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가다 보면 기사님과 눈이 마주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급히 창문으로 눈을 돌리거나 핸드폰을 갑자기 만지작대곤 했었습니다만, 얼굴을 자꾸 찌푸렸다 펴셨다 하시며 근육을 일그러뜨리는 기사님이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혹시 기분 나쁘신 일이 있었나 생각했었는데 계속해서 찌푸렸다 펴셨다 하심이 왠지 모르게 어딘가 불편해 보이시는 것 같아 결국 여쭤보았습니다.
“어디 아프세요?”
하루 종일 운전하시느라 어딘가 아프신 건가 싶어서 늘 가지고 다니는 상비약이라도 드릴까 싶어 여쭤보았었는데, 의외의 답변이 제 머리를 울렸습니다.
“아뇨~ 점심 먹고 운전하니 졸려서요. 허허허”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 머쓱해져 있는 제게 기사님은 신경 써 주어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시더군요. 내릴 때가 되어 일어났을 때 좋은 하루 보내라 하시며 눈 주름으로 만들어지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주셨습니다. 근처에 슈퍼라도 있었으면 시원한 음료라도 하나 드렸을 것 같았습니다.
시내버스여서 비록 그 때 기사님께는 음료 선물을 드리지 못했지만, 그 날 이후로 저는 작은 다짐을 했습니다. 버스를 타게 되면 하루 종일 운전하시는 기사님께 힘내시라는 의미로 작은 음료 선물을 하자는 것이었는데요, 매번 지키지는 못했지만 장거리 고속버스에서 휴게소에 잠시 들르게 되거나 시내버스를 타기 전에 박카스 하나씩 사서 드리곤 합니다.
약국에서 근무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혈압이나 당뇨 등 항상 약을 드시던 분들을 자주 오셔서 친근하게 이야기 하시기도 하고, 생각나서 사왔다면서 맛있게 먹으라고 작은 선물을 해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간혹 약이 왜이리 늦게 나오냐며 짜증을 내시거나 약값이 비싸다고 푸념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참 재미있는 점은 어떤 질환을 앓고 계시는 분들은 비슷한 특징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가령 위장이 좋지 않아 자주 위장약을 드시는 분들은 성격이 매우 급하고 예민하시거나 구취가 심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간장약을 자주 드시는 분들은 얼굴빛이 좋지 않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을 만나거나 대화할 때는 사람의 특징을 관찰하고 어떤 점이 불편할까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항상 작은 주머니에 상비약을 가지고 다니면서 지인들이 불편하다고 하면 바로 챙겨주게 되었지요. 가끔 만날 때 입술포진으로 예쁜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비서 아가씨에게는 포진용 연고를 바로 사서 보내주었고요. 요즘 자꾸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다는 옆집 아주머니께는 빈혈일지 모르니 혈액 검사를 해보라는 충고를 해드렸습니다. 그래서 지인들은 머리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되거나 하는 가벼운 질환에는 제게 와서 약 갖고 있는 것 없냐며 묻고 받아가곤 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먹는 약이나 선물하기 좋은 영양제까지 꼭 먼저 묻곤 하십니다. 그렇게 저를 믿고 물어보시는 분들에게 감사하고 더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저도 열심히 공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오지랖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심히 타고 내리던 버스의 기사님이나 관심 가지지 않아도 되었던 지인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자신만 보고 살기보다 작은 배려를 통해 챙겨주는 삶이 저는 훨씬 좋습니다. 신경 써 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함박웃음을 지어주는 사람들을 보면 저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곤 했었으니까요. 약사라는 직업은 배려하고 챙겨주기가 참 쉬운 것 같습니다. 아직 젊고 배울게 더 많은 초보 약사지만 저는 제 직업이 참 좋습니다. 약사는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배려하고 필요할 때 도움이 되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서비스의 한 방법으로 약국에서 무상 드링크를 제공했던 부분이 나쁜 쪽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약국에서 의도치 않게 피해를 주게 된 환자분들께 사과 드리면서 박카스 하나씩 드리려고 하다가도 멈칫하며 망설이게 되었으니까요. 결국 제가 사서 드리는 거라고 말씀 드리며 한 병씩 드렸었습니다. 지금은 약국에서 근무하고 있지 않지만, 작은 정성을 통한 배려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여전히 버스에서 하나씩 챙겨드리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만난 지인들에게도 제 오지랖은 여전한가 봅니다. 상비약 가지고 있는 것 없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네요. 나 어디가 불편한데 이런 약 만들어 주면 안되냐는 농담도 많이 하십니다.
약국, 병원에서 또는 회사나 국가기관, 학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진출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선후배님들을 존경합니다. 그래도 아직 좋은 직업이라 인정해 주는 직종인지라 약사의 잘못이나 부정에 대해서는 언론의 뭇매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도 매우 많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약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책임감을 알고 가까운 사람부터 불편하거나 아픈 곳이 있는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배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약사가 말하는 말의 무게감이 받아들이는 분들께 결코 가볍지 않으니까요. 저 또한 부족한 부분이 많고 아직 더 공부해야 되는 부분도 많지만 가까운 사람부터 먼저 챙기는 것을 시작으로 먼저 관심 가지기를 실천하려 하고 있습니다. 참, 버스 탈 때 기사님들께 박카스 챙겨드리기도 쭉 계속해야겠습니다. 특히나 폭염과 전력대란이 예상되는 혹독한 올해 여름에는 더욱 중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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