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께 받은 네잎클로버
정 덕 인 약사
저는 30대 후반의 여약사입니다. 약사로서 다양한 분야에 일을 해보고 싶어서 식약처, 동네약국, 문전약국 두루두루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제 약사 생활 중 가장 감동을 받았던 순간을 약사님들과 나눠보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은평구에는 “찾아가는 마이닥터클리닉”이라는 사업이 있습니다. 65세 이상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 장애인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매일 조제실과 진료실이 내부에 마련된 버스를 타고 찾아가서 건강관리를 해드리는 사업입니다. 저는 이 사업의 약사로서 이동진료실에서 매일 다른 곳에서 다른 환자분들께 약을 조제해드렸습니다. 매일 이동을 하면서 조제 투약을 했기에 약재고 관리며 매일 필요한 비품을 챙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찾아가는 마이닥터클리닉은 의사1명, 간호사2명, 약사1명, 공익근무요원, 그리고 운전 및 관리해주는 공무원 1명 총 6명으로 구성된 팀입니다. 다들 제몫 열심히 하는 팀입니다. 저 역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곳에서 지난 7개월간 근무를 했었고 이곳에서 약사생활 중 가장 감동을 받았던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오시는 환자분들 중에는 혼자 외롭게 사시는 독거 노인 분들이 많이 계시고, 알코올 중독이나 형편이 어려운 분들, 그리고 혼자서 거동을 오래 못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부분 허리 다리 관절염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고 눈도 어둡고 글도 모르시는 어른들이 대부분이십니다. 그런 분들에게 혈압약 당뇨약 소화제 등등을 투약하려면 어느 때보다 각별히 관심을 갖고 여러번 말씀을 드려야합니다. 혼자 사시다보면 밥해먹을 기운도 없으셔서 찬물에 밥한술 대강 말아드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여느 때처럼 매달 혈압약과 위장약, 관절염약을 타가시던 할머니가 버스에서 내리려다 “이거 하나씩 받아.”라며 뭔가를 꺼내시려 했습니다. 저희는 구청에서 하는 구민상대 무료 진료 투약서비스기에 어떤 대가도 안 받으려고 “어르신 괜찮습니다.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리려는 순간 어르신의 품에서 소중히 뭔가 싸여 가지고 주셨습니다. 조심스럽게 편지봉투를 꺼내서 네잎클로버 6개를 하나씩 나눠주셨습니다. “돈은 형편이 어려워 못주고. 먹을 것도 마다하고 해서. 복 받으라고. 이건 받을 꺼 아니야.. 내가 직접 풀밭에서 찾아서 캐낸 거야. 줄려고…….” 구부정히 허리도 안 좋으시고 만성 관절염이 있으신, 눈도 어두워 침침하신 분이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며칠간 찾아 헤맸다는 말씀에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어르신 눈도 어두우시고 다리 허리 성한데도 없으면서 이런 걸 왜하셨어요.”서운해하실까봐 더 말씀은 못 드렸지만 약사 생활을 하면서 약을 드리고 받는 것 중 네잎클로버는 어떠한 가치로도 설명하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어르신 몸 좋아지시라고 약을 드렸다면 그 어르신은 저에게 고맙다는 마음의 약을 네잎클로버를 통해 전해주셨습니다. “아. 내가 약사가 되길 잘했구나." 라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약을 참 좋아하십니다. 많은 약을 제대로 구분도 못하고 드시기 일 수입니다. 처음에는 부작용에 노출된 어르신들이 위험하실까봐 왜 약을 막 드시냐고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드시는 약은 “관심”, “정”의 허기짐에 보충하려 약을 드셨던 것 이었습니다.
매달 건강관리 해드린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고마워서 네잎클로버라도 해주고 싶다고. 다들 복 받으시라고 말씀하시고 나서는 어르신께 모두들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다른 홀로 사시는 할머님께서는 한여름에 김밥을 한 아름 해오셨습니다. 저희는 환자분께 부담되는 것은 받을 수 없어서 한사코 싸오신 김밥을 돌려보내려하니 할머니가 눈물을 머금으시며 “이거 혼자 다 못 먹고, 안 받으면 버려야해. 나 혼자산지 오래되어 누군가를 위해 김밥 말아 본거 너무 오래간 만이니까 먹어줘.” 그 말씀에 그냥 김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새벽부터 혼자 김밥을 마셔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참기름 냄새가 잔뜩 배어 온 어르신. “어르신 김밥 잘 먹었어요. 저희 따로 밥 먹는 식당이 있어서 다음엔 이거 해오시면 안 되세요. 어르신 덕분에 저희도 몇 년 만에 가정식 손 김밥 먹어서 감사합니다.” 감사말씀을 드리자 어르신은 알았다며 도리어 “고마워서... 나 매달 찾아와줘서 고마워서…….”하시면서 눈물을 가득 고이시더군요. 제가 그동안 드렸던 혈압약, 위장약. 그 약값이 아까워서 오시기보단 매달 찾아온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정을 주신 어르신들. 어르신들이 몸이 아픈 이유는 외로움이 원인이 아니었을까요. 약사로서 어르신들과 남은 시간 대화 나누면서 감사함을 전하고 정을 나누는 시간들이 고체 알약, 캡슐로 된 약보다 더 큰 약효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은 매달 받아 가는 약이 “관심”과 “정”이었다는 것을.
몸이 아파도 자식들에게 부담될까 병원가겠다는 말도 자식들에게 시원하게 못 하시고 대강 임시방편으로 버틸 약들을 찾는 어르신들을 볼 때 마음이 짠함을 느꼈습니다. 아파도 아프다고 자식들에게조차 말씀을 못 하시는 어르신들. 그래서 만나는 의사나 약사, 간호사에게 “아파 아파…….” 하시는 어르신들.
어르신들, 힘내세요. 그리고 갑갑하신 거 있으면 시원하게 말씀하세요. 참지 마시고. 저는 이번 근무를 토대로 진정한 약이란 몸과 더불어 마음의 약을 주고 받는 것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확하고 빠른 조제투약도 중요하지만 어르신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드리고 이야기를 잘 들어드리는 것 또한 중요한 약이란 사실을. 어르신이 캐어 주셨던 네잎클로버 잘 간직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 “관심”과 “따듯함” 그리고 “정”을 주는 약사로 이 마음 잊지 않고 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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