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문을 닫을 시각

한 부부가 급히 약국으로 뛰어 오셨다.

남편이 소변이 마려운데 소변이 안 나온다고 했다.

의약분업 전이라 " 이 약 드시고도 소변이 안나오면 응급실로 가세요."하고 이뇨제를 드렸다.

 다음날 아침, 부부는 약국에 방문하여 "이뇨제를 먹어도 소변을 볼 수 없어 응급실에 가서  소변 빼고 와요.

병원에서 입원하라고 하네요." 하며 근심스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별 일이야 있겠어요?  그 동안 특별히 아프셨던 것도 없는데, 일단 검사는 하셔야겠네요.” 하며 편안히 돌아가시게 했다.

그 날 이후

 그분의 남편이 일어나 걷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에 당뇨병까지 온 것이다.

딸 셋을 키우며 맞벌이로 건실하게 살던 부부에게 큰 불행이 찾아 왔지만

그 가족은 종교와 사랑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딸들을 대학 공부까지 시키며 행복을 지켜 나갔다.

큰딸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공부를 계속해 나갔고 둘째와 셋째는 직장 생활을 하며 집안일을 도왔다.

큰딸은 대학에서 만난 외국인 남자와 결혼하여 호주에 가서 살고

둘째와 셋째 딸도 결혼을 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렇게도 어렵고 힘들게 지켜온 행복한 시간 속에 다시 찾아온 고엽제 후유증,

큰딸이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걸을 수도 없고

신경통이 심해서 일상 생활이 어렵다보니 이혼을 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 왔다.

병원 검사 결과 척추 내 혈관종과 췌장, 신장에도 물혹이 생겼다고 했다.

둘째 딸 또한 다발성골수종으로 진단이 나왔다.

셋째는 어떻게 몸에 이상이 있는지 차마 물어 볼 수 없었다.

다음 세대에서는 고엽제가 어떤 후유증으로 그 가족에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밀림의 잡초를 말리려 했던 고엽제는 한 사람의 인생,

한 가족의 행복의 뿌리까지 말라 버리게 했다.

그 가족은 힘들 때마다 나를 찾는다.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약사인 나는 아니지만 어딘가 길이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찾고, 위로를 받기 위해....

 

약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 이웃의 삶의 역사를 증언하며

내 이웃의 아픔 속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이지요.

오랜 시간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눈 마주치고 이야기 하고 지켜보면서

어느 순간은 위로를 건내고

어느 순간은 약사인 내가 치료를 받고

슬픔과 아픔,

행복과 웃음 나누는 서로의 이웃이 됩니다.

 

약사인 나는

내 약국을 찾는 그들에게서 인생을 배우고

삶을 배우고

오늘 이 순간 살아 내고,

견디는 법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