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배려로부터
한 아이가 대기실 의자에 가슴을 엎드리고 그 깜찍한 발을 힘껏 차올리며 가볍게 의자위로 올라간다. 그 위에 올라서면 태어나 처음 보는 온갖 예쁘고 신기한 장난감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아이에게는 신나는 유혹을 이성으로 이길 힘이 아직은 없다. 그저 있는 것을 맘대로 즐기면 되는 것이다.
뽀로로 젓가락, 핼로키티 칫솔, 배트맨, 스파이더맨 칫솔,
방귀대장 뿡뿡이뽀로로 모기밴드, 아기영양제 곰탱이, 구름빵..
태어난 지 정말 얼마 안 된 아기들 눈엔 신기하고 신나는 놀이터이다. 작은 고사리 손으로 손 닿는 대로 한 움큼 뽑아 양손에 들고 마구 흔들고 빨고, 부러뜨리고 던지고 손가락으로 찔러보기도 한다. 지겨울 때 쯤 입에 빨아보며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살펴본다.의자는 푹신푹신한 쿠션이 있어 뒤로 넘어질까 아슬아슬하다. 괜한 불똥이 의자에게 책임 지울까 하여 조마조마하다. 예의는 몰라도 되는 특권을 가진 마음이 하얀 유아들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놀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제 말릴 사람은 누구인가? 아무도 없다. 아이 엄마는 요즘 나온 최신형 휴대폰으로 억지로 듣지 않아도 들리는 정말 쓸데없고 영양가 없는 수다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다. 한쪽에선 다른 엄마가 알 수 없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 액정을 두드리느라고 정신이 없다.
나는 아이 엄마 눈치 살피며 찌그러진 미소로 입까지 올라오는 말을 삼킨다. 주인은 침묵하고 엄마는 정신이 딴 동네에 가 있어 아이는 신날 수밖에 없다.
약을 받으며 약사의 설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아이는 난장판을 만들었고 어른은 귀때기에 전화기를 끼우고 아이의 팔만 끌고 약국을 나선다.
아이의 한 쪽 손엔 예쁜 칫솔이 들려 있다.
아 참, 그 엄마가 잊지 않고 꼭 하는 말이 있다 .
“인사 하고 가야지...”
약사는 말한다.
그것도 속으로 들릴 듯 말 듯...
“칫솔 값 주고 가야죠...?”
나는 나를 집에 두고 왔으니 잠시 나 아닌 또 다른 나 자신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가끔 집에 빼 놓고 온 감정들이 시기를 잘못 택하여 제 자리를 찾아온다. 내 입에서 약간은 변색된 험한 목소리가 나오고 행동도 불친절에 가까운 쪽으로 옮겨간다.
참, 재빨리도 알아차린다.
“왜 이렇게 불친절해요!”
깨지는 소리에 놀란 눈으로 제 엄마를 쳐다보는 어린 눈망울과 아이의 손을 잡고 팩 토라져 가는 뒷모습에 마음 줄 곳 없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린다.
‘살아있다‘는 진솔한 나의 표현이라고 자위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자괴감에 나는 아프다.
나는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이 어디에도 없음에 더욱 허탈하다.아직 집 나온 감정들이 돌아가지 않고 길거리를 서성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것들이 평온을 찾으면 마음속 작은 이해와 배려에서부터 소박한 작은 길을 찾을 것이다. 배려가 아름다운 것은 받아주는 따뜻한 가슴이 있기 때문이요, 나 스스로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배려하는 마음으로부터 하나하나 비워가는 진솔한 나를 찾을 것이다.
2013.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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