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좋은 약사로 산다는 것
박카스 같이 약에 있어서는 오래된 게 좋은 것이며,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가 낫다.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냉동 기술이 냉동 인간이라는 상상력까지 만들어냈을 때, 불로장생이 무슨 의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120년 후에 얼었다가 깨어난다 해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사라진 그 삶이 과연 행복할까?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의 소중함에 집중할 수 있다. 순교자 같은 의미 있는 죽음도 있고, 아침까지 지붕 고치다가 한낮에 의자에서 조용히 죽는 노인으로서의 이상적인 죽음도 있으며, 9.11처럼 예상치 못한 사고로 죽는 경우도 있다. 언제라도 “마음 껏 웃고 사랑하다 간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현재의 행복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여전히 하루에도 몇 차례 조제실과 복약지도에서는 메마른 대화가 이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진심이 오가는 약국을 꿈꾼다. “얼마나 아프셨어요?”라는 약사의 말 한마디에 환자의 고통이 줄어들고, 한 장의 처방전보다 ‘운동과 섭생’에 관한 심도 깊은 대화가 있는. 내 결론은 이렇다. 행복한 약사가 행복한 환자를 만들어내고 행복한 환자가 질병을 이겨낸다.
세상엔 환자의 회복을 삶의 보람으로 느끼는 좋은 약사와 자신의 직업적 기득권 유지가 우선인 나쁜 약사들이 섞여 있다. 다행인 건 여전히 좋은 약사들이 더 많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약사가 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원시인들은 의약이 없이도 지혜롭고 꿋꿋하게 생존했으며, 의약은 인간에게 점점 더 사치재로서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의약 환경에 대한 그런 공감과 각성은 약사와 환자의 관계에 변화를 일으키리라 믿는다. 지난 20년 동안 나는 약사란 어떤 존재인가를 끝없이 되물었다. 약사지만, 약사로서 나는 정형화된 삶을 살지 않았다.
한때 ‘약사는 필요 없다’라는 회의주의에 시달린 적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아파하다 죽는다는 엄정한 진리. 하지만 무엇을 하든 내가 약사라는 본업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약사는 언제 필요한가? 통증이 심하다면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 피로한 환자들의 활동을 증진시켜줄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행복해진다. 나는 약사가 언제 왜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통해 의약의 본질을 깨달아갔다. 약사들과 환자들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하지만 천년 전에도 그랬듯이 환자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서 고통스러운 경험을 들어주고 상처를 감싸는 것이 약사의 기본이다.
환자와 약사는 진정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건강이란 무엇인가? 병이란 무엇인가? 내 몸의 주권은 어디 있는가? 건강은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적당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다. 치료는 약사가 하지만 치유를 일으키는 것은 변함없이 환자의 몸이다. 생명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자신의 몸을 치유하는 능력도 함께 지니고 태어난다. 몸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아는 게 힘일 때도 있지만,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결국은 병을 담백하게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몸의 균형이 깨지는 게 병이고,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찾는 게 ‘치료’다. 제일먼저 환자들에게 권유 할것은 자발적 행위 건강한 식단, 운동, 휴식,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등이다. 내 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약사가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많다는 진정한 주체로서의 자각, 그래야 기름진 음식을 먹고 콜레스테롤 약을 처방해달라고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수술이든 약이든 제때 제대로 쓰지 않으면 모두 독이다. 약사는 좀더 미니멀해져야 한다. 약사는 치유자가 아니라 치료자일 뿐.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할 때 세르파 같은 존재다. 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약국 안가면 약사가 망하는 것 아니냐고.
약사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경험 많은 약사는 세르파의 지혜로 환자에게 맞는 A, B, C, D 중 맞는 코스를 권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같이 가주는 거다. 지금의 의약계 질서로는 불가능할 것 같지만, 머지않아 창의적이고 새로운 세르파 역할을 해주는 약사들이 등장할 거라고 믿는다. 야국 시스템도 서서히 바뀔 것이다. 환자를 많이 볼수록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약을 적게 쓰고 혈압을 떨어뜨리거나, 약을 많이 먹지않고 병을 고치는 시스템에 혜택을 주는 쪽으로. 현대 사회는 약사와 환자 사이의 의료 정보 갭이 크지 않다. 이제는 내 몸을 주제로 다이얼로그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약이 아니라 내가 어떤 도움을 받아들이고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앞으로 내가 어떤 약사가 되고 싶은가를 생각해본다. 나는 약사로서 부유한 생활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몇 년 전까지 살 곳이 마땅찮아 월세로 서울 변두리 작은 아파트에서 남편과 소박하게 지낸다.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약사가 가장 가슴이 뛸 때는 아픈 환자를 회복하게 하고 그 환자가 내 손을 붙잡고 고맙다 한마디 할 때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힘이되고, 약사의 힘이되고, 동아제약 박카스의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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