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두번째 마당] 부산·경남 심평원 공문위조 사건

안녕하세요, 애독자 여러분 '친절한 기자의 뉴스따라잡기'가 돌아왔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최근 부산과 경남 지역을 잠시나마 긴장시켰던 리베이트 현지조사 위조공문 사건에 대해 훑어보려 합니다.

리베이트는 '남의 일'로만 여겼던 요양기관 일선 독자 여러분들, 이 사건을 '내가 겪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하며 읽으신다면 훨씬 와닿을 거예요. 머리와 가슴의 '촉'을 곤두세워 보세요, 시작합니다.

◆경과 = 사건은 이달 초인 4일 오후 4시경 부산지역 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날 이 의원에는 난데없이 심사평가원 공문이 날아듭니다. 바로 현지조사 통보서였죠.

공문에는 "2008~2014년까지 특정 제약사 외래처방 약제를 과다하게 처방했다는 신고(고발)이 심평원에 접수돼 의약품 청구-신고접수 자료를 대조 작업 중이며, 추후 의견 진술 시 참조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모두 위조된 것이었죠. 문서를 받은 의원은 내용을 읽어내려가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직인까지 실제 도장이 찍혀 있어 그럴싸했지만 자세히 보면 어설펐기 때문인데요, 사실 이 부분은 꼼꼼하지 않으면 일선 요양기관에선 속아넘어가기 쉬운 대목입니다.

이 의원은 심평원 부산지원에 즉시 신고했고, 심평원은 본원이 직접 나서서 전국 요양기관에 위조 공문 주의보를 발령합니다.

주의보에는 공문에 언급된 실제 국내 제약사가 함께 거론됐었는데, 매체 보도를 접한 해당 제약사들은 본의아니게 피해를 당할까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로컬 영업에 찬바람이 불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지속적으로 사건을 보도했던 저 역시 제약사들로부터 문의 전화 몇 통을 받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모 제약사 부사장은 보도를 접한 뒤 심평원에 연락을 취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우리 회사 이름 자체를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등 웃지못할 일들도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이후에도 유사 공문은 김해 등 경남지역 로컬을 중심으로 속속 나타나 25건 가량이 심평원에 의해 발견됐어요. 급기야 심평원은 우편물이 최초로 접수된 우체국 CCTV까지 샅샅이 뒤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동일한 우편물 한 통이 심평원 부산지원에 도착하죠. 위조 우편물이다보니 발신주소가 심평원 부산지원으로 돼 있었는데, 범인이 배송 요청한 특정 의원의 주소가 불명확해 부산지원에 반송 아닌 반송(?)이 된 것입니다.

현재 이 사건은 실제 심평원에서 리베이트 현지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서 경찰에 의뢰해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단서 = 아직 수사는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범인이 누군지 확실치 않지만, 드러난 사실을 토대로 파악된 단서는 몇가지 있습니다.

위조 공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먼저 등기우편물입니다. 단정할 순 없겠지만 몇 곳의 의원에 보낸 것으로 미뤄 보아, 불특정 다수에게 발송되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발신자가 직접 우체국을 찾아가 등기우편 등록을 해야 하고, 고유번호와 같은 '흔적'이 남는다는 얘기입니다. 중요한 단서지요.

이 덕분에 심평원은 CCTV를 확보해 내부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공문 상단과 하단에는 각각 심평원 로고와 위조 직인이 크게 찍혀있고, 발신 주소가 부산지원으로 돼 있습니다. 공문 스타일도 심평원 약식 공문과 매우 흡사합니다.

사용된 로고는 심평원 홈페이지 기관 소개 페이지에서 다운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심평원장 컬러 직인도 조작됐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의약품 리베이트 조사가 언급돼 있고, 특정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 중소 제약사 3곳의 실명이 거론돼 있습니다(약품명은 없음).

전화번호는 실제로 부산지원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재된 담당 부서(자원평가부)는 현재 개편돼 이름이 바뀌었지만 실제로 심평원 본원에 있었던 부서이며 담당자로 언급된 이름 또한 본원에서 근무하는 심평원 직원이죠.

그러나 해당 부서는 심평원 리베이트 조사 부서와 전혀 다른 부서입니다. 실제 의약품 리베이트를 조사하는 부서는 의약품 관리종합정보센터이고, 현지조사는 복지부 명령에 의해 또 다른 부서에서 진행합니다.

같거나 틀린 부분 모두 일련의 단서가 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범인이 심평원이 무엇을 하는 기관이고 요양기관에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죠.

어느 계좌로 입금하라는 식으로 금전을 언급하는 여느 스미싱과는 다른 일종의 사기나 협박에 가깝다고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반송된 우편물에 뭍어 있는 지문 감식 결과가 나오면 이 숨은그림들은 더욱 또렷하게 맞춰질 겁니다.

◆왜 위조공문을 보냈나 = 그렇다면 범인은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특정 의원과 제약사를 콕 찝어 "과다처방 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리베이트 조사를 나갈테니 준비하라"는 내용, 해당 제약사들이 일반 국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단서를 근거로 단박에 추정해봅시다.

상당수의 심평원 관계자들은 범인이 누군가를 견제하거나 겁주기 위해 사건을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조심스레 짐작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공문에 게재된 모든 의원들과 일면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특정한 소수 의원을 타깃삼아 범행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추가로 일부 주변 의원에 덤으로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범죄는 흔적이 남기 마련이란 점은 만고불면의 진실인 것 같습니다.

◆범인은 누구인가 = 만약 단순 스미싱과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 수사 중간에 유력한 단서로 채택된다면 범인은 악감정을 가진 자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다만 그 타깃이 심평원인지(특정 지원 포함), 위조공문에 언급된 특정 제약사들인지, 특정 의원인지는 앞으로 경찰이 압축해야 할 과제입니다.

단서들을 종합할 때 특정 제약사와 지역 라이벌 업체와 연관된 (전직 포함) 제약인, 또는 특정 의원이나 심평원에 사적인 악감정을 갖고 있는 보건의료인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대상이죠.

타깃으로 삼게 될 이 모든 경우의 수가 '특정'으로 규정되고 있다는 것은 이 경우의 수를 더욱 좁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처벌 수위는 = 범인이 밝혀지면 수사당국은 공문서 위조 혐의로 조사할 예정입니다. 공문서 위조는 형법 제225조(공문서등의 위변조)에 해당하는 범죄로,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죠.

특히 이 죄가 성립되면 즉결심판을 제외하고는 형사 재판을 받게 되는데, 벌금형은 없고 징역형만 있어서 죄의 무게감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기 혐의의 경우 사기가 실제로 성립돼야 하는데, 재산상 피해가 발생하기도 전에 위조된 문서가 포착됐기 때문에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이 법조계와 심평원의 판단입니다.

지금까지 부산·경남 심평원 공문위조 사건의 최신 정황과 예측할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를 살펴봤습니다.

심평원 또한 이를 모두 염두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창립 이후 처음 발생한 공문서 위조 사건이라 유사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보건의료인 모두 눈과 귀를 열고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