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생활 3년차 여름저녁 10시까지 저녁 파트타임약사를 하고 있을때다.

9시가 넘은 시간 바빴던 약국에 손님과 상담중인 나와 계산거리가 가득한 포스기계앞에 있던 직원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한 여자손님이 박카스한병을 계산하려고 꽤 오래 기다리셨다. 직원이 박카스를 계산해주고 또 다른 손님들에 둘러쌓여 더이상 그 분은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며 한 아저씨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놀라 쳐다보니 박카스를 사가신 여자손님의 남편이 박카스를 바닥에 던져 버리고 소리를 지르셨다. 이 박카스 하나 사오는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냐며 아내를 향해 소리지르고 이내 나와 직원에게 화를 내기 시작하셨다. 태어나 처음 듣는 갖가지 욕과 너무 큰 목소리에 난 얼어버렸고 떨리는 손을 감추려 꽉잡고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했다.

'손님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섞으면 안돼'  내가 약국일을 시작하면서 부터 자주했던 생각이다. 하루에도 겪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의 감정에 내 감정이 휘둘려 나를 힘들게 하면 안된다. 계속 생각하며 내 마음과 머리를 차갑게 하려 애썼다. 15분 후쯤 경찰이 와서 결국 상황은 해결됐고, 그 사람 자체를 머리에서 지워버리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한 손님이 파스와 박카스를 계산하고 박카스를 내 앞에 내밀며 "약사님 이거 드세요" 라고 말했다. 물론 그 손님은 그 아저씨가 박카스 하나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을거다. 파스 사러 왔는데 술에 취한 아저씨가 젊은 여자에게 너무 심하게 하는게 안쓰러워 보여서 나에게 그런 마음을 나눠 주신거 같다. 박카스 병을 손으로 더듬으며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 분의 따뜻한 마음이 내 마음에 들어와 그 전과는 다르게 내 마음도 따뜻해 지는게 느껴졌다.

그러고 생각해보면 그 아저씨는 술에 취해있었고 박카스 하나 빨리 계산 안해준 우리를 보며 자신을 무시하냐며 욕을 했고 그런 의도가 없었던 나는 억울하고 마찬가지 화나는 마음만 생겼고 애써 그 마음을 차갑게 만들며 다시 그 사람을 무시하려 했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해지는건 아니었다. 모든 손님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대해줄 순 없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모두들 크든작든 마음의 병 하나씩 다 안고 살 것이다. 저 아저씨는 나보다 더 많이 살아오면서 세상이 더 맘같지 안풀렸을때 많았을거고 그러니 사소한 것에도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고 저렇게 화가나니 어찌보면 안쓰러운 일이다. 그런생각들 하니 일부러 없던 일 처럼 지워버리려 냉정했을때보다 훨씬 내 마음이 가벼워졌다.

일할때 나의 감정을 섞지 않는걸 정답처럼 생각하던 나에게 한번더 생각을 넓힐 수 있는 날이었다.

그 후로도 내 마음은 일하며 차가워질때도 따뜻해질때도 있다. 나만 손님을 돕는 입장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일을 하며 내가 그들에게 받는 따뜻함이 훨씬 더 많다. 더 많이 따뜻한 나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약사로 살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