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는 요즘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피로’에 대해 재미있는 광고 카피로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부모로, 수험생 가족으로, 자식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피로다. 박카스가 우리 오천만의 피로를 풀어준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약사로 산다는 것’...
그럼 약사라는 직업으로 산다는 자체가 피로라는 것인가?
<에피소드 1>
“박카스 좀 주시오...”
어르신 한 분이 오셨다...
“몇 병이요?”
아무 말 없이 주머니를 뒤적이신다...
만 원짜리, 오천 원짜리, 천 원짜리, 오백 원짜리, 백 원짜리, 오십 원짜리, 구형 십 원짜리, 새로 나온 돈 같이 생기지도 않은 십 원짜리... 먼지 앙금까지 탈탈 터시더니... 만 원짜리, 오천 원짜리는 얼른 원위치 시키시고 작은 화폐 단위부터 세 나가신다... 손님도 없는 터라 묵묵히 지켜만 본다...
“음... 다섯 병만 줘...”
갑자기 귀찮아진다... 어휴 어르신... 그냥 한 박스 사가시지... 그 때 내 의중을 알아채신 듯... 한 말씀...
“한 박스 사면 좋은데 무거워서 들고 갈 수가 없어...”
재빨리 머리를 굴린다... 한 박스에는 4,500원... 들어오는 가격이 4,070원이니까 430원 남는데... 다섯 병은 2,500원... 들어오는 가격은 2,035원... 남는 게 465원... 그래도 수학 잘해서 약대 들어갔다... 약국 하면서 돈 계산 잘하는 것 보면 수학을 잘하긴 했었나 보다...
“아 예...”
“근데 잔 돈 들이라 미안해... 한 번 세어봐.”
“아... 맞네요.”
건성 대답이다. 어렵게 사시는 분이지만 셈이 흐리진 않으신 분이다. 일이십 원 틀린들 어떠하리...
얼핏 보니 천 원짜리 한 장, 오백 원짜리가 하나. 나머지 작은 돈 들... 백 원짜리, 오십 원짜리, 구형 십 원짜리, 신형 십 원짜리 동전을 뒤 섞여 한 주먹 놓고 가셨다... 먼지 앙금까지...
어르신 가신 뒤... 먼지는 훅 불어 버리고...
그냥 무료하게 세어 보았다...
2,470원...
435원 남았다...
그래도 한 박스 팔은 것보다 많이 남았다...
나만의 생각이겠지...
아니면... 이것이 현재 우리들 약국의 현주소일까?
과연 오천만이 아니라 오만의 약사 피로도 풀어질까?
초창기의 박카스 광고는 “젊음과 活力을!”을 내세우고 있다.
‘歡喜’, ‘힘찬 建設의 役軍!’,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새한국인-소중한 땀의 현장에는 박카스가 있습니다.’ 정열적이고 역동적인 흑백사진과 함께...
그렇다. 우리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괴테’를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우고, 함께 울고 웃으며 소리 지르던 우리들의 축제가 있었고, 최루탄을 함껏 들이마셨을 땐 소주로 밤을 밝히고 나서는 약대 복도에 진열되어 있는 동아제약 부스에서 박카스를 몰래 꺼내먹곤 했었지... 냉장고가 아니더라도 시원하고 개운했었는데...
<에피소드 2>
“박카스 좀 주시오...”
어르신 한 분이 오셨다...
“몇 병이요?”
그냥 상투적인 말투다. 이렇게 손님 대하면 안 된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남지도 않는 박카스만 찾으니까 밉지?”
내 맘을 들킨 것 같아 조금은 죄송한 맘이 든다. 박카스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은 독심술에 능하신가? 아님 우리가 너무 눈치를 준 건 아닌지...
“많이 안살께. 두 병만 줘봐”
두 병을 다 따신다.
“어르신. 한꺼번에 두 병을 다 드시면 안 되는데...”
“후후. 응 한 병은 우리 약사 양반 드시라고...”
“아니, 저는...” 까지다. 마치 당신 자식을 바라보듯 온화한 미소에 더 이상 사양을 못하겠다.
정이 느껴진다.
“감사합니다.”
모처럼 먹어본다. 맛있다.
“그래도 박카스 땜에 살았어...”
찬찬히 한 모금 마시고는 조용히 말을 꺼내신다.
“그 당시 몇몇을 빼고는 무척이나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지... 나도 가난한 집 자식으로 태어나 육남매 키우느라 안 해본 일이 없지... 하루 세 시간을 자 본적이 없었던 것 같아... 지금 그렇게 일 하라면 죽어도 못할 것 같아... 힘은 부치고, 잠은 쏟아지고, 피로는 몰려오고... 박카스가 보약이었지... 박카스 한 병이면 하루가 거뜬했지... 진짜로 고마운 놈이지... 그렇게 모두들 열심히 일을 했으니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된 거 아닐까? 그리고 감사하게도 애들 모두 잘 성장해서 시집 장가가서 잘 살고 있지. 나는 진짜로 행복한 늙은이야.”
유리창 밖 먼 곳을 응시하시는 모습이 거룩하기까지 하였다.
“근데... 이제 보는 사람마다 나보고 박카스 끊으래... 인 베긴다고... 그래도 나는 여태 하루 한 병만 먹고 지내는데... 약사 양반! 나 용법용량을 잘 지킨 거지?”
“그러믄요!”
내 대답에 환히 웃고 가셨다.
진짜 피로회복이 되는가 보다. 어르신 말씀과 박카스 한 병이 내 피로까지 몰고 갔다.
이제는 전문성 있는 얘기를 해보자. 약사는 전문가라고들 한다. 이의경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전문직이란 “일반적인 직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지식 및 기술을 갖추고 있으면서 독특한 직업조직, 직업윤리, 직업문화를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해 봉사 지향적 직업으로, 자율성을 사회적으로 보장받은 직업”이라고 밝히고 있다. 약사가 전문가라는 것이 맞긴 맞는가 보다. 아니 남들이 그러니까 전문가 행세를 해왔다. 약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지식과 기술도 연마했고, 직업에 대해 조직적이고 윤리적이고 독특한 문화도 적응하고 활동해 왔으며, 봉사활동도 남들보다 한 발짝 더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나는... 돌아보면 여전히 배가 고팠다. 조금 더 영역을 확장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일도 우리 약사의 몫이 아닐까?
<에피소드 3>
“최 선생님... 약사는 행정부 중 어디에 속합니까?”
“보건복지부죠”
잘은 모르지만 약사면허증에 지금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보건사회부장관 직인이 찍혀 있는 것을 힐끔 보면서 건성 대답했다.
“그럼, 보건 쪽입니까? 복지 쪽입니까?”
“아무래도 보건 쪽이라고 봐야겠죠?”
“복지 쪽과는 거리가 먼가요?”
말문이 막혔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이다. 가만있자... 지금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불우이웃 성금도 제법 내고 있으니까 복지 쪽도 연관 있나? 아니 그것은 약사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분명 무언가 연관이 있으니까 두 단어를 합쳐서 보건복지부를 만든 것일 텐데...
그래서 공부한 것이 사회복지다. 물론 힘이 들었다. 아니 생각하는 것보다 곱은 더 힘들었다. 다른 사람의 눈이 곱지 않았다. 약사면 약이나 팔 것이지... 돈도 잘 벌면서 왜 남의 영역까지 침범하나? 그러나 지금 학생들 앞에서 ‘사회복지의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 유지와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 자립생활의 확립 등 인간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통하여 정상화와 사회통합을 이루는데 있다.’ 이러고 있다.
아... 그렇다면 보건복지부가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는 ‘국민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이 넘치는 희망사회 실현’과 일맥상통한 얘기가 아닐까? 부제를 보니 조금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빈곤 · 질병 · 노령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일자리와 균등한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하며, 평생복지를 위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보건 · 복지 · 가족 정책으로 국민의 삶을 증진시킨다.’ 물론 사회적 약자인 노인, 장애인, 여성, 아동, 다문화 가족, 외국인 근로자 등등 모두 포함되는 것이겠지.
<에피소드 4>
한 달에 한 번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교회에 의료봉사를 나간다.
“저... 약사님 늘 고맙습니다. 약사님도 피곤하실 텐데 이거 하나 드시고 하세요.”
박카스 한 병을 꺼내 놓는다. 이제는 제법 한국말에 능숙하다. 4년 정도 되었나? 처음 보았을 땐 두려움 반 걱정 반 얼굴로 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일 하는 것이 몹시 힘들어 보였었는데...
“약사님은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처음 여기에 와서 힘들어 할 때, 약사님께서 건네주신 이 박카스 한 병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피로도 피로지만 아마도 그것은 약사님의 따뜻한 마음이었을 거예요. 그때 아무리 힘들어도 울지 말자고 다짐했죠. 나에겐 커다란 꿈을 가진 희망이 된 거죠... 아! 며칠 전에 적금타서 고향으로 또 돈 부쳤어요... 엄마한테서 전화 왔었는데 엄마 아픈 병도 수술해서 다 낫고, 동생도 졸업해서 취직도 했대요. 아버지는 이번 돈으로 가게를 하나 장만할 모양이에요.”
싱글벙글 입이 안 다물어지나 보다.
며칠 전 약국에 오신 어르신 생각이 났다. 그 어르신도 나한테 박카스 한 병을 주셨는데... 이제 박카스가 국적을 넘나드나보다.
“근데, 오늘 표정이 환한 것을 보니 어디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웬일이지?”
“아... 아직 말씀 안 드렸구나. 저도 오늘부터 여기서 봉사활동 하도록 목사님께 허락 받았어요. 제가 도울 일이 없나 하고 여쭤봤더니 우리나라 말 하지, 이제 한국말도 잘하지, 영어도 좀 할 줄 알지, 외국인 근로자들 통역에 적격이라고 좋아하셨어요. 약사님은 아직 우리나라 말 못하시잖아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한국 사람도 도울 수 있다면 좋겠어요. 맨날 도움을 받기만 하던 제가 남을 도울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나도 정말 기쁘군.”
“우리 박카스로 건배해요. 희망찬 내일을 위해!!”
그렇다. 어제의 박카스가 국가의 성장 · 발전에 발 맞춰 “젊음과 活力”을, 오늘의 박카스가 “오천만의 피로”에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하였다면 내일의 박카스는 “건강하고 행복이 넘치는 희망사회”를 가슴에 담아야 하지 않을까? 늘 박카스와 함께해 온 약사가 있어 가능하지 않을까?
“약사는 항상 여러분들 곁에 있습니다. 그러한 약사님을 박카스는 응원합니다.”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