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아주 사소한/ 김 주난
약국 위치가 정류장에 있어서인지 차비하게 돈 천 원만 빌려 주세요 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수더분해 보이는 인상과 투포환 선수급 체구가 부탁에 일조하리라 본다만 단돈 천 원 없이 지갑에 카드만 무더기로 넣고 다니는 사람이 무심결에 나왔다가 급하게 버스를 탈 경우가 생기면 어김없이 우리 약국을 찾곤 한다.
늘 달랑 카드 한 장만 들고 다니는 단골 아줌마가 있다. 삼 년 전 그녀가 문 앞에서 버스가 들어오고 있다며 얼른 천원만 빌려달라 해서 뛰어나가 준 적이 있었다. 열흘 정도 지나 오셔서 현금이 없으니 결제금액 천오백 원하고 저번에 빌린 천 원하고 같이 카드로 긁어 달라고 하는데 하, 뚜껑 열리는 줄 알았다. 크게 숨 한 번 쉬고, 저기요, 이건 경우가 아니지요. 내가 급한 당신에게 천원을 빌려줬지, 천원의 매상을 올린 건 아니잖습니까? 비록 빌려 간 돈이 천원이라 고마움과 이자는 주지 못하더라도 도리는 주셔야지요. 빌려 간 천원은 나중에 현금으로 갚으라고 말했고 나중에 받았다. 고작 천원 맞다. 그녀에겐 고작 천원이었지만 나에겐 심장 떨리는 천원이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눈으로 재는 사소함과 내가 마음으로 느끼는 사소함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 약국에 오시는 손님 80%가 노인층이다. 그분들이 지갑을 갖고 다니기보다는 주머니에, 특히나 할매들은 속곳에 돈을 넣어 다니므로 알지 못하는 사이 바닥에 돈을 떨어뜨리는 일이 빈번하다. 두 번, 세 번 반듯하게 돈이 접혀있을 경우는 100% 할매 주머니에서 떨어진 경우다. 역시 오늘 주운 돈도 세 번으로 접혀 있었다. 돈통에 넣지 않고 따로 서랍에 넣어 두었다. 경험상 몇 시간, 빠르면 몇십 분이 지나면 떨리는 손을 애써 자제하며 봉투에 쓰여있는 전화번호를 누르고 혹시나 없으면 어쩌나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가 온다. 그리고는 득달같이 달려와 털썩 의자에 주저앉은 그들, 돈을 건네받는 손은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로 떤다. 덜덜덜 떨리는 손을 보면서 몇 푼이 억만금이 되는 순간을 본다. 내가 별것 아니라고 보는 몇 만원의 가치가 누구에게는 애간장을 녹이는 일이므로 역시 살면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 이유는 충분하다.
액수로 치자면 몇 만원이 크므로 천원이 더 사소해야 함에도 내가 느끼는 마음의 비중은 전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천원이 컸었다. 사소함이란 보이는 사물이 아닌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는 마음의 척도에서 비롯된다. 가치를 두는 마음의 기준이 제각각이므로 어떤 이에게는 실낱같은 사소함이었다해도 누군가에게는 목숨이 되고 별스러움이 당연함이 되기도 한다.
가치관이란 한 개인의 그동안의 경험으로 축적되고 형성된 내면 세계, 인생관,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이는 고정, 불변적이기보다는 신체적 변화와 함께 성장 발달하는데 그 발달의 방향이나 성격은 한 개인의 성장 과정과 필연적 인과성을 가진다.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이를 통해서 가치관이 변할 수 있으므로 바람직한 생각에 의한 경험만이 건전한 가치관 형성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
말로라도 남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일은 물 없이 누워서 떡 먹기이다. 쉬운 일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내 가슴을 치며 나를 내리 쓰다듬는 일이다. 그러나 가치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틀린다의 관점이 아닌 다르게 본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나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똘레랑스, 관용까지 있게 한다. 말은 참 그럴싸하게 해도 난 여전히 그저께도 온 단골 아줌마를 몇 년째 개무시하고 산다. 엄청난 교양 머리로 겹겹 포장한 그녀의 가치관을 보았는데 아직까지 그것이 나와 다르다기보다는 틀렸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사소한 생각이 생활이고 별 수 없는 나이다.
누군가 그랬다.
어떤 사람의 희망은 그림에 있고
어떤 사람의 희망은 명예에 있고
어떤 사람의 희망은 황금에 있다.
그래도 나의 큰 희망은 사람에 있다고.
나도 그렇다.
사람다운 보다 극히 사소한 것은 없고 사람다운 사람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고.
그리고 지금 약사로 산다는 것은 사소한, 아주 사소한 생각이 무진장 사소해서 위대함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