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비오는데 왜! 어디? 갔다올려고...

오지않는 며느리를 기다리고 있는게 안쓰러워 보였는지 지팡이를 집고 쩔뚝거리는 할머니를

부축하며 차열쇠를 들고나가는 남편 뒤에다 답답한 마음을 담아 한 소리를 했다.

손님이잖아. 그리고 비가 장대비네~ 가까운 곳이니까 차로 금방 모셔다 드리고 올께.

 

2013년 올해 기후는 그 이전 보다 무척이나 달랐다.

4월 평균 기온도 낮고 장마 또한 지역별 편차가 심하고 지루할 정도로 길다.

문뜩 11년전 4월 약국을 시작했던 우리 가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낯선 환경에 적응도 해야하고 약국과 가정을 같이 꾸려 나가기 위해 불안한 마음이 더 앞선던 아련한 기억들~

 

직장을 명퇴한 남편과 앞날을 상의한 끝에 우선 이주 부터 하기로 했다.

새 직장을 구하기 보다 약국을 개국하는게 좋다는 생각으로 이주를 감행했다.

불안감도 있고 무모하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지만

뭔지 모를 힘이 나를 도와줄거라는 자신감과 남편을 믿었기에 하지 않았나 싶다.

 

가지고 있는 돈에 맞추어 아파트를 구하고 약국 자리를 구하는게

선 보고 결혼하는 것 보다야 쉽지 않을까 했던건 물정 모르는 사람의 투정이랄까!

정작 어려움은 가까운 곳에서 찾아왔다. 그것도 개국후 1년이 채 못되서......

결혼생활 10년이상 이면 서로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했던게 나만의 바램이었던가?

 

순치지세(脣齒之勢)라 생각했던 남편과 보석 같은 아들들을 챙기고 약국을 오가면서

잠자는 시간을 빼고 아침 부터 밤 늦은 시간 까지 오로지 한 곳을 바라보던 나에게

마음의 갈등을 제공한 애들 아빠가 저 멀리에 있는 환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가 한 곳에서 12시간을 같이 보낸다면 그것도 부인 약사와 같이 한다는게 쉬울까?

 

남편은 알고 있던 성격 처럼 일에 충실하고 아들 둘을 챙기는 것 또한 잘 하지만

여자의 감성을 읽고 챙겨주는걸 손가락에 물 새듯이 할뿐더러 그로 인해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는게

눈에 역력해보였다. 직장이라는 보호막을 떠나 적응하는게 마음의 힘듬도 있었겠지만

아직도 여기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게 어색한가보다.

 

부부간에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애초 약속했던 남편의 분담된 업무를 객관적으로 바라다보니

약사로서 느끼지 못했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약국에서 약사는 손님에게 약에 대한 최선을

다하는거로 끝나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친절은 고객에 따라서가 아니라 "친절은 끝이 없다" 라는 사실을 스스로 실천하는 남편에게서 보았다.

 

또한 친절은 품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력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를 알았다.

옆에서 지켜보다 힘들지 않아 했더니

몸에 밴 습관은 힘든게 아니고 자연스러운거야^^ 라고 미소지었던 남편을 떠올리며

나혼자 할수없었던 벅찬 약국을 조용히 뒤에서 도와준 남편에게 이 글을 통해 고마움을 다시 전한다.

 

다른 약국의 텃세와 부침 그리고 입주 병원들의 영욕을 함께한 세월을 돌이켜 보면서

어떤 영역이던지 쉬운 길은 없겠지만... 가족의 힘! 그중에서도 듬직한 남편의 뒷받침이 필요하고

내 자랑스러운 아들들의 앞 길을 위해 엄마의 힘은 강해질 수 밖에 없다는게 새삼 느껴지고

30대 후반에 시작해 50대에 턱걸이한 나를 돌아보면 그 당시 선택한 자신감의 원천은 가족이란걸 확실히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