네릭이 조기 출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개인적으로는 동일제제 제네릭에 한정된 직권 조정 조건을 물질특허 만료 이후 유효성분이 동일한 후발약에도 적용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인하기전을 도입하는 것도 고민해봤으면 한다.제약계의 반발과 법과 원칙, 형평성 등 고려해야 할 점은 많겠지만, 지금처럼 직권조정 기전을 좁게 설계해버리면 이를 악용한 전략 또는 꼼수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2023-04-30 19:36:37이탁순 -
[기자의 눈] 38살 명인제약의 이유있는 알짜경영[데일리팜=이석준 기자] 명인제약은 알짜 기업이다. 비상장사 중 지난해 매출(2260억원)은 5위며 영업이익률(33.1%)은 1위다.반짝 실적이 아니다. 명인제약의 5년 합계 영업이익은 3000억원이 넘으며 영업이익률은 5년 연속 30% 이상이다. 꾸준한 실적에 현금성자산은 1500억원, 이익잉여금은 4000억원 수준으로 쌓였다. 매년 외형이 성장하면서도 내실까지 챙겼다.명인제약의 알짜 경영 중심에는 이행명 회장이 있다. 특히 이행명 회장의 직원 사랑은 내공이 쌓인 38살 명인제약을 만들었다.이행명 회장은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이 회장은 직원 파악에 공을 들인다. 직원별 성향을 파악하고 대처법을 달리한다. 직원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곧 알짜 경영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낳는다.직원 대우도 업계 최상위 수준이다. 대졸 초봉은 5000만원이 넘는다. 연봉이 전부는 아니지만 명인제약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이에 장기근속자도 많다. 당연히 직원 이직률도 낮다. 이는 경영 지속성으로 연결된다. 선제적 투자로 원가율(지난해 36.42%)을 낮춘 덕에 인건비 지출 부담을 최소화했다.서초동 사옥에는 정원을 만들어 직원들의 휴식 공간도 마련했다. 서초동 땅값을 빗대 일명 200억원 짜리 화원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직원 애착이 대단하다.명인제약은 올해 4월 창립 38주년을 맞이했다. 이행명 회장은 종근당 영업사원으로 제약업계 발을 들였고 38세에 명인제약을 창업했다. 창업 당시 나이만큼 명인제약을 38년 간 운영하며 알짜, 내공 있는 회사로 키워냈다.이행명 회장은 또 다른 미래를 본다. 그리고 기업 문화를 생각한다. 38년의 문화가 쌓인 명인제약을. 그리고 앞으로 쌓아질 문화를 중시한다. 이는 곧 기업가치와 연동된다고 믿는다."M&A를 통해 기업을 인수하려고도 했지만 명인제약 문화와 맞지 않았어요. 역사와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거든요. 명인제약만의 문화를 만들려고 합니다."명인제약의 알짜 경영. 겉으로 드러난 수치 외에도 이행명 회장과 직원들이 만들어낸 38살 명인제약의 힘이 숨겨져 있다. 여기에는 기업의 문화를 중시하는 이행명 회장의 노력이 담겨져 있다.2023-04-28 06:00:00이석준 -
[기자의 눈] R&D 공시의무 강화는 신뢰회복 기회[데일리팜=황진중 기자] 내달 2일부터 개정된 '코스닥 제약바이오 업종을 위한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이 시행된다. 앞서 한국거래소는 지난 2020년 2월 제약바이오 기업 포괄공시 실무에 편의를 제공하고 공시 내용의 충실성을 높이기 위해 임상시험, 품목허가, 기술이전 등과 관련한 '제약바이오 업종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포괄공시 가이드라인 개정 내용에서 중요한 것은 임상시험 중요정보인 1차평가지표 공시가 의무화된다는 점이다. 거래소는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공시할 때 주평가지표인 1차평가지표 기재의무를 명시적으로 부과했다. 1차평가지표는 임상적 관련성이 높고 의약품 효과를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주평가지표다. '임상시험결과' 공시에는 사전에 임상시험계획 승인 공시에서 기재한 지표에 대해서만 결괏값을 기재해야 한다.임상 목적과 필요에 따라 하위 분석이나 2차평가지표 등도 중요 정보에 해당할 시 공시 내용에 넣을 수 있다. 지표를 전부 기재하고, 1차평가지표와 구분해 별도 항목으로 구성하면 된다.임상정보확인서 제출도 의무가 된다. 임상시험계획 승인 공시에 임상시험의 주요 정보를 담은 임상정보확인서를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의 확인을 받아 거래소에 제출해야 한다. 임상시험 개요와 1차평가지표, 통계분석방법 등을 담은 내용이다.이번에 시행되는 개정안은 기업과 공시별로 일관성이 부족한 점과 주관적·추상적 표현으로 내용이 기재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제도 개선 필요성에 따라 이뤄졌다. 과거 제약바이오 업계에 큰 논란을 일으킨 임상결과 관련 공시는 1차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해 의약품 허가 절차를 밟기 어려웠음에도 2차평가지표 등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확인해 임상이 '성공적'이라고 판단한 내용이다.거래소가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을 만든 후 실패한 임상 결과가 성공적이라거나 '절반의 성공', '우수한 결과' 등으로 포장되는 사례는 보기 어려워졌다. 주로 데이터에 기반을 둔 공시가 이뤄지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투자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공시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A기업은 1차평가지표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음을 공시했지만 자의적으로 긍정적인 데이터를 덧붙여 임상이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공시했다. 재공시를 통해 자의적으로 덧붙인 데이터를 제외했지만 정정까지 11일이 걸렸다. B기업은 임상 결과 내용만 공시하고 약효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평균값인 P밸류를 공개하지 않았다.일각에서 산업 특성과 맞지 않는다는 1차평가지표 의무공시 개정에 대한 우려도 나오지만 제약바이오 업계는 이번 의무공시를 신뢰 회복 기회로 삼아야 한다.신약 개발은 발굴부터 허가까지 15년 가량이 필요하고, 약 5000~1만여개 후보물질 중 단 1개만이 허가받을 정도로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시간과 비용이 투자됐음에도 임상에서 실패할 수 있다. 임상에 실패해도 객관적 데이터를 공개해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다음 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거짓말을 잘하는 기업이라는 평가보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2023-04-27 06:17:26황진중 -
[모연화의 관점] 복약 이행과 커뮤니케이션의 관계(31)"Drug don’t work in patients who don’t take them."스탠퍼드 의과대학 라스 오스터버그(Lars Osterberg) 교수는 치료 과정에서 증상 개선이 없다면, 치료 프로토콜을 검토하기 이전에 환자의 복약 이행 정도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약을 잘 먹는가? 는 복약 순응(compliance), 복약 이행(adherence), 복약 일치(concordance), 복약 지속(persistence)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먼저 복약 순응은 전문가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는 "passively following the prescriber’s orders"의 의미이다.복약 이행은 그보다 광범위한데, 핵심은 전문가의 권고사항에 '동의' 그리고 '수행'이다. 복약 이행이라는 단어는 의료 공급자의 지시(order)가 아닌 권고(recommendation)로 관점을 전환하며, 환자의 선택권을 인정한 용어이다.복약 이행은 처방 대비 복용하는 약의 비율로 측정할 수 있다. 가령 30일 처방으로 30알 처방되었는데 그 기간에 10알을 먹었다면 약 33%의 복약 이행률이다.한편, 이보다 더 환자 중심적인 개념은 영국 NHS에서 활용하는 복약 일치이다. 이 개념은 환자와 전문가가 목표를 공유하는 치료 동맹(therapeutic alliance) 관계라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의약품 복용 여부, 시기, 방법 등을 결정함에 있어 환자의 신념과 소망을 존중하는 의료전문가와 환자가 협상을 거쳐 합의한 것으로 정의된다.마지막으로, 만성질환자가 증가하면서 중요해진 개념은 복약 지속이다. 이 개념은 처방된 치료법을 이행하는 기간(days)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복약 지속은 중단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복용한 기간으로써 환자가 정해진 기간 동안 치료를 계속하는 행위를 지표화한다.전문가의 말을 믿고 따르라는 순응의 개념에서 전문가의 의견에 동의하고 실행한다는 이행, 일치로의 개념 전환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이것은 사람들이 건강 의사 결정을 전문가에게 위임하던 것에서, 건강 결정권의 주인을 자신이라고 각성하는 관점의 전환이다. 작금의 사람들은 약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비교, 분석한 후 먹을지, 먹지 않을지를 스스로 결정한다.그러므로 사회는 약사들에게 환자들이 정말로 약을 잘 먹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럴 때는 어떤 개입을 해줘야 하는지 고민하기를 요구한다.그리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은 약을 잘 먹는지 확인이 필요한 순간, "약을 규칙적으로 챙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혹시, 약 복용을 놓치신 적이 있으신지요? 빈도는 어느 정도인지 솔직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처럼 공감을 먼저 해주고, 부드럽게 질문하라고 제안한다.항생제나 스테로이드같은 약들이 처방되었는데, 치료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면 "처방된 약들이 다음과 같은데요(리스트를 함께 보며), 어떤 것들을 드시고 계신지요?"라고 묻는 것도 괜찮은 접근 방법이다. 의외로 골라서 복용하는 예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행동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정색을 하고 "어머, 약을 왜 이렇게 늦게 받으러 오셨어요? 꾸준히 안 드셨어요? 잊으시면 안 되는데"라며 야단하거나, 치료 효과가 더딜 때 환자의 비이행을 의심하는 어조로 추궁하는 건, 비효과적이다.추궁의 의도는 건강을 위한 진실검증이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도피로서 병원이나 약국을 옮기는 행동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다른 예로, 약국 전산 프로그램에 어떤 환자의 만성 질환약이 띄엄띄엄 처방된 경우, "처방된 약의 복용을 중단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식으로 접근해 약물치료 과정을 함께 검토해 보는 것도 좋다. 복약 지속기간 검토가 필요할 때는 "이 약을 마지막으로 언제 복용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등의 방식으로 질문하는 것을 권한다.아울러, 복약 비복용에 관한 질문을 할 때는, 비언어(non-verbal) 커뮤니케이션도 챙겨야 한다. 공손하고 정중한 태도로 '나는 당신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약사로서 알아야 한다.'라는 눈빛을 보내며 말이다.실제, 약국 현장에서는 많은 약사가 복약 이행 여부 관련 질문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약은 잘 챙겨 드시죠?"라며, 잘 챙기는 게 당연하다는 암시를 담아 전달된다. 이러한 질문에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용자는 드물다.그래서 의도를 담지 말고, 열려있는 질문을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약물치료 행동은 복잡하고, 개인적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것은 약사가 환자를 위해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를, 궁극적으로 어떤 목표 지점을 가져야 할지 알려준다.2023-04-26 09:43:51데일리팜 -
[데스크시선] 혁신과 삽질 사이의 A.I 관능검사[데일리팜=노병철 기자] 이달 중순경 열린 보건당국의 '규제개혁2.0 끝장토론'에 대한 업계 설왕설래가 심상찮다. 끝장토론으로 명명된 이날 토론회 주제는 '인공지능을 도입한 생약재(한약재) 감별·분석 소프트웨어 개발'이다. 다시 말해 A.I 시대에 발맞춰 생약재에 대한 기존 관능검사를 탈피하고, 과학·체계화 한 감별시스템을 확립해 천연물의약품 발전 초석을 만들자는 긍정의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그동안 정부·업계·학계 모두, 한방종주국으로서 생약제제에 대한 지표·활성물질 표준화 사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된 상황에서 이 같은 움직임은 환영할 만하다.그런데, 사업 타당성과 적합성을 따질 때 반드시 고려·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전통적 방식과 제도·정책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롭게 도입될 '시스템 사대주의'에 빠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관능검사란 식품·한약재 원물질에 대해 빛깔, 색깔, 맛, 향기 등을 포함한 성상·심리계측법 중 하나다. 식품·한약재는 그 특성상 물리·화학적 계측방법으로는 종합적인 평가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까지 관능검사가 자주 이용돼 왔다. 품질판단이 미각·후각·시각·촉각에 의해 결정되지만 분석화학법 보다 유용한 이점도 많은 게 사실이다.우선 관능검사의 최대 장점은 향기와 색깔 감별에 있어서는 인간의 감각이 분석기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아울러 분석기기를 이용한 계측법 보다 비용적 측면에서 저렴하며, 간편하다. 식품·한약재 품질판단은 하나의 분석치보다도 여러 성분의 상승작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때문에 이화학적 분석만 의지해서는 식품·한약재 품질판단은 불가능에 가깝다. 맛, 향기, 색깔, 물성 등의 분석치는 하나의 대용특성을 가리킬 뿐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관능검사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그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있다.물론 토론회 당시 보건당국이 관능검사 완전철폐를 거론치는 않았지만 정책의 큰 기류가 변화되면 결국 중압감은 기업들에 전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최소 10일 전, 공문 형식의 토론회 참가 요청이 아닌 불과 며칠 전, 성의 없는 웹 발신 문자 수신으로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상황과 주제에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토론회는 한방기업 뿐만 아니라 천연물의약품 분야에서 외형을 확장하고 있는 국내 빅10기업도 대거 참석해 큰 줄기에서의 정책상담에 좋은 기회였지만 토론자료 하나 없이 구두로 진행된 점은 아쉽다.인공지능을 통한 품질판단의 범위와 기준은 어디까지 설정해야 할지, 프로그램 구축 예정 타임테이블과 시범사업 필요성, 중국·일본 등 한방 선진국들의 사례 연구 등 구체적 청사진은 공개치 않고, '일방적 묻지마 토론회'를 감행한 부분도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든다. 필요성은 공감이 가지만 당위성은 결여된 자리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한약재와 관련한 관능검사 사고는 흔하게 발생치는 않았다. 다만, 사향·우황·침향 등 고가의 약재에서 유사 성상물질을 섞어 판 일은 있었지만 우려 수준은 아니었다.갑과 을에 치우친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이번 토론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위해성분 분석시험은 관례적으로 원료기업과 완제기업이 병행하고 있는데, 이중검사에 따른 시간과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바, 해결점과 방향성 및 가이드라인 제시를 요구하는 업계 목소리에 '알아서 하세요'라는 무성의한 답변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가칭 '한국천연물안전관리원' 설립 프로젝트의 실질적 효과도 재고 대상이다. 지금도 유사기관이 2~3곳에 이르는데 상호교집합 잡음 없는 실효적 운영이 강구돼야 하기 때문이다.생약재의 '지표성분' 도출은 혁신신약 창출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생약성분 표준화 작업이 어렵다면 다방면 임상을 통한 약효성분·약리기전 시스템 구축이 보다 타당한 방법론일 수 있다. 애엽을 비롯한 동·식물성 한방원료물질은 지역·환경·기후 등의 외부변수에 따라 약효성분이 99% 일치하지 않는다. 한방의약품은 상호작용을 근간한 통계의학에 가깝다. 케미칼의약품 역시 임상약효 통계의 산물이다. 자연히 구축된 역사적 한방통계의학을 인위적 과학에 끼워 맞춰 호랑이 그림을 고양이로 만드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2023-04-26 06:00:00노병철 -
[기자의 눈] 약배송 이슈, 복지부는 왜 그랬을까?[데일리팜=김지은 기자] 약사법에서 제한하는 의약품 택배 배송을 허용하는 시범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이번에도 규제 적용을 유예하는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에 따른 조치인데, 약사사회는 손 놓고 당했다는 반응이다.지난해 12월 27일 실증특례 승인을 받은 이번 사업은 뇌질환자의 비대면 진료 보조 시스템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이 안에는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 시스템이 고스란히 담겼다.특정 질환에 한정된 이번 실증특례 적용에 약사사회가 반응하는 이유는 정부가 구상하고 약사들이 반대하는 '약 수령 방식'에 대한 약사법 특례가 적용됐기 때문이다.실제 이번 사업 개요를 보면 약사는 진료한 병원으로부터 온라인 상으로 처방전을 전달받아 약을 조제한 후 환자에 택배로 배송하도록 허용하고 있다.이를 위해 이번 실증특례의 주관부처인 과기부와 규제부처인 복지부는 의료법 이외약사법 제50조 '의약품 배송 금지' 규제 적용을 유예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7일 승인을 받은 이번 실증특례는 2년 간 사업이 시행될 예정이다.문제는 이번 실증특례가 승인되기까지 약사회는 관련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규제부처가 복지부였지만 약사회에 의견조회조차 진행하지 않았다.주관부처인 과기부는 차치하고라도 복지부가 의약품 배송에 대한 약사사회의 우려와 염려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더불어 국민의 보건의료와 의정, 약정 업무를 주관하는 복지부가 의약품 택배 배송을 허용하는 내용의 사업에 대해 약의 전문가인 약사의 의견을 ‘패싱’ 했단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이번 실증특례로 인한 약사사회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복지부는 또 한번 약사사회를 황당하게 했다.24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의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의 발언이 발단이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종성 의원의 발언에 대해 “약사회가 우려하는 부분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 약사회, 약국 약사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당장 약사회는 조 장관의 발언에 한방 맞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약사회는 지난 2월 복지부 박민수 차관의 약 배송을 포함한 비대면 진료 제도화 구상 방안에 대한 언론 발표에 반발해 현재까지 논의 거부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가, 복지부의 논의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비대면 진료 이슈에 한해서는 의료법 개정이 우선이라며 타이밍을 보고 있던 약사회로서는 굳이 서둘러 복지부와 협의에 나설 이유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약사회는 조 장관 발언 이후 기자단 공식 메시지를 통해 “비대면진료 제도화 및 시범사업과 관련 약사회와 협의 중이라는 복지부 입장에 현재까지 동 사안과 관련한 복지부와의 어떤 협의도 없었다”고 밝혔다.이해되지 않는 복지부의 잇따른 대처에 약사사회의 반응은 황당함을 넘어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 정권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 강력한 드라이브 속에서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조급함에 빠져 평정심을 잃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한다.일련의 상황에 대해 묻기 위해 복지부 담당자에 연락을 취했지만 답은 듣지 못했다. 복지부가 보건의료체계 근간을 흔들고 국민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를 당장의 성과에 급급한 판단에 내맡기는 건 위험할 수 있단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한다.2023-04-25 17:02:51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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